뱅커로 일하다 실리콘밸리에서 다시 바닥부터 시작한 지나 김은
뱅커로 일하다 실리콘밸리에서 다시 바닥부터 시작한 지나 김은 "9.11 사태의 경험이 새로운 시작을 결정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다. /실리콘밸리=이상은 기자
출근길에 상사 세르지오에게서 연락이 왔다. “헬리콥터가 건물에 부딪혔대. 오늘은 출근하지 말게.”

2001년 9월11일, 미국 뉴욕 월드트레이드센터로 향하려던 한국계 직원 지나 김은 이 전화를 받고 출근을 중단했다. 집에 돌아와 TV를 틀고야 깨달았다. 상사가 있던 그 빌딩이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는 것을. 지옥에서 우연히 목숨을 건졌다는 것을. 같은 빌딩에서 일하던 다른 한국인 여성의 사망 소식을 들었을 때 그는 왜 나는 살았을까, 생각했다. 뉴욕에서 학교에 다니던 동생은 하루 종일 그를 찾다가 밤 11시에 집에 돌아왔다. 죽었다고 생각했던 언니를 껴안고 동생은 그저 눈물만 흘렸다.

◆10억弗 거래하던 뱅커→점심주문 받는 매니저로

실리콘밸리에서 일하고 있는 지나는 9.11 테러를 아슬아슬하게 비껴간 생존자다. 월드트레이드센터 40층 리먼브라더스에서 근무하던 그는 테러 전날 평소보다 한 시간 먼저 퇴근했다. “상사 몰래 좀 일찍 나가려고 했는데 우연히 마주쳤어요. 민망하니까 ‘내일 와서 일을 마저 끝낼 거다’고 강조하며 내려가는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그와 얘기한 (평범한) ‘내일’은 영원히 오지 않았죠.” (다행히 상사도 건물 붕괴 직전 극적으로 탈출했다.)

카네기멜론대에서 컴퓨터정보시스템을 전공한 지나는 리먼브라더스에 프로그래머로 입사했다가 MBA를 거쳐 부동산 상품개발 부서에서 근무했다. 이후 푸르덴셜생명 등을 거쳐 2013년경 서부로 넘어왔고, 증권발행 등 금융 서비스 회사 ‘카르타(Carta)’에 네 번째 직원으로 합류했다.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 중에 카르타를 모르는 이들은 많지 않다. 회사를 만들어 주주명부를 관리하고 신주를 발행하거나 구주를 거래할 때 대부분 카르타 서비스를 쓰기 때문이다. 약 3000여명이 스타트업 최고경영자(CEO)들이 그와 이메일을 교환하며 회사를 키웠다. 실리콘밸리의 성장을 바로 눈앞에서 지켜본 셈이다. 지금은 메이슨이라는 하드웨어 스타트업에서 고객 지원 업무를 총괄하고 있다.

지나의 실리콘밸리 정착기는 일반적인 창업가 스토리와는 좀 다르다. 그는 뉴욕 월가에서 오랫동안 커리어를 쌓다가 무작정 실리콘밸리로 넘어와 경력 단절 기간을 감수하며 기회를 모색했다. “아버지가 한국 금융사에 오래 다니셨어요. 부모님은 왜 금융권 커리어를 이어가지 않느냐고 반대하셨죠. 그런데 9.11 테러 후에 저에겐 항상 ‘내일이 오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이 마음 한 켠에 있었어요. 죽을 수도 있었던 삶을 사는데, 최선을 다해 살아야지. 하고 싶은 것을 나중으로 미룰 필요가 있을까? 그런 마음이었죠.”

그의 주변인들이 잇달아 실리콘밸리에서 성공을 한 것도 그를 부추겼다. “리먼브라더스 파산 전에 갑자기 서부로 가서 창업을 하겠다던 부동산 팀 동료가 있었어요. ‘대학생들이 카풀(ridesharing)을 해서 동부에서 서부까지 갈 수 있게 연결해주는 앱을 만들겠다’더군요. 존 짐머라고, 리프트(Lyft) 공동창업자였어요. 나중에 그걸 깨닫고 나서 주말마다 그 친구가 코넬대 가서 홍보물 돌렸는데 나도 같이 돌리겠다고 할 걸 그랬다고 후회했죠.”

