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붙은 임금피크제 논란…또다른 쟁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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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이 지난 26일 '임금피크제가 고령 근로자 차별에 해당해 무효'라는 판단을 내놓았다. 노사 모두 향후 판결이 미칠 영향력과 유불리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계산기를 두드리느라 바쁘다.
임금피크제 소송의 역사는 비교적 짧은 편이다. 2016년 정년 60세 연장을 전후로 기업들이 본격적으로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경우가 많다. 임금피크제와 관련된 소송이 대부분 2016년 이후 제기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아직 제대로 정리되지 않은 이슈도 적지 않다.
임금피크제 소송에서 문제 되고 있는 중요 쟁점들을 추가로 살펴본다.
◆임금피크제, 근로자 개별 동의를 받아야 하는가
임금피크제 소송이 처음 세간에 널리 알려지고 이슈화된 것은 2019년 11월 선고된 대법원 판결(2018다200709)이다.
당시 대법원이 적법하게 과반수 노조 동의를 얻어 취업규칙 불이익변경 절차를 통해 임금피크제를 도입했어도, 임금피크제보다 유리한 개별 근로계약에 우선하는 효력은 없다고 판단해 큰 이슈가 됐다.
이 판결은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려면 개별 근로자의 동의가 필요하다"는 취지로 전해지면서 임금피크제 소송이 급증하는 원인이 됐다. 사측 뿐만 아니라 임금피크제를 동의해 준 노동조합마저도 곤혹스러워했던 사건이었다.
이 사건에서는 정년이 2년 남았던 원고 근로자가 골프장과 스키장을 운영하는 회사와 연봉을 7000만원으로 정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그런데 불과 3개월 후 회사가 과반수 노조의 동의를 받아 취업규칙을 변경해 정년이 2년 남은 근로자에게는 연봉 60%, 1년 미만 남은 근로자에게는 40%만 지급하는 내용의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것이다. 이에 따라 연봉계약에도 불구하고 임금이 삭감된 원고는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1심과 2심은 노조가 동의해 준 임금피크제는 유효하다며 회사 측의 손을 들어줬다. 이때만 하더라도 노조가 적법한 절차에 따라 동의해준 취업규칙 변경이 당연히 우선한다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취업규칙보다 개별 근로자의 근로계약이 근로자에게 유리한 경우에는 근로계약이 취업규칙에 우선한다"고 판시했다.
업계는 물론 노조도 충격에 빠졌다. 그간 어렵게 협상을 통해 취업규칙을 바꿔 임금피크제를 도입했던 것이 헛된 일이 됐기 때문이다. 이후 퇴직자들을 중심으로 우후죽순 소송이 제기됐다.
실제로 이후 기업은행 현퇴직자 470여명이, KDB산업은행 소속 근로자 168명도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국민은행, 신용보증기금 등도 그 뒤를 이었다. 금융권에서는 해당 소송을 진행하기 위한 '시니어 노조'가 결성되기도 했다.
임금피크와 관련된 소송을 검색해보면 2019년 이후에 제기된 건이 상당히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다만 하급심에서는 근로자들이 거의 패소하고 있다. 이유는 '개별 근로계약'이 인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대법원 사건의 경우엔 원고 근로자가 명확하게 '연봉계약서'를 썼던 사건이다.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는 내용의 취업규칙에 우선하는 '개별 근로계약'이 명확하게 존재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국내 기업들은 제대로 된 의미의 연봉계약 체계를 갖추지 못하고 있다. '연봉은 취업규칙에 따른다'는 식으로 규정하고 있거나, 구체적인 임금에 관한 규정이 없는 경우가 많다. 하급심 법원들은 '개별 근로계약이라고 볼만한 것이 없다'는 이유로 기업들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 취업규칙에 우선할 '개별 계약'이 없다는 뜻이다.
다만 이 사건과 관련해 대법원에서 명확하게 판단한 적은 없다. 국민연금공단 임금피크제 사건 등에서 해당 쟁점이 심리불속행 형식으로 확정됐을 뿐이다.
