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이후 에너지값 등 물가가 폭등한 유럽에서 ‘횡재세(초과이윤세)’ 논란이 본격화됐다. 영국의 보수당 정권이 횡재세를 통해 가계 에너지 보조금을 지원하겠다고 밝히면서다. 헝가리에서도 정부가 국가 비상조치의 일환으로 횡재세 카드를 들고 나왔다. 기업들은 “손실을 볼 때 보전해줄 것도 아니면서 초과이익에 세금을 물리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반발하고 있다.

영국과 헝가리 “횡재세 도입”

영국 정부는 26일(현지시간) “올가을 에너지 요금이 추가 인상될 것에 대비해 석유 및 가스 기업들에 25%의 횡재세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했다. 리시 수낙 재무부 장관은 이날 의회에서 “가계 보조금 등 총 150억파운드(약 24조원) 규모의 에너지 종합대책을 마련했다”며 “횡재세를 통해 연간 50억파운드를 마련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에너지 기업들에 '횡재세' 걷겠다는 유럽
영국 전기·가스시장 규제기관인 오프젬은 오는 10월 에너지 요금 상한선이 40% 오를 것으로 예고했다. 이 경우 영국 가정이 부담해야 하는 평균 에너지 요금은 연간 2800파운드(약 445만원)가 된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그간 영국 노동당의 횡재세 도입 제안을 거부하던 보수당 정권이 국민들의 생활비 위기가 현실화하자 입장을 선회했다”고 보도했다.

영국 정부는 또 가계의 에너지 비용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오는 10월 모든 가구의 에너지 요금을 400파운드 깎아주기로 했다. 저소득층 800만 가구에는 보조금 650파운드가 추가 지원된다.

헝가리 정부도 이날 횡재세 부과 계획을 발표했다. 빅토르 오르반 총리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물가 폭등 등 경제 위기가 우려된다”며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한 지 이틀 만에 내놓은 첫 조치다. 헝가리판 횡재세의 부과 대상은 에너지 기업 외 보험사, 항공사, 유통업체, 통신사, 제약사 등도 포함한다. 이를 통해 총 8000억포린트(약 2조8000억원)를 걷을 예정이다. 헝가리 정부는 추가 세수를 에너지 요금 안정과 국방비에 쓸 계획이다. 마르통 너지 경제개발장관은 “기업의 이윤이 아니라 초과이윤을 회수하겠다는 것”이라고 했다.

앞서 지난 3월 이탈리아도 2021년 10월부터 2022년 3월까지 기업 이익 증가액이 500만유로(약 67억원)를 초과할 경우 전년 대비 10% 높은 세금을 매겨 44억유로의 재원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의회 통과 여부는 미지수

찬반 논란이 거세 각국의 횡재세 부과 방안이 의회 문턱을 넘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횡재세는 시장질서를 왜곡할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또 횡재세 부담을 지게 된 기업들이 투자나 공급을 줄이는 역효과를 낳을 수도 있다.

에너지 가격이 떨어졌을 때 생산 시설을 줄이지 않은 업체들이 누리게 된 합당한 보상을 빼앗는다는 지적도 있다.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제품 가격 하락 등 어려움을 견딘 기업들”이라며 “가격이 상승할 때 이익을 몰수하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고 보도했다.

영국 보수당의 리처드 드랙스 의원은 “정부가 사회주의자들에게 먹잇감을 던져줬다”고 비판했다. 이런 여론을 감안해 영국 정부도 “석유·가스 요금이 정상으로 돌아가면 횡재세를 단계적으로 폐지하겠다”며 “또 에너지 기업이 이익을 재투자하면 세금을 90% 경감해주겠다”고 밝혔다.

에너지 기업들은 올초부터 영국 정치권을 중심으로 번지는 횡재세 논란을 의식해 선제적으로 대규모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쉘은 향후 10년간 최대 250억파운드를, BP도 2030년까지 180억파운드를 쏟아붓겠다고 공언했다. 이탈리아 에너지 기업 에니도 영국에서 향후 4년간 25억유로를 투자하기로 했다. 그럼에도 영국 정부가 횡재세 도입을 발표하자 BP는 “투자를 재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