부악문원 서재에 있는 이문열 선생의 독서대. 나이 듦에 대한 논어 구절을 올려 놓았다.  김범준 기자
부악문원 서재에 있는 이문열 선생의 독서대. 나이 듦에 대한 논어 구절을 올려 놓았다. 김범준 기자
이문열 선생은 ‘다작(多作)의 작가’로 통한다. 1979년 등단 이후 ‘사람의 아들’ ‘황제를 위하여’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등 약 90권의 소설을 발표했다. 줄줄이 화제작이었다. 동인문학상, 대한민국문학상, 중앙문화대상 등 국내 주요 문학상을 휩쓸었다.

다작의 비결은 다독(多讀)이다. 그는 “젊어서 매일신문 편집기자 등으로 일하면서 읽은 책만 5000~6000권 될 것”이라며 “매일신문에 작은 도서관이 있어서 틈날 때마다 거기 처박혀 책을 읽었다”고 했다. “10년 뒤에 찾아갔더니 매일신문 기자 한 명이 그럽디다. ‘아니, 어떻게 무슨 책이든 빌리려고 보면 (대출기록표) 제일 끝에 선생님 이름이 있습니까?’”(웃음)

작품이 한 번 떠오르면 글을 써내는 속도도 무섭다. 소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보름 만에 탈고했다. 얼마나 집중적으로 글을 쏟아냈는지 약 40년 전의 일인데 아직 날짜까지 생생하게 기억했다. 그는 “1987년 4·13 호헌조치를 보고 쓰기 시작했는데, 《세계문학》에 원고를 넘긴 게 아마 그해 4월 26일일 것”이라고 했다.

기자가 집필 속도에 놀라자 “그 정도 집필량은 많은 축도 아니다”는 반응이 돌아왔다. “아주 급할 때는 하루에 원고지 400~500장을 쓸 때도 있었습니다. 《삼국지》 《수호지》 같은 번역물을 연재할 때가 그랬죠. 하루에 300장 이상 쓰면 진이 빠져서 밤에 잠도 못 자요.”

그의 집필 습관을 곁에서 오래도록 지켜봐온 제자들이 그에게 붙여준 별명은 ‘삼폭거사’. 박석근 부악문원 사무국장(소설가)은 “선생님이 워낙 포악할 정도로 글을 많이 쓰고 술 많이 잡숫고 잠을 많이 주무셔서 생긴 별명”이라며 웃었다.

이 선생이 1998년 사재를 털어 세운 부악문원은 현대적 개념의 서원이다. 후배 작가들이 창작에 몰두할 수 있도록 숙식을 제공하고 함께 인문학을 논한다. 경기 이천 부아악산 자락에 자리 잡고 있는 부악문원에는 작가 레지던시, 이 선생 사택, 집필실이 마련돼 있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