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형사2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최근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벌금 6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춘천지법 강릉지원으로 환송했다(2021도17744).
2015년 3월부터 모 직업훈련 작업장의 시설장으로 근무했던 A씨는 2018년 7월 선임 직업훈련 교사로 근무하던 B씨로부터 "장애인 C씨로부터 성희롱을 당했다"는 피해 사실을 보고 받았다. A씨는 가해자의 모친을 불러 추행 사실이 적힌 보호자 확인서에 서명받게 한 사실도 드러났다. 하지만 A씨는 이후 B씨의 피해 사실을 수사기관에 보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과태료 처분을 받게 됐다.
억울하다는 생각이 든 A씨는 약 6개월 뒤인 2019년 4월 회의실에서 직원 5명이 있는 가운데 "B가 (나에게) 성추행 사건에 대해 보고한 사실이 없고 보고받은 사실도 없는데, 성추행 사실을 수사기관에 신고하지 않아 과태료 처분을 받는 것은 억울하다"고 말했다. 결국 고소당한 A씨는 허위 사실을 적시해 B씨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됐다.
1, 2심은 "A씨가 성추행 사실을 보고받는 등 관련 내용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허위 사실을 적시했고, 직원 5명이 있는 곳에서 발언한 것도 공연성이 인정된다"며 벌금 600만원을 선고했다. 원심 재판부는 “A씨의 범행이 명확한데도 범행을 부인하며 개전의 정을 보이지 않고 있다”며 “오히려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를 유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회의 자리에서 상급자로부터 경과보고를 요구받고 과태료 처분에 대한 책임을 추궁받자 대답하는 과정에서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듯한 사실을 발설하게 된 것"이라며 "발설 내용과 경위·동기, 상황 등에 비춰 명예훼손의 고의를 가지고 발언했다기보다 질문에 대해 단순한 확인 취지의 답변을 소극적으로 하는 과정에서 '과태료 부과 처분을 받게 된 상황이 억울하다'는 취지의 주관적 심경이나 감정을 표출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결국 명예훼손죄의 구성요건인 '사실의 적시'라고 단정할 수 없다는 판단이다.
이어 "형법상 명예훼손죄가 성립하려면 타인의 명예를 훼손한다는 고의를 가지고 사람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하는데 충분한 구체적 사실을 적시하는 행위를 할 것이 요구되는데, 상급자로부터 책임을 추궁당하며 질문을 받게 되자 대답하는 과정에서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듯한 사실을 발설하게 된 것이라면 발설 내용과 경위, 상황 등에 비춰 명예훼손의 고의를 인정하기 어렵다"라고도 판시했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