엄청난 파급효과가 있었던 사건이고 사회적 파장을 불러일으켰던 사건이지만 그 후속 파급력은 생각보다 크지 않은 상황이다. 이후 대법원에서 획기적인 발상의 전환을 할지 관심이 쏠린다.
◆고령 근로자 집단의 동의 별도로 받아야 하나
임금피크제는 근로자 과반수 노조의 동의나 근로자 과반수의 동의로 취업규칙을 변경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세대 갈등의 쟁점도 있다. 특히 임금피크제로 인한 임금 삭감에 직면하고 있는 근로자 입장에서는 숫자가 많은 젊은 근로자들이 자신들을 대신해 임금피크제 적용에 동의하는 것을 인정할 수 없다며 문제를 삼는 경우가 많다.
이에 고위직·고령 근로자들은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을 위한 근로자 과반수 동의에서는 직접 불이익을 받는 근로자들만 대상으로 해서 동의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하급심 법원은 취업규칙이 결국 전체 근로자들에게 적용되는 점, 젊은 근로자들도 임금피크제 도입 당시에는 임금피크제 적용 대상이 아니었더라도 임금피크제 적용 연령에 이르게 될 경우 적용 대상이 되는 점 등을 근거로 원고 근로자들의 주장을 기각하는 경향을 띄고 있다.
◆임금 삭감은 '불이익'인가, '추가 혜택'인가
임금피크제로 인해 깎인 임금 지급이 근로자에게 불이익하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다만 대법원 선고 바로 다음 날인 27일 한국전력거래소 근로자들이 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임금 피크 소송에서 '정년 연장형' 임금피크제가 유효하다는 판결이 나왔다.
이 사건은 대법원 선고 바로 다음 날 선고되면서 마치 "정년 연장형은 괜찮다"라는 판결이 나온 것처럼 이슈화가 됐지만, 이미 앞에서 살펴봤던 수많은 임금피크제 사건들과 법리나 쟁점 면에서 크게 다르지 않은 판결이다.
다음날 선고된 사건이라 대법원이 제시한 4가지 요건을 반영했는지도 불확실하다. 남부지법 관계자는 "대법원 판결을 반영했다면 사건번호를 명시했을 것"이라며 반영이 되지 않았을 것이란 입장을 표명했다.
반면 사건을 대리한 이광선 법무법인 지평 변호사는 "대법원 사건과 크게 충돌되는 지점이 있었다면 선고 기일을 연기했을 것"이라며 대법원의 기본적인 입장이 반영됐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여하튼 한국전력거래소 사건에서 눈에 띄는 판단은 "정년이 연장된 부분의 임금 삭감은 근로자에게 불이익한 변경이 아니다"라는 판시 내용이다.
기존 임금이 삭감되는 임금피크제는 당연히 근로자에게 불이익한 변경이다. 하지만 법원은 정년이 연장된 부분에 대한 급여 지급은, 원래 정년대로였다면 주지 않아도 되는 임금을 추가 지급하는 것이기 때문에 임금을 낮게 줘도 불이익이 아니라 오히려 이익이라는 판시다.
이 논리대로라면 정년연장형에서는 취업규칙 변경을 위한 과반수 노조 등의 동의는 앞으로 필요 없어진다. 이 사건에서 임금피크 감액률이 무려 40%에 이르는데도 적법성을 인정한 것에는 이런 배경이 있다.
이 사건에서 회사 측을 대리한 이광선 법무법인 지평 변호사는 "법원은 정년이 연장된 구간에 대한 새로운 임금 제도를 신설하게 된 것이기 때문에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이 아니라고 봤다"며 "임금피크제 자체가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이 아니라는 판시는 이번 사건이 최초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앞서 설명했듯 임금피크제의 유형은 각 회사 별로 다르고 주장 내용도 상당히 다르다. 그런 점에 비해 아직 대법원 판결은 충분히 누적되지 않았다.
