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를 움직이지 말고 눈동자만 움직여 까만 공을 천천히 따라가 보세요.” 환자가 스마트폰 스크린에 뜬 공을 눈으로 쫓는다. 이리저리 굴러가는 공을 쳐다보면 환자의 시선이 그대로 기록된다.

다음은 음성언어 과제. “그림을 보고 설명해보세요.” 환자가 그림에 나온 인물의 행동을 자세히 설명하면 목소리와 내용을 실시간으로 분석한다. 검사를 마치고 나면 바로 결과가 스크린에 뜬다. “OOO님의 인지능력은 지난달보다 좀 떨어지셨군요.”

국내 디지털 치료제 기업 하이가 개발한 경도인지장애 자가진단 프로그램 ‘알츠가드’다. 스마트기기 앱을 통해 초기 치매 환자를 90%에 가까운 정확도로 선별해낸다. 김진우 하이 대표는 “조기 진단부터 치료까지 아우르는 디지털 치료제로 치매, 범불안장애, 근감소증 등 다양한 질병에서 새로운 치료 선택지를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알츠가드 앱 7가지 인지능력 검사”

앱으로 치매 진단·치료 한번에…하이, '디지털 치료제' 새 길 열다
김 대표는 하이가 ‘3세대 디지털 의료 기업’이라고 했다. 루닛 뷰노 등 1세대는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정밀진단’에 초점을 맞췄다. 미국 아킬리 등 2세대는 게임이나 증강현실(AR)·가상현실(VR) 기술 등을 활용한 ‘치료’가 핵심이다. 하이는 진단과 치료를 합쳤다. 디지털 기술로 질병을 진단하고, 맞춤형 치료를 제공하는 디지털 표적 치료제란 설명이다.

하이는 ‘디지털 바이오마커(생체표지자)’를 활용한다. 김 대표는 “특정 단백질이나 DNA를 바이오마커로 활용해 질병을 진단하는 것처럼 정보기술(IT) 기기를 통해 환자의 디지털 정보를 수집해 질환을 진단한다”고 했다.

알츠가드는 이 같은 기술의 결과다. 스마트폰으로 앱을 다운받은 뒤 총 일곱 가지의 인지능력 검사를 시행한다. 그동안 △목소리 △시선 움직임 △심박변이도(HRV) 등 세 가지 바이오마커를 기록하고 분석한다. 김 대표는 “최근 자체 연구 결과 초기 치매 환자를 88%의 정확도로 걸러냈다”고 말했다. 보건소 등에서 치료사가 시행하는 ‘KMMSE(한국판 간이정신상태검사)’의 정확도(약 85%)와 비슷하다는 설명이다. 치매가 의심되는 고령층은 디지털 치료제 ‘알츠톡’으로 인지강화훈련을 받을 수 있다.

하이는 알츠가드를 치매안심센터와 일부 기업을 중심으로 보급하고 있다. 아직 일반 소비자에게 공개하지 않은 건 데이터의 순도를 높이기 위해서다. 김 대표는 “순도 높은 데이터를 통해 정확도를 95%까지 올릴 것”이라고 했다.

불안장애·근감소증도 타깃…美·日 공략

불안장애 우울증 공황장애 등 범불안장애를 타깃으로 한 디지털 치료제 ‘엥자이렉스’도 개발했다. 검사자가 스마트 기기로 설문지를 작성하는 동안 카메라를 통해 HRV를 진단한다. 빛을 활용해 심장박동수와 변이도를 분석하는 광혈류 측정방식(rPPG)이다. 미세한 미간의 움직임과 근육의 떨림을 분석해 우울감, 불안감, 적응 스트레스 등을 수치로 보여준다.

하이는 올 5월부터 엥자이렉스를 KMI한국의학연구소에 공급하고 있다. LG생활건강에서도 시범 서비스를 하고 있다. 엥자이렉스는 국내에서 확증임상 시험 절차를 밟고 있다. 하이는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아동을 대상으로 한 ‘뽀미’, 근감소증 치료제 ‘리본’ 등도 개발 중이다.

해외 시장도 노리고 있다. 하이는 알츠가드를 앞세워 고령층이 많은 일본 시장을 공략할 예정이다. 엥자이렉스는 연내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허가를 신청할 계획이다.

이선아 기자 sun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