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디폴트(채무불이행)에 빠질 가능성이 커졌다. 미국 정부가 러시아의 국채 원리금을 갚을 수 있는 길을 차단했기 때문이다.

미국 재무부는 24일(현지시간) 러시아가 국채 원리금을 미국 채권자들에게 상환 가능하도록 한 유예 조치를 연장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유예 조치는 25일 0시 기준으로 종료됐다.

미국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제재 조치로 지난 3월부터 러시아 중앙은행, 금융회사와의 거래를 금지했다. 그러면서 러시아가 보유한 달러 자산을 동결했다. 러시아의 전체 외화 자산 6400억달러(약 809조원) 중 해외에 있는 절반가량의 달러 자산이 묶인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미국은 한시적으로 25일까지 러시아의 외화 자산을 채무 상환용으로 쓸 수 있게 유예기간을 뒀다. 미국 채권자가 러시아로부터 국채 원리금을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조치였다. 하지만 더 이상 연장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이다.

이에 따라 러시아 채권을 보유한 미국 은행과 투자자들은 러시아로부터 원리금을 받기 힘들어졌다. 로이터통신은 “미국이 러시아에 대한 압박을 강화함에 따라 러시아를 디폴트 직전까지 몰아세울 수 있게 됐다”고 전했다.

러시아는 27일 만기가 돌아오는 1억달러 규모의 이자를 상환해야 한다. 러시아는 디폴트를 피하기 위해 미리 일부 이자를 지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블룸버그는 “러시아 측이 27일 갚을 돈을 지난주부터 송금해 왔다”고 보도했다.

러시아는 달러 자산이 동결되면 러시아 통화인 루블화로 갚겠다고 맞서고 있다. 안톤 실루아노프 러시아 재무부 장관은 “자산 동결이 해제될 때까지 국채를 루블화로 상환하겠다는 건 절대적으로 정당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달러 표시 채권은 대부분 달러 이외의 통화로 상환하는 게 금지돼 있어 러시아가 루블화로 원리금을 지급해도 최종적으로 디폴트 처리될 가능성이 높다.

러시아가 디폴트 처리되더라도 국제 금융시장에 미치는 파장은 크지 않을 것이란 견해가 지배적이다. 다만 러시아 투자액이 많은 유럽에서는 은행을 중심으로 연쇄적인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워싱턴=정인설 특파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