임금피크제를 둘러싼 논란이 확산될 가능성이 여전히 적지 않아 보인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
임금피크제 소송의 역사는 비교적 짧은 편이다. 2016년 정년 60세 연장을 전후로 기업들이 본격적으로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경우가 많다. 임금피크제와 관련된 소송이 대부분 2016년 이후 제기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아직 제대로 정리되지 않은 이슈도 적지 않다.
임금피크제 소송에서 문제 되고 있는 중요 쟁점들을 추가로 살펴본다.
◆임금피크제, 근로자 개별 동의를 받아야 하는가
임금피크제 소송이 처음 세간에 널리 알려지고 이슈화된 것은 2019년 11월 선고된 대법원 판결(2018다200709)이다.
당시 대법원이 적법하게 과반수 노조 동의를 얻어 취업규칙 불이익변경 절차를 통해 임금피크제를 도입했어도, 임금피크제보다 유리한 개별 근로계약에 우선하는 효력은 없다고 판단해 큰 이슈가 됐다.
이 판결은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려면 개별 근로자의 동의가 필요하다"는 취지로 전해지면서 임금피크제 소송이 급증하는 원인이 됐다. 사측 뿐만 아니라 임금피크제를 동의해 준 노동조합마저도 곤혹스러워했던 사건이었다.
이 사건에서는 정년이 2년 남았던 원고 근로자가 골프장과 스키장을 운영하는 회사와 연봉을 7000만원으로 정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그런데 불과 3개월 후 회사가 과반수 노조의 동의를 받아 취업규칙을 변경해 정년이 2년 남은 근로자에게는 연봉 60%, 1년 미만 남은 근로자에게는 40%만 지급하는 내용의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것이다. 이에 따라 연봉계약에도 불구하고 임금이 삭감된 원고는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1심과 2심은 노조가 동의해 준 임금피크제는 유효하다며 회사 측의 손을 들어줬다. 이때만 하더라도 노조가 적법한 절차에 따라 동의해준 취업규칙 변경이 당연히 우선한다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취업규칙보다 개별 근로자의 근로계약이 근로자에게 유리한 경우에는 근로계약이 취업규칙에 우선한다"고 판시했다.
업계는 물론 노조도 충격에 빠졌다. 그간 어렵게 협상을 통해 취업규칙을 바꿔 임금피크제를 도입했던 것이 헛된 일이 됐기 때문이다. 이후 퇴직자들을 중심으로 우후죽순 소송이 제기됐다.
실제로 이후 기업은행 현퇴직자 470여명이, KDB산업은행 소속 근로자 168명도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국민은행, 신용보증기금 등도 그 뒤를 이었다. 금융권에서는 해당 소송을 진행하기 위한 '시니어 노조'가 결성되기도 했다.
임금피크와 관련된 소송을 검색해보면 2019년 이후에 제기된 건이 상당히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다만 하급심에서는 근로자들이 거의 패소하고 있다. 이유는 '개별 근로계약'이 인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대법원 사건의 경우엔 원고 근로자가 명확하게 '연봉계약서'를 썼던 사건이다.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는 내용의 취업규칙에 우선하는 '개별 근로계약'이 명확하게 존재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국내 기업들은 제대로 된 의미의 연봉계약 체계를 갖추지 못하고 있다. '연봉은 취업규칙에 따른다'는 식으로 규정하고 있거나, 구체적인 임금에 관한 규정이 없는 경우가 많다. 하급심 법원들은 '개별 근로계약이라고 볼만한 것이 없다'는 이유로 기업들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 취업규칙에 우선할 '개별 계약'이 없다는 뜻이다.
다만 이 사건과 관련해 대법원에서 명확하게 판단한 적은 없다. 국민연금공단 임금피크제 사건 등에서 해당 쟁점이 심리불속행 형식으로 확정됐을 뿐이다.
