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은 타인의 삶을 들여다보는 창입니다. 나와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죠.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이 바로 문학입니다.”

지난해 노벨문학상을 받은 아프리카 난민 출신 영국 작가 압둘라자크 구르나(74·사진)는 18일 한국 언론과의 온라인 화상 인터뷰에서 문학의 역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는 이번에 《낙원》, 《바닷가에서》, 《그후의 삶》 등 대표작 3권을 출판사 문학동네에서 출간했다. 구르나의 작품이 번역 출간된 것은 아시아에서 처음이다.
압둘라자크 구르나 "문학은 타인의 삶 들여다보는 창이죠"
그는 지난해 10월 노벨위원회로부터 전화를 받았을 때 “장난 전화인 줄 알았다”고 말했다. “집에 막 들어와 차를 타던 참에 전화를 받았어요. 믿기 어려웠죠. 방에 올라가 노벨상 웹사이트에 들어갔습니다. 전화했던 그 분이 수상 발표를 하는 영상을 보고서야 실감했습니다.”

1948년 영국 보호령 잔지바르섬에서 태어난 구르나는 스무 살이던 1968년 영국으로 이주했다. 4년 전 발생한 혁명으로 아랍인과 아시아인에 대한 박해가 시작돼 고향에서 살기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구르나는 아랍계 아프리카인이었다. 그는 영국 켄트대에서 영문학 및 탈식민문학 교수로 재직하며 소설가로 활동했다. 구르나는 1987년 장편소설 《떠남의 기억》을 시작으로 10여 편의 장편소설과 다수의 단편소설을 썼다.

구르나는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소설까지 쓰는 게 힘들지 않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며 “하지만 두 일을 동시에 한 것이 아니었기에 크게 힘들지 않았다”고 말했다. 학기 중에는 교수 일에 전념하고, 안식년이나 방학 등을 이용해 소설을 썼다는 설명이다. 그는 또 “조사한 내용으로 노트를 만든 뒤 5~6주간에 걸쳐 글을 쓰고, 또 다른 일을 하다가 글쓰기로 돌아오는 식으로 작업하고 있다”고 했다.

구르나의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는 식민 지배의 비극과 고향을 떠나 살게 된 난민의 삶이다. 1994년 발표한 《낙원》은 이런 주제 의식의 원형을 찾아볼 수 있는 초기작이다. 12세 소년의 눈으로 서구 열강의 식민지 경쟁과 1차 세계대전 발발로 혼란에 빠진 아프리카의 모습을 그렸다. 2001년 작인 《바닷가에서》는 그의 작품 중 첫손에 꼽힌다. 영국에 사는 잔지바르 출신인 두 난민을 통해 타지에 사는 이방인의 삶을 그렸다. 2020년 펴낸 최근작인 《그후의 삶》은 1907년께 독일이 동아프리카 일대를 식민 지배하던 시기의 이야기를 담았다.

그는 “《낙원》은 1984년 17년 만에 고향 잔지바르를 찾았을 때 연로한 아버지가 집 건너편 모스크까지 느릿느릿 걸어가는 모습을 보고 구상했다”고 소개했다. “아버지가 소년이었을 때, 잔지바르가 영국 식민지였을 때 아버지가 어떤 성장기를 겪었을까 생각하다 아이디어를 떠올렸다”는 설명이다.

《바닷가에서》도 뉴스를 보던 중 불현듯 구상한 작품이다. “아프가니스탄에서 납치된 비행기가 영국 런던에 도착한 사건이 있었어요. 가족 단위 여행객이 많았죠. 그중에 노년의 백발 신사가 눈에 띄었습니다. 며칠 뒤 비행기에 탄 승객이 다 망명 신청을 했는데, 그 신사는 왜 자기 나라를 떠나 영국에 남기로 했을까 생각하다가 《바닷가에서》를 구상하게 됐죠.”

구르나는 아프리카 문학의 새 지평을 연 인물로 평가받는다. 흑인 대 백인, 피해자 대 가해자, 피식민주의자 대 식민주의자, 아프리카 대 유럽의 이분법적 구도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각에서 아프리카를 그렸다. 국적과 종교, 피부색을 가리지 않고 주류에서 밀려난 주변적인 존재들을 연민의 눈으로 바라봤다.

국내에 출간된 그의 대표작 3권은 어떤 순서로 읽으면 좋을까. 구르나는 “시간이 많다면 출간 순서대로 읽는 게 좋다”며 “한 권만 읽어야 한다면 최근작인 《그후의 삶》을 권한다”고 덧붙였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