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공격자가 이틀 만에 무너뜨린 테라 [한경 코알라]
3월 17일 한국경제신문의 암호화폐 투자 뉴스레터 '코알라'에 실린 기사입니다. 주 5회, 매일 아침 발행하는 코알라를 받아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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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와 이번주는 디지털자산 생태계에 상당한 긴장감이 고조된 시기였다. 혼돈과 절망과도 같은 사건들이 발생했다. 수많은 투자자들은 마진콜, 포트폴리오 가치 폭락을 마주해 포지션을 청산할 수밖에 없었다. 테라의 스테이블코인 UST가 가치를 잃고 폭락한 5월11일의 시점에서 그 원인을 분석해봤다.

사건 배경

디페깅 사건을 설명하기 앞서, 현재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테라 뿐만 아니라 실제 은행계좌에 예치된 미국 달러를 담보로 사용하는 USDC(서클), USDT(테더) 등 다른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이런 스테이블코인들은 하나의 특정 조직이 페깅의 유지 및 관리를 담당한다는 점에서 “중앙화” 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테라의 대표 상품은 알고리즘 기반으로 여러 가지 통화에 페깅된 스테이블코인이다. 대표적으로 USD에 페깅 되어 있는 UST가 있다. 이 외의 모든 스테이블코인들도 이처럼 그들이 가치 연동하고자 하는 통화와 직접적으로 페깅돼있다.

테라 스테이블코인들의 기반이 되는 것이 루나 토큰이다. 루나는 테라 생태계의 가치 그 자체를 의미하며 동시에 변동성 완화장치의 역할을 한다. 루나가 새로 발행되는 UST의 가치만큼 상환되고 해당 루나는 소각된다. 이는 곧 루나 공급의 감소, 그리고 결과적으로 루나 가격의 상승을 가져온다. 테라폼랩스 팀은 이 페깅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 거래자들에게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알고리즘을 설계해놓았다. UST를 상환하면 현재 UST의 가치와 무관하게 1달러 가치의 루나를 지급받는 알고리즘이다.

알고리즘에 대한 안전장치로 루나파운데이션가드(LFG)라는 오로지 테라 생태계의 안정성 감독을 위해 설립된 기관은 테라의 준비금 계좌에 비트코인을 추가했다. 테라폼랩스의 권도형 공동설립자는 UST의 페깅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LFG는 비트코인을 30억 달러가량까지 축적해 나갈 예정이라고 자부해왔다.

사건의 발단

이 사태의 첫 징후는 CST(미국 중부표준시) 기준 5월8일 일요일 저녁, 상당한 규모의 UST가 커브프로토콜(가장 큰 스테이블코인 유동성풀 프로토콜)에서 USDC로 스왑되면서 시작됐다. 이 첫 공격은 손실된 유동성을 이더리움 <> UST 스왑을 통해 메꾸면서 방어에 성공했다. 현재 거시적인 금융시장의 상황을 고려한다면 투자자들은 이 첫 디페깅 사건만으로도 불안해하기 충분했다. 이런 우려는 다행히 빠르게 사라지는 듯했으나 아직 안심하기는 일렀다.

5월9일 월요일 아침부터 점점 더 많은 양의 UST가 현물시장에 풀리기 시작했다. 이 양은 끊임없이 늘어나 디페깅을 방어하기 위해 LFG 준비금 계좌의 비트코인들을 바이낸스에서 매각한 후 UST를 흡수해와야 했고, CST 기준으로 오후 1시34분에 4만2530.82BTC(13억770만달러)였던 잔고가 바닥이 났다. 두 시간 뒤인 오후 3시34분. LFG 준비금 계좌에 2만8205.54 BTC(8억8108만달러)가 추가됐다. 저녁 8시20분에 페깅을 위해 또 한 번 전량 사용됐다. 이미 UST의 뱅크런은 가시화된 상태였다. 이 시점부터는 UST를 다른 스테이블코인으로 교환하거나 상환할 시 더 낮은 가격을 적용받아야 했다. 앞서 서술한 UST의 현재가치와 상관없이 상환 시 1달러 상당의 루나를 수령하는 테라의 설계가 무용지물이 된 것이다.

이 사태는 루나의 공급을 크게 증가시켰고, 가파른 자산 가치의 하락을 불러왔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BTC 가치의 지속적인 하락이 더해져 사태는 더 악화될 수밖에 없었다. 테라에 대한 커뮤니티의 신뢰는 크게 무너졌다. 루나가 10달러 아래에서 거래되면서 더 이상 UST는 디페깅을 방어하지 못했다. 이 사건은 우연히 하나의 블록체인 생태계를 둘러싼 여러 위험 요소들이 한 번에 터진 불운일까. 아니면 처음부터 정교하게 준비된 계획적인 공격이었을까.

수혜자와 피해자

트위터가 떠들썩한 와중에 많은 사람들은 다국적 헤지 펀드 거물 중 하나인 시타델증권이 공격의 최전선에 있었다고 추정하고 있다. 사실 범인이 누구인지보다 이 공격이 계획적이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Milkroad.com'의 일간 뉴스레터에 사건의 일지가 단계별로 잘 기록되어 있다.

