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 연장 불가피하다면, 노동 경직성 완화책 함께 마련해야 [논설실 이슈태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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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인구 감소, 어떻게 대응할 건가
OECD, 고령화가 성장률 0.4%P 줄여
탄력근로제, 파업 시 대체인력 허용 등
노동 유연화가 정년 연장의 선결 조건
호봉제 개선, 임금피크제 도입 등 필요
해외 인력에 "한국이 원한다" 알려야
OECD, 고령화가 성장률 0.4%P 줄여
탄력근로제, 파업 시 대체인력 허용 등
노동 유연화가 정년 연장의 선결 조건
호봉제 개선, 임금피크제 도입 등 필요
해외 인력에 "한국이 원한다" 알려야
“한국 사회에서 노동인구가 펑크 날 수 있다.” 새 정부 출범 직전인 이달 초 조영태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인구와 미래전략 태스크포스(TF)’ 자문위원장(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이 한 말이다. 저출산·고령화와 일할 인구(생산가능인구) 감소가 어제오늘 문제는 아니지만, ‘펑크’란 표현이 돌직구처럼 묵직했다. 막연히 출산율을 높이자는 주장에 머물러선 안 되며, 현실을 인정하고 사회 전체가 적응해 갈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문도 설득력 있었다. 지난주엔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취임사에서 이민청 설립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법무행정 정상화 임무를 맡은 신임 장관이 생산가능인구(생산인구) 확충을 위한 고민까지 담아낸 것이다. 생산인구 감소에 따른 미래 불안에 다시 주목하는 이유다.
한국의 성장률 하락세가 인구구조 변화 때문만은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장기성장률 5년 1% 하락’을 강조해온 김세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고령화를 어찌할 수 없다면 노동생산성 향상과 1인당 GDP 증가율 제고에 노력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생산인구 감소 시대에 생산성을 높이기란 여간 어렵지 않다. 전현배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는 “노인이 늘면 내구재보다 노동집약적인 서비스 수요가 증가하면서 생산성이 낮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2018년 기준 서비스업 노동생산성이 제조·건설업의 53.2%(OECD 평균 85.8%)에 그칠 정도로 국내 서비스업의 생산성은 낮은 수준이다.
합계출산율 수치 목표도 문제다. 이상림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합계출산율을 언제까지 얼마로 끌어올리겠다는 정부 목표에 대해 한 독일 학자가 ‘북한에서나 할 수 있는 일 아니냐’며 놀라워했다”고 전했다. 일본은 ‘(가구)희망출산율’이란 개념을 갖고 그렇게 환경을 개선해보겠다고만 밝힌다. 비혼(非婚)·출산 기피 등 문화가 확산하고 실업, 전셋값 급등의 고통이 커지면서 출산율 제고는 청년들의 관심에서 멀어진 지 오래다. 이 연구위원은 “고령화로 내 삶이 어떻게 변화할지, 기업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살펴보고 적응 전략을 짜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조영태 교수도“정년 연장 등 세대 간 갈등 위험이 큰 문제를 시간을 갖고 다루자”고 제안한다.
여기에 연공서열식 호봉제 등 임금체계를 개선하는 작업도 필요하다. 김태기 전 단국대 교수는 “공기업 100%, 대기업 생산직은 70%가 호봉제일 정도로 국내 임금체계가 전근대적”이라며 “공무원, 공기업 직원부터 호봉 자동승급을 폐지하는 등 호봉제를 유연화하는 논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매년 자동으로 이뤄지던 호봉 승급을 적어도 평가 결과에 따르도록 해야 청년층이 수긍할 수 있을 것이란 얘기다. 2016년 57세 정년을 60세로 높이면서 권장 사항으로 남겼던 임금피크제도 이번 기회에 제대로 도입해야 할 것이다. 이 연구위원은 “정년 연장 문제는 관련 법만 고치면 되는 문제가 아니다”며 “고령자 생산성 제고를 위한 교육 훈련과 직무 재배치, 생산 현장의 기능 전수, 고령자와 함께 일하는 기업 문화 개선 등 과제가 많다”고 했다.
