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신뢰 뿌리째 흔들리는 은행
‘내부통제.’ 최근 은행권에서 가장 자주 거론되는 말이다.

우리은행 기업개선부 직원이 2012년부터 2018년까지 6년간 660억원가량을 횡령한 사실이 드러나면서다. 이 직원은 세 차례에 걸쳐 내부 문서를 위조해 상관의 승인을 받은 뒤 돈을 빼돌린 것으로 파악됐다. 하지만 은행 측은 까맣게 모르고 있다가 지난달에서야 뒤늦게 이를 인지하고 경찰에 고발 조치했다.

최근 신한은행 부산 영업점에서도 한 직원이 시재금 2억원가량을 가로챈 사건이 발생했다. 시재금은 은행에서 고객이 예금을 찾으러 올 경우를 대비해 지점에 준비해놓은 현금이다. 지점은 영업이 끝나면 하루 동안 들어오고 나간 돈을 따져 100원 단위까지 꼼꼼하게 맞춰봐야 하는데 이를 제대로 하지 않은 것이다.

위험 수위 달한 모럴해저드

두 사건은 모두 기본을 지키지 않아 벌어졌다. 은행에선 잊을 만하면 대규모 횡령 사건이 터져 나왔다. 2005년 조흥은행에선 자금 결제 담당 직원이 412억원을 빼돌렸고 2013년엔 국민은행 직원이 채권을 시장에 내다 파는 수법으로 약 90억원을 횡령했다. 2017년엔 하나은행 직원이 13억원을 횡령했다가 적발됐다.

2016년부터 작년까지 국민 신한 하나 우리 농협 등 5대 시중은행에서 발생한 횡령·유용 사건은 86건에 달했다. 하나은행과 농협은행이 각각 22건으로 가장 많았고 신한은행 16건, 우리은행 15건, 국민은행 11건이었다.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은행에서 터진 횡령·배임·사기 등 금융사고 총액은 116억3000만원에 이른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은행권에선 직원들의 모럴 해저드가 위험 수위에 달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사고가 터질 때마다 은행들이 해결책으로 내놓는 단골 메뉴는 내부통제 강화다. 하지만 이는 ‘구호’에만 그치고 있다. 은행연합회는 작년 11월 ‘은행권 표준 내부통제 기준’ 개정안을 마련했다. 최고경영자(CEO)와 준법감시인이 주로 맡던 내부통제 관리와 제재를 이사회가 담당하는 게 핵심이다. 내부통제에 구멍이 뚫리면 이사회가 경영진에게 개선 계획 제출을 요구하고 책임 있는 임직원에 대한 징계 조치를 요구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있으나 마나 한 내부통제 기준

그런데 5대 시중은행 중 이런 기준을 내부 규정에 반영한 은행은 한 곳도 없다. 은행연합회도 사후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사건들이 터진 후 은행들마다 영업점과 본부 부서를 대상으로 통장의 보관·관리, 업무 처리 등이 적절하게 이뤄지고 있는지를 수시로 점검하고 있지만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란 지적이 많다. 금융당국도 비판을 피하긴 어렵다. 우리은행 사건을 놓고 금감원은 검사 시스템뿐 아니라 상시 감시 체계에서도 문제점을 노출했다. 금감원은 우리은행 직원이 횡령한 기간에 우리은행에 대해 모두 11차례 검사를 하고 상시 감시 시스템까지 가동했지만 사고 징후를 전혀 감지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은행의 핵심 기반은 고객의 신뢰다. 은행을 둘러싼 환경이 불안하더라도 고객의 신뢰가 탄탄하면 은행은 크게 흔들리지 않는다. 반면 고객의 신뢰가 무너지면 작은 사건만 터져도 은행은 존폐의 기로에까지 몰리게 된다. 은행원들이 다른 업종에 비해 상대적으로 좋은 대우를 받는 데는 외부 유혹에 흔들리지 말고 고객의 믿음을 얻는 데 힘을 쏟아야 한다는 공감대가 반영돼 있다. 은행들은 이를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