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포사랑쉼터' 운영하며 한인 안전하게 '재외한인구조단'에 인계
"코로나19로 노숙인 더 늘어 안타까워…앞으로도 지속해서 도울 것"
필리핀 동포 노숙인 돕는 박일경 회장 "6년간 172명 구조"
필리핀 동포 최 모(68) 씨는 지난 22일 오매불망 그리던 고국 땅을 밟았다.

그는 12년 전 필리핀에 진출해 건설업을 하면서 한때 잘나가기도 했지만, 부도가 난후 노숙자 신세가 됐다.

불법체류자인데다 건강도 악화하고, 한국 가족과도 인연이 끊어져 오갈 데가 없었던 최씨는 박일경 'SY인더스트리얼' 회장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고국행 비행기에 오를 수 있었다.

박 회장은 최 씨처럼 사업에 실패하거나 카지노와 마약 등으로 피폐해진 필리핀 동포 노숙인들을 구조하는데 앞장선 인물이다.

2016년부터 지금까지 '동포사랑쉼터'를 운영하면서 172명을 고국으로 무사히 보냈다.

그는 "필리핀에는 사업에 실패해 인생의 나락에 떨어졌지만, 창피하고 부끄러워 노숙자로 사는 동포들이 많이 있다"며 "앞으로 이들이 고국에 안전하게 돌아갈 수 있도록 지속해서 도울 것"이라고 밝혔다.

박 회장은 26∼28일 콘래드 마닐라 호텔에서 열린 '세계한인무역협회(월드옥타) 아시아 지역 지회장 회의 및 회장단 간담회'에 참가했다.

박 회장은 1998∼1999년 월드옥타 마닐라 지회 5대 회장을 지냈다.

그는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처음에는 동포 노숙자 몇 명을 개인적으로 도와주다가 2016년부터 제가 다니는 교회인 새생명교회와 한국의 '사랑밭재단'을 연결해 본격적으로 '동포사랑쉼터'를 개설해 현재까지 운영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필리핀 동포 노숙인 돕는 박일경 회장 "6년간 172명 구조"
그가 동포 노숙인 구조에 나선 것은 외환위기로 부도가 나 거리를 떠도는 한 70대 동포를 이혁 전 필리핀 대사와 함께 도와 고국으로 보내면서부터다.

노숙인들은 대부분 불법체류자여서 귀국을 하고 싶어도 필리핀 정부에 납부해야 하는 엄청난 액수의 벌과금 때문에 엄두를 내지 못하고 떠돈다.

게다가 고국에 보내주겠다고 사기를 치는 브로커들의 꾐에 빠져 헤어날 수 없는 지경에 놓인다.

박 회장은 "지금은 다 없어졌지만, 한때 브로커가 30명 가까이 있을 정도로 심각했다"며 "이혁 전 대사와 재외한인구조단의 지원 덕분에 필리핀 동포를 구조할 수 있었다"고 했다.

이 전 대사는 필리핀 이민청장에게 노숙인 송환을 위해 편지를 썼고, 벌과금 없이 추방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또 한국에 도착해도 오갈 때가 없는 노숙인들이 안전하게 묵을 수 있도록 강화도에 있는 '사랑밭재단'과 연계했다.

이 재단의 권태일 목사는 '재외한인구조단'도 운영한다.

"한 사람을 고국에 보내니 용기가 생기더라고요.

권태일 목사를 찾아가 부탁을 했죠. 필리핀 동포 노숙인을 보낼 테니 책임져 달라고요.

사랑밭재단이 50%를 지원하면 제가 나머지를 맡겠다고 해서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
오갈 데 없는 동포를 '동포사랑쉼터'로 불러들여 3개월 동안 숙식을 제공하고, 대사관에 서류를 보내 불법체류 면제 신청을 한 다음 항공권을 사 고국으로 보내는 일을 6년째 펼치고 있다.

그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으로 노숙자들도 많이 늘었어요.

이들을 모두 '동포사랑쉼터'에 입소시킬 수 없는 상황이어서 2020년 4월부터는 별도의 임시 숙소를 마련해 숙식을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북 의성이 고향인 박 회장은 1984년 두산산업 필리핀 지사장으로 왔다가 회사를 그만두고 정착해 제3국 무역 및 플라스틱 제조업체인 'SY 인더스트리얼'을 창업했다.

그는 감자, 옥수수 등을 미국에서 한국으로, 인도네시아에서 필리핀으로, 호주에서 필리핀으로 수입해 유통하느라 많은 시간을 해외 출장을 다니면서도 동포 노숙인 지원에 나서고 있다.

필리핀한인연합회장도 지낸 그는 한인들의 화합과 갈등 해결에 앞장서고 있어 '덕망 있는 사업가', '보이지 않는 손' 등으로 불린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