프로그래머 경력도 있고 투자은행(IB) 경력도 있었지만, 생각보다 실리콘밸리에서 자리를 잡는 일은 쉽지 않았다. 전 직장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리먼브라더스, 그것도 서브프라임모기지론 사태를 촉발한 부동산 상품 부서에서 일했다는 이력서 내용은 (진보적인 색채가 강한 이곳에서는) 그야말로 주홍글씨였어요. 금융과 관련된 핀테크 스타트업도 많지 않았고, B2B(기업 대상 서비스)를 하는 핀테크 스타트업은 더 찾기 어려웠죠. 대학 때 친구에게 연락해서 얹혀 살았어요. 나름대로 카네기멜론에서 학부 나오고, 뉴욕대에서 MBA하고, 좋은 직장 다니며 뉴욕에서 잘 나갔던 것 같은데, 반년 넘게 마땅한 자리를 찾지 못하다 보니 크게 위축될 수밖에 없었어요.” 스티브 잡스가 살던 우드사이드에서 살았지만, 처량했다.
카르타는 그간 증권사나 변호사가 높은 수수료를 받는 업무였던 증권발행과 주주명부 관리를 디지털로 전환해 혁신적으로 비용을 낮춰 시장에 돌풍을 일으켰다. /카르타 홈페이지
카르타는 그간 증권사나 변호사가 높은 수수료를 받는 업무였던 증권발행과 주주명부 관리를 디지털로 전환해 혁신적으로 비용을 낮춰 시장에 돌풍을 일으켰다. /카르타 홈페이지

◆‘내일이 없을 수 있다’ 생각에 실리콘밸리行

그러던 어느 날, 며칠 전 “코딩할 거 아니면 자리 없다”던 회사(당시 사명 eShares)에서 연락이 왔다. 창업자 헨리 워드는 “마침 오퍼레이션 매니저가 그만두었으니 그 일을 하겠느냐”고 했다. 원래 하던 업무와는 전혀 연관성이 없었지만 그는 상관 없다고 생각했다. 급히 주말에 인터뷰를 하고 월요일에 근무를 시작했다. 2013년 9월이었다.

카르타가 생기기 전, 비상장사인 스타트업의 신주를 발행하고 주주명부를 관리하는 일은 증권사와 변호사를 고용해야 하는 업무였다. 적잖은 비용이 들었지만 서비스 수준은 들쭉날쭉했다. 평판이 좋은 곳에서 안정적이고 뛰어난 서비스를 받으려면 엄청난 돈을 들여야 했다. 카르타는 이것을 모두 전산화해서 스타트업 담당자가 스스로 처리할 수 있게 도와주는 서비스를 선보였다. “우리는 팔로알토의 4명짜리 스타트업이었어요. 진짜 바닥에서 일하는 기분이었죠. 월가에서 10억달러짜리 딜을 하다 왔는데, 점심 주문 뭐 할 거냐고 묻는 게 내 일이 되었으니까요.”

하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창업멤버 3명에게 ‘뭐든 다 할 수 있다’고 했어요. 실제로 회계, 인사관리, 고객관리 등을 두루 담당했고 회사가 좀 더 커진 뒤에는 고객 관리(customer success)를 도맡아 책임졌죠.” 지나가 실리콘밸리 창업자들과 접점이 많아진 배경이다. 이때 제일 어려웠던 일을 묻자 그는 예상 외로 점심 주문을 꼽았다. “오전 10시반에 찾아가서 뭘 먹을지 얘기를 듣고 제때 밥이 오게 해 주질 않으면 개발자들이 엄청나게 짜증스러운 분위기로 바뀌거든요.(웃음)”
카르타 초기 개발자들이 일하는 모습. /지나 김 제공
카르타 초기 개발자들이 일하는 모습. /지나 김 제공
카르타가 업계에 돌풍을 일으키는 데는 서너달밖에 걸리지 않았다. 고객 수가 한달에 100곳씩 늘어나기 시작했다. 테크크런치와 해커뉴스 등 미디어의 주목을 받으면서 ‘카르타 서비스를 쓰면 비용을 엄청나게 줄일 수 있다’는 입소문이 난 결과다. “카르타에 가입하면 제 이름(Jina)으로 자동 메일이 갔어요. 창업 초기의 기억을 담은 그 메일을 아직 간직하고 있는 CEO들이 저를 만났을 때 반가워하는 경우도 많아요.”

