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선수 출신 흑인화가 어니 반스
마빈 게이 앨범표지로 쓴 '슈가 쉑'
미국인에겐 모나리자보다 유명
세잔·모네보다 비싼 가격에 낙찰
'소더비 더 나우' 60%가 여성작가
코로나19로 인해 2년 만에 열리고 있는 미국 뉴욕 크리스티 경매와 소더비 경매를 한줄로 요약하면 이렇다. 뉴욕타임스 등 주요 외신은 세계 미술시장 흐름을 보여주는 세계 양대 경매업체의 최근 낙찰 결과를 ‘흑인 및 여성 작가의 재발견’으로 해석했다. 비주류였던 미식축구 선수 출신 흑인 화가 어니 반스의 대표작 ‘슈가 쉑’(1976)이 추정가의 76배에 팔린 영향이다. 소더비 경매의 ‘컨템퍼러리 미술 부문’(1970년 이후 작품) 출품작의 60%는 여성이 그렸다. 역사상 가장 높았다.
흑인문화의 상징이 경매의 꽃으로
18일 열린 크리스티 경매의 깜짝 스타는 어니 반스(1938~2012)였다. 흥겹게 노래하고 춤추는 흑인들을 그린 ‘슈가 쉑’의 추정가는 20만달러였다. 하지만 경매를 시작한 지 10분 만에 1527만달러(약 195억원)로 치솟았다. 22명이 달라붙어 가격을 밀어올린 결과다. 20만달러인 추정가는 물론 자신의 기존 최고가 기록(55만달러·7억원)도 가볍게 깼다.‘슈가 쉑’은 흑인 리듬앤드블루스(R&B) 가수인 마빈 게이의 1976년도 앨범 ‘아이 원트 유’의 표지와 인기 시트콤 ‘굿타임즈’ 오프닝 등에 쓰이면서 유명해진 그림이다. 이 그림을 손에 넣은 헤지펀드 매니저이자 포커 선수인 벨 퍼킨스는 “미국인에겐 모나리자보다 더 유명한 그림”이라며 “어릴 때부터 꿨던 꿈이 현실이 됐다”고 말했다.
반스는 흑인문화의 상징으로 통하는 인물이다. 그는 담배회사에서 운송을 맡았던 아버지와 비서로 일하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장학금을 26차례나 탈 정도로 재능 있는 학생이었던 반스는 노스캐롤라이나대에서 예술을 전공하며 미식축구 선수로도 뛰었다. 운동 실력을 인정받아 볼티모어 콜츠, 덴버 브롱코스 등을 옮겨다니며 커리어를 쌓았다.
선수 시절에도 스케치북을 놓지 않은 그가 화가로 정식 데뷔한 것은 1966년이었다. 여성 농구 선수들, 올림픽에 출전한 흑인 선수들을 소재로 그림을 그렸다. “조지 벨로 이후 가장 인상적인 스포츠 화가”라는 명성을 얻었지만, 주류 미술계는 흑인인 데다 운동선수 출신인 그를 인정하지 않았다. ‘슈가 쉑’의 인지도와 인기가 높아져도 그대로였다.
크리스티 경매는 이런 편견을 단번에 깼다. ‘슈가 쉑’ 낙찰가는 폴 세잔의 ‘비베무스 거리에서’(606만달러)보다 2배 이상 높고, 클로드 모네의 ‘귀리와 양귀비 밭’(1413만달러)도 능가했다. 크리스티 관계자는 “요즘 컬렉터들은 다양한 국적의 새로운 화가들을 찾는다”며 “비주류인 흑인과 중동 지역 화가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여성 천하’된 소더비 경매
19일(현지시간) 저녁에 열리는 소더비 경매의 키워드는 ‘여성’이다. 1970년대 이후 작품을 경매하는 ‘더 나우’ 이브닝 세션 출품작 중 여성이 그린 비율이 60%에 달해서다. 이 세션에는 뱅크시, 데이미언 허스트 등 ‘블루칩 남성 작가’들의 작품이 시몬 레이 등 요즘 뜨는 10명의 여성 화가 작품들과 함께 무대에 오른다.루시우스 엘리엇 소더비 더 나우 대표는 “뛰어난 완성도를 갖추지 못하면 더 나우 세션에 오를 수 없다”며 “여성 작가들의 작품 10점은 아무런 이견 없이 만장일치로 선정됐다”고 말했다.
가장 기대되는 여성 작가는 시몬 레이, 안나 위얀트, 에이버리 싱어다. 베네치아 비엔날레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흑인 여성 작가 레이의 ‘버밍험’(2021)은 추정가 20만달러에 출품됐다. 가고시안 갤러리에 소속된 최연소 작가인 위얀트는 ‘폴링 우먼’(2020)을 20만달러에 내놨다. 제니퍼 페커의 ‘파이어 넥스트 타임’(2012)의 추정가는 80만달러다. 포브스는 “여성 작가의 출품이 크게 늘고 있지만 아직 각각의 경매 추정가격은 다른 동시대 남성 작가들에 비해 낮은 수준”이라고 분석했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