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 ‘차등적용’ 여야 충돌하나…'차등적용 방지법'까지 [입법레이더]
최저임금 ‘업종별 차등적용’을 둘러싼 논쟁이 노동계에 이어 정치권까지 확산하고 있다. 차등적용 도입에 우호적인 여당과 정부에 맞서 야당은 '차등적용 방지법’을 발의하며 노동계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정치권에 따르면 이수진 민주당 의원 등 11명은 지난 18일 최저임금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사업 종류별로 최저임금을 정할 수 있도록 한 현행 규정을 삭제하는 것이 골자다.
최저임금법 일부개정법률안(이수진 의원 대표발의) 일부
최저임금법 일부개정법률안(이수진 의원 대표발의) 일부
최저임금 차등적용은 매년 최저임금위원회 회의에 올라온 단골 안건이다. 특히 경영계에서 도입의 필요성을 강하게 주장했다. 업종마다 기업의 임금지불능력 등이 천차만별이란 이유에서다.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으로 노동시장에서 퇴출된 저임금 근로자에게 재취업할 기회를 줘야 한다”는 주장도 차등적용의 근거로 쓰였다.

실제로 한국경제연구원은 2019년 발표한 ‘최저임금 차등화의 경제적 효과’ 보고서에서 “2018~2021년 최저임금을 업종별로 차등화하면 획일화하는 것보다 총 46만4000개의 일자리가 덜 감소할 것”이라고 추산하기도 했다.

정부도 최저임금 차등적용에 우호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25일 국회 인사청문회를 위해 제출한 서면 답변서에서 “최저임금 차등화 도입을 위한 현실적 준비가 미흡하다면 소모적 논쟁을 계속하기보다 조속히 충실한 기초연구·실태조사 등을 위한 연구용역 작업이라도 빨리 시작해 건설적 논의를 위한 기초를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노동계 반발에 사실상 사문화

하지만 최저임금 차등적용은 번번이 노동계 반발에 부딪혀 추진되지 못했다. 업종별로 최저임금을 차등 적용한 사례는 최저임금 제도가 처음 도입된 1988년 한차례 뿐이다. 당시 식료품·섬유·의복 등 12개 업종을 1군, 음료품·담배·가구 등 16개 업종을 2군으로 나눠 1군 업종에 더 낮은 최저임금을 적용했다. 1989년부터는 지금처럼 업종에 관계없이 동일하게 적용됐다. 지역에 따라 최저임금이 차등 적용된 적은 아예 없다. “근로자에게 최소한의 삶의 질을 보장하려는 제도 도입 취지가 무력화할 것”이란 이유가 발목을 잡았다.

이 의원은 “업종별 최저임금 차등적용 조항은 사실상 사문화돼 정비가 필요하다”며 “ 최저임금 차등 적용 시도는 근로자들에게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나 다름이 없다”고 법안 발의 이유를 밝혔다.
최저임금 ‘차등적용’ 여야 충돌하나…'차등적용 방지법'까지 [입법레이더]
이번 법안 발의는 노동계 요구에 따른 조치로 풀이된다. 그동안 한국노동조합총연맹 등 노동계는 민주당 측에 최저임금 차등적용 조항을 삭제해달라고 꾸준히 요구했다. 한국노총 지도부는 지난달 15일 당선인 신분이던 윤석열 대통령과 만나 최저임금 차등적용을 포함한 ‘노동사회정책 7대 불가 정책’을 전달한 바 있다.

한국노총은 개정안이 발의된 지난 18일 논평을 내고 “최저임금 차등적용은 근로자에게 기본적인 생활을 위한 최저선을 보장해야 한다는 제도 취지에 반하는 것”이라며 “이 의원의 최저임금 차등적용 방지법 발의를 열렬히 환영한다"고 밝혔다.

산업계 "최저임금 감당 못하는 업종 많아"

17일 내년도 최저임금 결정을 위해 열린 최저임금위원회 회의에서도 업종별 차등적용을 두고 노사가 날을 세웠다. 류기정 한국경영자총협회 전무는 "업종별 차등적용에 대해 노동계가 원천 반대하는데 이는 법으로 보장돼 있다"며 "최저임금 수준을 감당하지 못하는 업종이 있어 (차등적용을) 심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태희 중소기업중앙회 스마트일자리본부장도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은 영세 소상공인이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라며 "최저임금 인상 속도를 조절하고 현실적으로 차등적용 문제를 심도 있게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노동계 측인 이동호 한국노총 사무총장은 "최근 들어 최저임금 제도를 경제 논리로 폄하·부정하는 것은 2500만 임금 노동자에 대한 중대한 도발"이라며 "업종 구분과 같은 불필요한 논쟁은 걷어버리고 최저임금 본래 목적을 확립할 수 있는 건설적인 논의가 이어지길 바란다"고 반발했다.

양길성 기자 vertig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