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윤석열의 구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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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 칼럼] 윤석열의 구두](https://img.hankyung.com/photo/202205/AA.29992010.1.jpg)
이에 발끈한 연세대생 수백 명이 서울 후암동의 정비석 집과 신문사로 몰려가 연좌시위를 했다. 흡사 자기들을 멋 부리고 사치나 즐기는 ‘제비족’에 비유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당시 연세대생들의 반응은 지나치게 예민하고 편협한 것이었다. 돈 오십환을 가지고 막걸리를 마시면 얼마나 마실 것이며, 노트는 그리 자주 필요한 물품이 아니다. 당시 구두 한번 닦으면 딱 알맞은 돈인데 말이다. 구두는 남자에게 특별한 물건이다. 시계, 벨트와 더불어 남자의 품격을 나타내는 3대 소품 아닌가. 연세대생들이 ‘오버’한 탓에 한국일보 연재소설 《혁명전야》는 딱 3회로 막을 내렸다.
직장인들의 애환이 담긴 시를 즐겨 쓰는 윤성학 시인의 ‘구두를 위한 삼단논법’의 일부다. 복잡한 식당에서 신발을 찾느라 식당 직원과 실랑이를 벌인 일을 두고 시상이 떠올라 쓴 시다. 같은 종류, 같은 크기의 구두라도 잡힌 주름과 뒷굽이 닳은 모양새는 제각기 다를 것이다. 고두현 시인의 해제가 시만큼 와 닿는다. “이력서(履歷書)에 신발 ‘리(履)를 쓰는 이유와 맞닿아 있다. 살아온 길을 뜻하는 ‘이력’은 곧 신발이 걸어온 역사이기도 하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주말 백화점에 들러 구두를 산 것이 화제다. 국민들은 소탈한 대통령의 모습에 박수를 보냈고, 그가 산 구두 회사의 홈페이지는 ‘광클’로 다운이 됐다. 그러나 촉 있는 측근들이라면 지난 11일 첫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대통령의 말부터 떠올릴 것이다. “이 방 저 방 다니며 다른 분야 업무하는 사람들과 끊임없이, 그야말로 정말 구두 밑창이 닳아야 한다. 그래야 일이 정상적으로 돌아간다.” 윤 대통령은 새 구두를 신은 첫날 국회 시정연설 뒤 본회의장 전체를 돌며 여야 의원들과 일일이 악수했다. 새 정부 공직자들의 고과 기준은 구두 주름과 밑창이 될 듯하다.
윤성민 논설위원 smy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