이런 점에서 비숙련보다는 숙련 근로자와 우수 해외 인재 유치가 관건이다. 하지만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일자리를 찾으려는 고급 개발자들이 과연 한국에 정주할 유인을 얼마나 느낄지 의문이다. 신관호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서울 명문대조차 외국의 우수 연구자를 유치하기 힘들다”며 S급 인재 유치의 어려움을 얘기했다. 그럼에도 한국이 이런 전문인력을 적극 찾는다고 하면 관련 시장이 형성될 것이라는 의견도 없지 않다. 인도·중국·우크라이나 등에서 연봉 1억원 이상에 한국을 택하는 고급인력을 겨냥한 정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국내 정보기술(IT) 소재·부품·장비 업체 쪽 고급인력 수요에 맞추는 것도 중요하다. 일단 이민청 설립 논의가 치안·사회질서를 중점적으로 보던 법무부에서 나오고 있다는 점은 청신호다.
생산인구 감소, 얼마나 심각한가
한국의 출산 감소세는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다. 작년 출생아 수 26만500명은 20년 전인 2001년 55만9000명의 절반도 안 된다. 2년 전엔 출생아 수가 사망자 수보다 적어 인구 자연 감소를 뜻하는 ‘인구 데드크로스’까지 발생했다. 합계출산율(여성 한 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도 2016년 1.17명에서 지난해 0.81명으로 확 낮아졌다. 이미 초(超)저출산인데도 그 바닥을 알 수 없다. 인구 고령화도 가팔라지고 있다.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의 14%를 넘는 고령사회는 이미 2017년에 당도했다. 2025년이면 20.3%를 기록하며 초고령사회에 접어들 전망이다. 인구 중위연령은 1990년 27.0세에서 작년 44.3세로 높아졌다. 국민이 이렇게 늙어가면 일할 수 있는 15~64세 생산인구는 물론, 경제활동인구(생산가능인구-비경제활동인구), 취업자(경제활동인구-실업자 수)도 함께 줄어들 수밖에 없다. 생산인구는 2017년 3763만 명으로 정점을 찍었다. 2030년 3381만 명, 2050년 2418만 명으로 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30년 뒤 약 1300만 명(35%)의 인구가 노동시장에서 사라진다는 얘기다.성장률·재정·생산성엔 어떤 영향?
생산인구 감소에 주목하는 것은 한 나라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정부 재정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특단의 대책이 없으면 생산인구 감소는 잠재성장률을 떨어뜨린다. 고령인구 증가는 세입 감소와 복지 지출 증가로 이어져 재정 건전성을 크게 훼손시킬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에서 고령화(30~64세 인구 비중 1%포인트 하락, 65세 이상 인구 1%포인트 상승 경우)가 진행되면 연평균 경제성장률이 0.38%포인트 하락한다는 분석(국회 예산정책처)도 있다.한국의 성장률 하락세가 인구구조 변화 때문만은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장기성장률 5년 1% 하락’을 강조해온 김세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고령화를 어찌할 수 없다면 노동생산성 향상과 1인당 GDP 증가율 제고에 노력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생산인구 감소 시대에 생산성을 높이기란 여간 어렵지 않다. 전현배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는 “노인이 늘면 내구재보다 노동집약적인 서비스 수요가 증가하면서 생산성이 낮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2018년 기준 서비스업 노동생산성이 제조·건설업의 53.2%(OECD 평균 85.8%)에 그칠 정도로 국내 서비스업의 생산성은 낮은 수준이다.