엄청난 파급효과가 있었던 사건이고 사회적 파장을 불러일으켰던 사건이지만 그 후속 파급력은 생각보다 크지 않은 상황이다. 이후 대법원에서 획기적인 발상의 전환을 할지 관심이 쏠린다.
◆고령 근로자 집단의 동의 별도로 받아야 하나
임금피크제는 근로자 과반수 노조의 동의나 근로자 과반수의 동의로 취업규칙을 변경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세대 갈등의 쟁점도 있다. 특히 임금피크제로 인한 임금 삭감에 직면하고 있는 근로자 입장에서는 숫자가 많은 젊은 근로자들이 자신들을 대신해 임금피크제 적용에 동의하는 것을 인정할 수 없다며 문제를 삼는 경우가 많다.
이에 고위직·고령 근로자들은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을 위한 근로자 과반수 동의에서는 직접 불이익을 받는 근로자들만 대상으로 해서 동의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하급심 법원은 취업규칙이 결국 전체 근로자들에게 적용되는 점, 젊은 근로자들도 임금피크제 도입 당시에는 임금피크제 적용 대상이 아니었더라도 임금피크제 적용 연령에 이르게 될 경우 적용 대상이 되는 점 등을 근거로 원고 근로자들의 주장을 기각하는 경향을 띄고 있다.
◆임금 삭감은 '불이익'인가, '추가 혜택'인가
임금피크제로 인해 깎인 임금 지급이 근로자에게 불이익하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다만 대법원 선고 바로 다음 날인 27일 한국전력거래소 근로자들이 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임금 피크 소송에서 '정년 연장형' 임금피크제가 유효하다는 판결이 나왔다.
이 사건은 대법원 선고 바로 다음 날 선고되면서 마치 "정년 연장형은 괜찮다"라는 판결이 나온 것처럼 이슈화가 됐지만, 이미 앞에서 살펴봤던 수많은 임금피크제 사건들과 법리나 쟁점 면에서 크게 다르지 않은 판결이다.
다음날 선고된 사건이라 대법원이 제시한 4가지 요건을 반영했는지도 불확실하다. 남부지법 관계자는 "대법원 판결을 반영했다면 사건번호를 명시했을 것"이라며 반영이 되지 않았을 것이란 입장을 표명했다.
반면 사건을 대리한 이광선 법무법인 지평 변호사는 "대법원 사건과 크게 충돌되는 지점이 있었다면 선고 기일을 연기했을 것"이라며 대법원의 기본적인 입장이 반영됐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여하튼 한국전력거래소 사건에서 눈에 띄는 판단은 "정년이 연장된 부분의 임금 삭감은 근로자에게 불이익한 변경이 아니다"라는 판시 내용이다.
기존 임금이 삭감되는 임금피크제는 당연히 근로자에게 불이익한 변경이다. 하지만 법원은 정년이 연장된 부분에 대한 급여 지급은, 원래 정년대로였다면 주지 않아도 되는 임금을 추가 지급하는 것이기 때문에 임금을 낮게 줘도 불이익이 아니라 오히려 이익이라는 판시다.
이 논리대로라면 정년연장형에서는 취업규칙 변경을 위한 과반수 노조 등의 동의는 앞으로 필요 없어진다. 이 사건에서 임금피크 감액률이 무려 40%에 이르는데도 적법성을 인정한 것에는 이런 배경이 있다.
이 사건에서 회사 측을 대리한 이광선 법무법인 지평 변호사는 "법원은 정년이 연장된 구간에 대한 새로운 임금 제도를 신설하게 된 것이기 때문에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이 아니라고 봤다"며 "임금피크제 자체가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이 아니라는 판시는 이번 사건이 최초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앞서 설명했듯 임금피크제의 유형은 각 회사 별로 다르고 주장 내용도 상당히 다르다. 그런 점에 비해 아직 대법원 판결은 충분히 누적되지 않았다.
임금피크제를 둘러싼 논란이 확산될 가능성이 여전히 적지 않아 보인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