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기의 주식오마카세에서는 매주 한 가지 일본증시 이슈나 종목을 엄선해 분석합니다. 이번주에는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PIF)의 일본 콘텐츠주 집중 매수를 다룹니다.
日 콘텐츠주 싹쓸이 하는 사우디 오일머니…그 의도는? [이슬기의 주식오마카세]
사우디아라비아의 오일머니가 일본 콘텐츠주를 쓸어담고 있다. 이들이 최근 1년 반 동안 쓸어담은 일본 상장사 지분가치만 8000억엔(8조원)이 넘는다. 사우디는 무슨 생각으로 일본 콘텐츠주를 폭풍 쇼핑 중일까. 시장은 콘텐츠 강국을 향한 사우디의 야심과 고유가·엔저 등 사우디에 유리한 시장상황이 매수세를 강화시키고 있다고 본다.

○사우디, 日콘텐츠주만 8000억엔어치 보유

지난 18일 사우디아라비아의 국부펀드 퍼블릭인베스트먼트펀드(PIF)는 4100억엔을 들여 닌텐도(종목번호 7974) 지분을 5.01% 사들였다고 일본 전자공시시스템을 통해 공시했다. PIF가 신탁은행 두 곳에 이은 3대주주로 단숨에 등극한 것이다.

일본 콘텐츠주에 대한 PIF의 '통 큰 매수'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20년 12월 일본 게임사 스퀘어에닉스(9684) 지분을 6.17% 사들이며 일본 증시에 존재감을 드러낸 PIF는 연말까지 지분을 9.59%로 늘렸다. 지난달에는 넥슨 지분을 한꺼번에 5% 사더니 지금은 9.14%까지 지분을 늘린 상태다. 다른 게임주인 캡콤(현 지분율 6.09%)과 코에이테크모(5.03%)의 주식도 쓸어담았고, 애니메이션·영화제작사 토에이(5%) 지분도 사들였다. 18일 종가 기준으로 PIF가 갖고 있는 일본 상장사 6곳의 지분가치만 8143억엔에 이른다.



PIF는 매수 배경에 대해 뚜렷한 이유를 밝힌 적이 없다. 다만 시장은 석유경제 의존을 탈피하려는 사우디가 다음 먹거리로 콘텐츠를 점찍었다고 해석했다. 국내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사우디가 제조업으로 승부를 보기엔 동남아시아처럼 노동력이 싼 국가도 아니고 이제와서 고부가가치 상품을 만들기도 쉽지 않다"며 "콘텐츠 산업은 설비투자가 중요한 산업이 아닌데다 소수의 훌륭한 인재들이 큰 수익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분야"라고 설명했다.

○강력한 IP가진 日…훌륭한 교과서이자 먹잇감

그런 사우디에게 일본은 훌륭한 교과서다. 닌텐도의 '슈퍼마리오', 스퀘어에닉스의 '파이널판타지', 토에이의 '드래곤볼' '세일러문' 등 일본 콘텐츠회사들은 강력한 지적재산권(IP)을 갖고있다. 사우디가 이들 회사의 주요주주가 되면 회사측과 더 적극적으로 소통할 수 있게 돼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야스다 히데키 동양증권 시니어애널리스트는 "(일본 콘텐츠)산업의 육성법 등을 배우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언급했다.

더 나아가 일본 콘텐츠주는 사우디에게 탐스러운 먹잇감이 될 수도 있다. 이제와서 새로운 IP를 만드는 건 높은 리스크를 수반하지만 강력한 IP를 활용해 새 게임을 만드는 건 그만큼 리스크를 줄인다. 미국 월트디즈니가 '스파이더맨' 등 IP를 보유했던 마블을 인수한 뒤 이를 활용한 영화를 만들어 공전의 히트를 쳤던 게 대표적이다. 강력한 IP를 가진 일본 콘텐츠 회사를 인수해 자국의 콘텐츠 산업 흥행에 보탤 수 있다. 일본 콘텐츠주는 글로벌 콘텐츠주에 비해 덩치도 크지 않다. 일본에서 가장 큰 닌텐도의 시총은 7조7000억엔(77조원)에 달해 액티비전블리자드(약 78조원)와 비슷하지만, 스퀘어에닉스(7609억엔)와 캡콤(9820억엔) 등은 이에 비해 훨씬 크기가 작다.

○高유가에 자금 늘었는데 엔저로 더 싸진 日기업

日 콘텐츠주 싹쓸이 하는 사우디 오일머니…그 의도는? [이슬기의 주식오마카세]
시장 상황은 사우디의 야심에 기름을 붓고 있다. 일본 중앙은행(BOJ)이 전세계 중앙은행에 반해 나홀로 통화 완화 정책을 이어가면서 엔화는 달러당 130엔을 넘어서는 등 엔화 가치가 20년 만에 최저치로 떨어졌다. 사우디 입장에서는 싼값에 일본 기업을 살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된 것이다. 후지와라 나오키 신킨에셋매니지먼트 운용부장은 "해외 기관투자자 입장에선 엔저로 인해 일본기업이 굉장히 저렴하게 비치고 있다"고 말했다.

때마침 펀드에 자금도 넘친다. 사우디는 우크라이나 사태로 유가가 급등하면서 전세계로부터 돈을 쓸어모으고 있다. 시장에선 유가 급등에 PIF의 운용자산도 급증하면서 더 적극적으로 일본 콘텐츠주를 매수할 것이라는 시각이 나온다.

이슬기 기자 surug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