  1. "공격자"는 3억 UST에 달하는 커브 파이낸스의 유동성 풀을 정리했다.
  2. 이후 UST를 덤핑하기 시작해 사람들을 당황시킨 후 UST를 매도했으며, 이를 통해 약간의 디페깅이 발생했다.
  3. Jump나 LFG 같은 UST의 안정성을 유지하는 주체들은 비트코인 및 이더리움 매도를 통해 UST를 매입하여 디페깅을 방어했다.
  4. 이런 상황은 어쩌면 공격자가 원했던 결과였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공격자들은 BTC을 공매도 중이었던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공매도란 가격이 하락할 것이라는 데에 베팅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LFG가 디페깅 방어를 위해 비트코인을 매도할 것이라고 예측했기에 가격 하락에 베팅을 했다고 추측이 가능하다.)
  5. 기본적으로 그들은 반격이 시작될 것을 알고 이 또한 수익 창출에 이용했던 것으로 예상된다.
  6. 대규모 공황 상태에 빠진 사람들이 거래소에서 매도하기 시작했고 이는 혼란을 가중시켰다.
  7. 거래소는 상황이 안정될 때까지 UST와 루나 거래를 중단시켰다.
  8. 이는 더 큰 혼란을 불러왔고 사람들은 앵커 프로토콜에서 더 많은 UST를 인출하기 시작했다. 결국 뱅크런은 현실이 됐다.
  9. 고작 48시간만에 전체 자산의 50% 규모의 자금이 인출됐다.

그간 테라폼랩스의 알고리즘 스테이블 코인 프로젝트에 대한 수많은 비판이 있었다. 가장 많이 언급된 우려는 UST에 대한 수요가 아주 높아야만 페깅이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거시적인 시장 상황이 불안정하다는 가정 하에 공격자는 준비를 마친 후 진입할 적절한 시기만 기다리면 됐다. 5월9일 이전까지 LFG의 준비금은 루나를 제외하면 대부분 비트코인이었다. 비트코인의 가격이 5일동안 꾸준히 하락했다는 걸 고려하면 LFG 준비금의 명목 가치도 하락해왔음을 추측할 수 있다.

시타델증권이 대출이나 장외거래 등을 통해 10만 BTC를 쌓아놓고 동시에 어느 정도의 UST까지 준비해 놓았다면, 지속적인 매도 압력을 통해 비트코인 가격을 서서히 하락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이 시점부터 비트코인이나 루나에 공매도를 하는 동시에 커브의 유동성 풀들에 대한 공격을 가하면 UST 현물시장은 공급과잉을 마주할 수 밖에 없다. 연쇄적으로 이런 상황은 UST 디페깅을 초래하고, LFG는 방어를 위해 비트코인 준비금을 매도할 수밖에 없다. 이미 약세였던 하락시장에 이런 매도 압력까지 더해지면서 비트코인 혹은 루나 공매도 포지션을 가지고 있었던 투자자에게는 막대한 수익이 돌아갔다.

위기, 그리고 새로운 기회

미 정부가 디지털자산 시장을 주시하고 있다는 점은 이미 공공연한 사실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세 달 전 행정명령에서 개인 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해 디지털자산 시장 관련 규제를 도입하고 싶다고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최근 흥미로운 두 가지 뉴스가 있었다. 첫 번째는 미국 중앙은행의 5월9일자 재무 안정성 보고서다. 보고서는 스테이블코인과 관련된 디페깅 위험을 여러 차례 지적하고 있다. 갑작스러울 수 있지만 사실 작년 11월 보고서에 이번 보고서에서 다룬 것과 동일한 우려 사항들이 이미 다수 포함돼 있었다. 두 번째는 5월10일 오전 상원 은행위원회 회의에서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이 낸 성명이다. 그는 “디지털자산은 빠르게 성장 중이며 안전성에 대한 위험이 있으므로 적절한 체계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암호화폐 규제를 다루는 법안은 올해가 "적절할 시기일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런 타이밍에 스테이블코인의 디페깅 사건이 일어났으니 개입하기 좋은 명분을 제공한 셈이 돼버렸다. 현 시점에 누가 이 일에 직접적으로 관여했는지, 앞으로 시장이 어떻게 흘러갈지에 대해 추측만 난무할 뿐이다. 하지만 윈스턴 처칠이 말했듯 위기는 언제나 새로운 기회를 동반하기 마련이다.

이번 UST 디페깅 사건의 경우 비평가들의 시선이 옳았던 것으로 보인다. 알고리즘 스테이블코인은 금번 사건과 같이 시장 상황이 악화되었을 때 엄청난 테일리스크를 수반한다. USDC(서클) 및 USDT(테더) 등과 같이 직접적인 실물 담보가 있는 스테이블코인들과 달리 테라폼랩스와 LFG에게는 필수적으로 두 가지의 자산, 즉 루나와 비트코인의 가치가 유지되어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있었다. 비트코인이 시장에서 약세를 보이기 시작했을 때 애초부터 100%에 한참 못 미치던 LFG의 담보비율(UST의 시가 총액 180억 달러 중 담보로 예치된 BTC 13억 달러)은 더 크게 낮아졌다. 준비금으로 디페깅을 방어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돌이켜보면 방어하고자 하는 상품(테라)과 높은 상관관계가 있는 자산(비트코인)으로 준비금을 구성하는 것은 취약한 구조일 수밖에 없다. 달러 준비금의 대안을 찾고 싶다면 금 등이 선택지가 될 수 있다. 하지만 금 또한 유동성과 보관비용이라는 약점이 있다. 현실적으로 실물 달러 담보의 완벽한 대안을 찾는 것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상화 베가엑스 대표는…
이상화 대표는 디지털 자산관리 기업 베가엑스 홀딩스(VegaX Holdings)의 공동 설립자 겸 최고경영자(CEO)이다. 유럽 투자은행 BNP 파리바그룹의 IB 출신으로, 금융 엔지니어링 및 핀테크와 관련 투자를 맡았다. 투자자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블록체인 업계 최신 트렌드와 인사이트를 전하는 기고문을 게재하고 있다.
▶이 글은 암호화폐 투자 뉴스레터 구독자를 대상으로 다양한 관점을 제공하기 위해 소개한 외부 필진 칼럼이며 한국경제신문의 입장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