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분기 사상 최대 적자를 낸 한국전력이 원화 채권을 쏟아내면서 다른 공기업들이 ‘한전채 불똥’을 피해 해외 자금 조달을 늘리고 있다. 한전채 발행 물량 급증으로 공기업 채권 금리가 뛰어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외화채 발행 환경은 상대적으로 우호적이라는 평가다.

31일 투자금융 업계에 따르면 신용보증기금은 지난 28일 3억달러 규모 유로본드를 발행했다. 신용보증기금의 첫 외화채 발행이다. 중소·중견기업의 자금 조달을 지원하는 신보는 그동안 국내 조달 창구만 이용해 왔다. 신보 관계자는 “코로나19 이후 채권 발행 수요가 커질 것으로 보여 조달 수단을 다양화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다른 공기업들도 해외 조달시장을 찾는 발길이 부쩍 잦아졌다. 예년보다 발행 물량이 커지고 처음 외화채를 발행하는 기관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5월에만 한국동서발전과 한국도로공사, 수출입은행, 산업은행 등이 연이어 외화채 시장을 찾았다. 수출입은행은 올해 1월 국내 기관으로는 역대 최대인 30억달러(약 3조8000억원) 규모 글로벌본드를 발행한 데 이어 24일 15억유로(약 2조원) 규모 유로화본드를 찍었다.

지난 4월에는 한국수자원공사와 광해광업공단, 한국중부발전 등이 외화채 조달에 나섰다. 한국수자원공사는 약 4년 만에, 한국중부발전은 약 2년 만에 외화채 시장을 찾았다. 광해광업공단은 올해 첫 데뷔 무대를 가졌다.

공기업들이 외화채 발행을 선호하는 건 한전이 원화채 발행 환경을 악화시켰기 때문이다. 한전은 올 들어 5월까지 12조원 규모 회사채를 발행했다. 사상 최대치였던 지난해 연간 발행액 약 10조원을 이미 넘겼다. 이에 조달금리도 빠르게 높아졌다. 최근 발행한 3년물 발행금리는 연 3.7%, 5년물 발행금리는 연 3.9%에 달한다. 작년 2분기 한국전력이 발행한 3년물 채권의 발행금리는 연 1.6%, 5년물은 1.9% 수준이었다.

한 자산운용사 회사채 펀드매니저는 “핵심 공사채 중 하나인 한전채 발행 물량 급증이 전체 회사채 스프레드(국고채 금리와의 격차)를 키우면서 시장 금리를 왜곡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전채가 속한 ‘AAA’급 공사채의 3년물 평균 신용스프레드는 30일 기준 약 0.36%포인트로 1년 전과 비교해 두 배 이상 벌어졌다.

국내 공기업 외화채에 대한 외국 기관투자가의 반응도 우호적이다. 투자은행(IB)업계 관계자는 “해외 채권시장 조달금리도 올랐지만 상대적으로 우량한 한국물의 경우 안전자산으로 여겨지면서 탄탄한 기관 수요가 이어지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최석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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