회사가 하루가 다르게 커지면서 그는 올라운드 플레이어에서 고객 관리 전문가로 포지션을 조정했다. “재미있는 일화가 많죠. 슬랙이 우리 고객이 되었을 때, 슬랙 CEO 어머니가 아들(스튜어트 버터필드)이 주식을 20만주 줬다며 이거 어떻게 받느냐고 물어왔어요. 방법을 일러드리니 착한 아가씨라며 캐나다 밴쿠버에 오면 우리 집에 한 번 들르라고 권하시더군요. 또 연예인들도 스타트업 투자를 많이 해요. 영화 수어사이드스쿼드에 조커 역으로 나온 재러드 레토가 밴드(Thirty seconds to Mars) 러시아 투어 중에 밤 늦게 연락해서 카르타 사용법을 물어본 적도 있어요.”

그는 “6년간 약 3000명 정도의 CEO와 연락했다”며 “나는 상대방을 잘 모르는데 옆에서 동료들이 ‘네가 지금 얘기하는 사람 페이팔 마피아(페이팔 초기 창업자들)야!’ 하면서 놀라곤 했죠.”

카르타는 2014년 9월에 시리즈A 펀딩에 성공했고, 시리즈C에는 글로벌 IB 골드만삭스가 참여했다. 전통적 업무를 빼앗아가는 신생 핀테크 회사의 저력을 눈여겨 본 것이다. 카르타는 아직 비상장 회사지만, 상장 유망주로 손꼽힌다. 한국에서는 쿼타북이 카르타와 비슷한 서비스를 하고 있다. 카르타는 쿼타북에 투자한 주주다.

◆고객관리 전문가로 포지셔닝해 성공

그는 지난해 메이슨이라는 다른 스타트업으로 이직했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 어느 순간 지루해져서”라고 이직 배경을 설명했다. 메이슨은 사물인터넷(IoT)을 이용해서 닫힌 네트워크 안에서 휴대폰, 태블릿, 전자시계 등을 쓸 수 있도록 해 주는 회사다.
메이슨은 병원 등에 특화된 스마트 기기를 제공하는 회사다. /메이슨 홈페이지
메이슨은 병원 등에 특화된 스마트 기기를 제공하는 회사다. /메이슨 홈페이지
“애플이나 삼성전자의 휴대폰은 내부 기능이 외부 개발자에게 완전히 공개되어 있지 않고, 애플리케이션(앱)을 제한해서 딱 필요한 것만 넣고 싶다면 회사에 요청은 할 수 있으나 비용이 수십억원 수준으로 비싸다”고 그는 설명했다. 개별 기관에서 지불하기에는 너무 큰 금액이다. 메이슨은 이런 작은 수요를 겨냥해 꼭 필요한 기능, 꼭 필요한 앱만 넣되 기능은 일반 휴대폰과 비슷하게 쓸 수 있게 해 준다. 병원, 교도소, 학교, 보안시설 등이 주문한다. “특히 코로나19 상황에서 병원이 집에 격리된 환자와 연락하고 지원하기 위해 주문을 많이 했다”고 그는 전했다. 복잡한 배경지식 없이 암 환자도 전원을 켜서 지문으로 바로 등록하고 쓰는 식이다.

