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 졸개' 고언에 기재부 들썩…"민간에선 자연도태될 업무도 공직에선 살아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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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경호 취임 후 부처 익명 게시판에 올라온 글 '화제'
"맹목적 충성 요구하는 방식으론 젊은 세대 못 움직여"
불필요한 일-회의 줄이고 생산적인 일에 집중케 해야
"직원 갈아 넣는 성과는 지속가능하지 않아"
일하는 방식의 혁신, 추경호 호(號) 과제로 떠올라
"맹목적 충성 요구하는 방식으론 젊은 세대 못 움직여"
불필요한 일-회의 줄이고 생산적인 일에 집중케 해야
"직원 갈아 넣는 성과는 지속가능하지 않아"
일하는 방식의 혁신, 추경호 호(號) 과제로 떠올라
기획재정부 내부 익명게시판 ‘공감소통’에 올라온 글이 화제다. 지난 11일 자신을 '무명의 졸개'라 칭한 한 공무원은 "추경호 호(號) 기재부의 성공을 바라는 마음으로 몇가지 생각들을 감히 건의드립니다"며 새롭게 임기를 시작한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 대한 건의의 글을 올렸다.
"예전처럼 맹목적 충성을 요구하는 방식으로는 직원들의 단합된 능력치를 최대한 끌어내기 어렵다"는 것이 이 글의 골자다. 추 부총리가 취임사를 통해 "새 정부 경제팀은 전열을 가다듬을 여유조차 없다"며 "비상한 각오로 지금 바로 출발해야 한다"며 직원들의 '분골쇄신'을 강조했지만 요즘 세대의 공무원들에겐 동기부여가 될 수 없다는 쓴소리다.
글을 올린 기재부 직원은 "지난 외화유동성 위기와 글로벌 금융 위기는 그야말로 위기대응에 집중하면 그만이었지만 지금은 실로 난해한 고차방정식"이라며 "부총리님의 애타는 심정과 비장함을 이해한다"며 운을 뗏다.
하지만 그는 "유감스럽게도 우리부 어떤 직원도 부총리님 만큼은 비장하지 않다"며 "국민연금 수준에도 못미치는 공무원연금을 손에 쥐고 인사적체의 늪에서 허우적대는 젊은 공무원들에겐 다소 공허하게 들릴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올드보이들이 디폴트값으로 기대하는 무조건적인 충성은 지나간 역사"이고 지금은 "이 세대에 속한 공무원을 활용하는 스마트한 용병술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이어 그는 추 부총리에게 일하는 방식과 관련해 네 가지를 건의했다. 첫째로 그는 "불필요한 일을 줄여달라"고 호소했다. 그는 "민간에서라면 효율성을 고려해 자연도태될 업무도
공직에서는 인풋(투입)-아웃풋(산출)을 고려하지 않기에 계속 살아남는다"며 "보고받는 분이 제동을 걸지 않으면 절대 바뀌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다음으론 회의와 현장 방문 최소화를 제안했다. 그는 "꼭 해야할 회의와 행사도 있지만 준비에 동원되는 직원들의 시간과 노력이 그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를 따져보면 상당 부분 줄일 여지는 있다"며 "직원들이 정책을 만들고 조정하고 집행하는 생산적인 일에 더욱 집중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말했다.
직원들이 자기계발을 할 수 있는 업무 여건 조성에도 힘써달라는 의견도 내놨다. 그는 "젊고 똑똑한 사무관들이 세종에 갖힌 채 시류에 뒤처져 안주하지 않도록 공부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달라"며 "사람은 그대로인데 일만 늘어나는 일이 없도록 살펴주시면 좋겠다"고 지적했다.
마지막으로 소통의 방식도 현 세대에 맞게 바꿀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소통하시겠다고 젊은 직원들과의 회식 자리를 갖는 것은 독"이라며 "대부분 억지 차출이며 그 자리에서 힐링되는 건 윗사람이지 아랫사람이 아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정말 소통하고 싶으시면 밤 11시쯤 예고 없이 실국을 다녀보시길 권한다"며 "스탠드 켜고 일하는 아무개 사무관 이름이라도 여쭤봐주시고 등을 두드려 주시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덧붙였다.
그는 글을 마무리하며 "내부 직원의 신망과 인기를 얻는 장관이 성공한 장관이라고 할 순 없을 것"이라면서도 "그러나 직원을 갈아넣는 방식으로 만들어진 성과는 떳떳하지 못하고 지속가능하지도 않다"고 말했다. 그는 "'라떼는 이랬어'가 아니라 '라떼는 왜 이런 것까지 했을까?' 하는 의문문에서 시작해야 비로소 소통이 가능하다"며 글을 마무리했다.
이 글은 수십개의 댓글이 달리며 큰 호응을 얻었다. 지위 고하와 관계 없이 기재부 내부에서도 글의 취지에 공감한다는 반응이 주를 이루고 있다.
추 부총리가 취임하자마자 올라온 이 글의 흥행은 일하는 방식의 혁신이 원활한 국정 수행의 선행 조건이 되고 있는 현실을 반영한다는 게 공직사회 안팎의 생각이다. 한 때 수습 사무관들이 지망하는 부동의 1순위 부처였던 기재부는 지난해 1순위 지망으로 30여명의 정원을 못 채웠다. 국가 경제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기재부가 일과 삶의 균형과 뚜렷한 성과 보상을 중시하는 젊은 세대에게 일만 많고 승진은 안되는 비선호부처로 전락하면서 벌어진 현상이다.