백화점식 복지사업으론 해결 난망
생산인구를 유지·충원하는 과제는 저출산 대책과 직결돼 있다. 문제는 인구 감소 속도를 늦추는 데만 집중해온 그동안의 저출산 대책이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다. 2006년부터 5년 단위로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2020년까지 3차 계획 집행에 들어간 예산만 380조원이다. 4차(2021~2025년) 계획엔 196조원이 투입된다. 그러고도 합계출산율은 0.81명으로 떨어졌다. 저출산 대응 예산인데도 출산·난임 지원 등 직접적 예산은 30%대에 불과하다. 대신 관광호텔 지원, 직장 내 괴롭힘 예방 등 ‘무늬만 저출산 예산’이 많다.합계출산율 수치 목표도 문제다. 이상림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합계출산율을 언제까지 얼마로 끌어올리겠다는 정부 목표에 대해 한 독일 학자가 ‘북한에서나 할 수 있는 일 아니냐’며 놀라워했다”고 전했다. 일본은 ‘(가구)희망출산율’이란 개념을 갖고 그렇게 환경을 개선해보겠다고만 밝힌다. 비혼(非婚)·출산 기피 등 문화가 확산하고 실업, 전셋값 급등의 고통이 커지면서 출산율 제고는 청년들의 관심에서 멀어진 지 오래다. 이 연구위원은 “고령화로 내 삶이 어떻게 변화할지, 기업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살펴보고 적응 전략을 짜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조영태 교수도“정년 연장 등 세대 간 갈등 위험이 큰 문제를 시간을 갖고 다루자”고 제안한다.
임금피크제, 호봉제 개선 꼭 필요
생산인구 감소를 막을 수 있는 대안 중 하나로 정년 연장(고령자 계속고용)이 꼽힌다. 하지만 정년 폐지가 아닌 연장을 법률로 강제하면 기업 부담은 더욱 커지고, 청년들의 노동시장 진입은 어려워진다. 생산 과정이 단순화돼 사람 손이 덜 가는 전기차 시대가 도래했는데도 현대자동차 노조는 정년 연장 요구를 굽히지 않고 있다. 따라서 탄력적·선택적 근로시간제 확대, 특별연장근로 사유 확대, 파업 시 대체인력 허용 등 고용시장을 유연화하고 기울어진 노동시장을 바로 잡는 조치를 병행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여기에 연공서열식 호봉제 등 임금체계를 개선하는 작업도 필요하다. 김태기 전 단국대 교수는 “공기업 100%, 대기업 생산직은 70%가 호봉제일 정도로 국내 임금체계가 전근대적”이라며 “공무원, 공기업 직원부터 호봉 자동승급을 폐지하는 등 호봉제를 유연화하는 논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매년 자동으로 이뤄지던 호봉 승급을 적어도 평가 결과에 따르도록 해야 청년층이 수긍할 수 있을 것이란 얘기다. 2016년 57세 정년을 60세로 높이면서 권장 사항으로 남겼던 임금피크제도 이번 기회에 제대로 도입해야 할 것이다. 이 연구위원은 “정년 연장 문제는 관련 법만 고치면 되는 문제가 아니다”며 “고령자 생산성 제고를 위한 교육 훈련과 직무 재배치, 생산 현장의 기능 전수, 고령자와 함께 일하는 기업 문화 개선 등 과제가 많다”고 했다.
고급 해외 인력 유치 미룰 수 없어
이민청 설립과 해외 인력 유치의 필요성은 많은 연구에서 검증됐다. 독일과 스페인에선 이민이 정부 재정 개선에 기여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이민자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소득이 높은 직업으로 옮겨가 세금 납부가 많아졌다고 한다. 또 이민 유입 확대가 ‘고용 확대→연구개발(R&D) 투자 수익률 향상→R&D 투자 증가→노동생산성 향상→소득 증가→1인당 GDP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 물론 이민자가 늙어가고 자녀는 늘어나면서 이들에 대한 복지 지출이 커질 위험성은 있다.이런 점에서 비숙련보다는 숙련 근로자와 우수 해외 인재 유치가 관건이다. 하지만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일자리를 찾으려는 고급 개발자들이 과연 한국에 정주할 유인을 얼마나 느낄지 의문이다. 신관호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서울 명문대조차 외국의 우수 연구자를 유치하기 힘들다”며 S급 인재 유치의 어려움을 얘기했다. 그럼에도 한국이 이런 전문인력을 적극 찾는다고 하면 관련 시장이 형성될 것이라는 의견도 없지 않다. 인도·중국·우크라이나 등에서 연봉 1억원 이상에 한국을 택하는 고급인력을 겨냥한 정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국내 정보기술(IT) 소재·부품·장비 업체 쪽 고급인력 수요에 맞추는 것도 중요하다. 일단 이민청 설립 논의가 치안·사회질서를 중점적으로 보던 법무부에서 나오고 있다는 점은 청신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