메이슨은 하드웨어와 기본적인 소프트웨어를 레고처럼 필요한 부분만 조합하여 제공한다. 시계에 카메라 기능을 넣을 수도 있고, 체중계, 혈압측정기, 당뇨수치 측정기 등을 넣을 수도 있다. 사용자 데이터가 입력되는 애플리케이션은 직접 해당 기관에서 개발해 넣기 때문에, 메이슨에 정보가 유출될 우려는 없다. 지나는 이 회사에서도 고객관리를 맡아 각 고객이 원하는 내용을 파악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멘토는 스승이 아니야... 실수·논쟁해도 괜찮다”

그는 실리콘밸리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500글로벌 등 액셀러레이터들을 통해 한국 스타트업의 멘토 역할을 하고 있다. 그는 “한국 스타트업 창업자들과 멘토, 혹은 자문역(advisor)들 사이에는 상당히 큰 인식의 차가 있다”고 했다. “창업자들은 멘토들이 충고만 하려고 하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길을 보여주지 않는다고 불만을 갖고, 멘토들은 창업자들이 왜 자기 생각을 말하지 않는지, 또 어떤 조언을 해 줘도 왜 그 말을 듣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지 답답해 한다”는 것이다.

“한국에선 멘토를 ‘선생님’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고 그래서 생각이 달라도 일단 ‘오케이’하고 미팅을 마무리한 다음에 자기 생각대로 한다”고 그는 표현했다. 가르침을 주는 상하관계로 여기기 때문에 커뮤니케이션 갭이 커진다는 얘기다. 외국어로 대화할 경우 미팅은 더욱 겉돌기 십상이다. “실수를 할까봐, 멘토가 실망할까봐 자기 생각을 표현하지 않고 자리를 떠나면 배울 것이 있어도 얻지 못해요. 보다 자신있게 소통하면 좋겠어요.”

또 한국 스타트업들이 무조건 큰 고객을 유치한 뒤 고객사에 휘둘리거나, 외부 투자자를 만족시키기 위해 설익은 채로 글로벌 시장을 겨냥하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도 토로했다. 그는 “어떤 스타트업이 대형 미국 회사와 계약했다고 해서 웹사이트에 그 내용을 넣으면 안 되느냐고 묻자 1년 동안 계약 사실을 노출하지 않기로 했다고 답하더라”며 “그런 계약내용이 오더라도 협상해서 고칠 수 있는 부분이고 상대방은 협상 대상으로 생각하는데 너무 쉽게 그들의 말을 따라가는 경향이 있다”고 그는 지적했다. 대기업이 원하는 것은 가능하면 해 주는 한국식 갑을 문화가 이제 막 시작하는 스타트업에도 은근히 배어 있다는 얘기다.

반면 상대가 협상장에서 말이 안 되는 제안을 할 때 감정적으로 화를 내는 것은 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구 문화에서 일단 말이 안 되는 제안부터 하는 것은 협상을 위한 포석에 불과하기 때문에, ‘지금 우리를 무시하는 거냐’ 화부터 내며 거절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그는 조언했다.
멘토를 스승님으로 여기는 문화가 소통을 오히려 가로막는다고 그는 지적했다. /실리콘밸리=이상은 기자
멘토를 스승님으로 여기는 문화가 소통을 오히려 가로막는다고 그는 지적했다. /실리콘밸리=이상은 기자

◆“글로벌 진출 전에 현지서 성공경험 충실히 쌓아라”

한국에서 시작한 스타트업이 한국 시장에서 성공하지 못한 채로 섣불리 글로벌로 가겠다며 미국으로 본사를 이전하는 것(플립)도 권하지 않았다. “미국 벤처캐피털(VC) 업계 관점에서는 그 스타트업이 겨냥하는 시장이 무엇이고 그 시장을 어떻게 자기 것으로 만드는지가 중요한데, 한국에서 시작해서 성공은 아직 못했다고 한다면 VC는 투자를 검토할 이유를 찾기가 어렵다”고 그는 말했다.

그는 앞으로 실리콘밸리에서 일하면서 한국 스타트업을 지원하기 위해 노력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최근에는 실리콘밸리에서 엔젤 투자 모임을 결성하기도 했다. “멘토 역할을 맡다 보니 실리콘밸리에 대한 잘못된 생각, 편견도 많고 더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줄 부분이 많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간 쌓은 경험과 지식을 조금이라도 더 나눠주고 싶습니다.”

실리콘밸리=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