"'돌격 앞으로'를 외쳐도 돌격할 무리는 많지 않고 마지못해 나서는 직원들도 제대로 힘을 쏟아내지 못한다". 공직사회 여론을 대변하는 '무명의 졸개'가 전통의 '워커홀릭' 추 부총리에게 날린 견제구다.
이 같은 내부의 지적에 추 부총리도 일하는 방식 개선에 나서겠다는 뜻을 밝혔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추 부총리는 불필요한 업무와 의전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뿐 아니라 정례화된 불필요한 내부회의부터 개선해나가도록 지시했다.
황정환 기자
"예전처럼 맹목적 충성을 요구하는 방식으로는 직원들의 단합된 능력치를 최대한 끌어내기 어렵다"는 것이 이 글의 골자다. 추 부총리가 취임사를 통해 "새 정부 경제팀은 전열을 가다듬을 여유조차 없다"며 "비상한 각오로 지금 바로 출발해야 한다"며 직원들의 '분골쇄신'을 강조했지만 요즘 세대의 공무원들에겐 동기부여가 될 수 없다는 쓴소리다.
글을 올린 기재부 직원은 "지난 외화유동성 위기와 글로벌 금융 위기는 그야말로 위기대응에 집중하면 그만이었지만 지금은 실로 난해한 고차방정식"이라며 "부총리님의 애타는 심정과 비장함을 이해한다"며 운을 뗏다.
하지만 그는 "유감스럽게도 우리부 어떤 직원도 부총리님 만큼은 비장하지 않다"며 "국민연금 수준에도 못미치는 공무원연금을 손에 쥐고 인사적체의 늪에서 허우적대는 젊은 공무원들에겐 다소 공허하게 들릴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올드보이들이 디폴트값으로 기대하는 무조건적인 충성은 지나간 역사"이고 지금은 "이 세대에 속한 공무원을 활용하는 스마트한 용병술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이어 그는 추 부총리에게 일하는 방식과 관련해 네 가지를 건의했다. 첫째로 그는 "불필요한 일을 줄여달라"고 호소했다. 그는 "민간에서라면 효율성을 고려해 자연도태될 업무도
공직에서는 인풋(투입)-아웃풋(산출)을 고려하지 않기에 계속 살아남는다"며 "보고받는 분이 제동을 걸지 않으면 절대 바뀌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다음으론 회의와 현장 방문 최소화를 제안했다. 그는 "꼭 해야할 회의와 행사도 있지만 준비에 동원되는 직원들의 시간과 노력이 그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를 따져보면 상당 부분 줄일 여지는 있다"며 "직원들이 정책을 만들고 조정하고 집행하는 생산적인 일에 더욱 집중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말했다.
직원들이 자기계발을 할 수 있는 업무 여건 조성에도 힘써달라는 의견도 내놨다. 그는 "젊고 똑똑한 사무관들이 세종에 갖힌 채 시류에 뒤처져 안주하지 않도록 공부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달라"며 "사람은 그대로인데 일만 늘어나는 일이 없도록 살펴주시면 좋겠다"고 지적했다.
마지막으로 소통의 방식도 현 세대에 맞게 바꿀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소통하시겠다고 젊은 직원들과의 회식 자리를 갖는 것은 독"이라며 "대부분 억지 차출이며 그 자리에서 힐링되는 건 윗사람이지 아랫사람이 아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정말 소통하고 싶으시면 밤 11시쯤 예고 없이 실국을 다녀보시길 권한다"며 "스탠드 켜고 일하는 아무개 사무관 이름이라도 여쭤봐주시고 등을 두드려 주시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덧붙였다.
그는 글을 마무리하며 "내부 직원의 신망과 인기를 얻는 장관이 성공한 장관이라고 할 순 없을 것"이라면서도 "그러나 직원을 갈아넣는 방식으로 만들어진 성과는 떳떳하지 못하고 지속가능하지도 않다"고 말했다. 그는 "'라떼는 이랬어'가 아니라 '라떼는 왜 이런 것까지 했을까?' 하는 의문문에서 시작해야 비로소 소통이 가능하다"며 글을 마무리했다.
이 글은 수십개의 댓글이 달리며 큰 호응을 얻었다. 지위 고하와 관계 없이 기재부 내부에서도 글의 취지에 공감한다는 반응이 주를 이루고 있다.
추 부총리가 취임하자마자 올라온 이 글의 흥행은 일하는 방식의 혁신이 원활한 국정 수행의 선행 조건이 되고 있는 현실을 반영한다는 게 공직사회 안팎의 생각이다. 한 때 수습 사무관들이 지망하는 부동의 1순위 부처였던 기재부는 지난해 1순위 지망으로 30여명의 정원을 못 채웠다. 국가 경제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기재부가 일과 삶의 균형과 뚜렷한 성과 보상을 중시하는 젊은 세대에게 일만 많고 승진은 안되는 비선호부처로 전락하면서 벌어진 현상이다.
"'돌격 앞으로'를 외쳐도 돌격할 무리는 많지 않고 마지못해 나서는 직원들도 제대로 힘을 쏟아내지 못한다". 공직사회 여론을 대변하는 '무명의 졸개'가 전통의 '워커홀릭' 추 부총리에게 날린 견제구다.
이 같은 내부의 지적에 추 부총리도 일하는 방식 개선에 나서겠다는 뜻을 밝혔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추 부총리는 불필요한 업무와 의전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뿐 아니라 정례화된 불필요한 내부회의부터 개선해나가도록 지시했다.
황정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