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첫 수출한 원자력발전소인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  한경DB
한국이 첫 수출한 원자력발전소인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 한경DB
사우디아라비아가 한국에 원자력발전소 건설 참여 의사를 타진해오면서 윤석열 정부의 원전 10기 수출 목표에도 청신호가 켜졌다. 한국 원전은 가격 경쟁력이 높고 안전성도 세계 최고 수준인 만큼 사우디 원전 수주전에 도전해볼 만하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사우디 원전 수주에 성공하면 폴란드, 체코 등 동유럽 국가를 대상으로 한 원전 수출 전략도 탄력받을 수 있다. 다만 핵사찰을 거부하는 사우디와 미국의 껄끄러운 관계가 걸림돌이다. 한국이 미국과 맺은 ‘원전 동맹’이 효과적으로 작동하느냐가 사우디 원전 수주의 핵심 변수라는 관측이 나온다.

시공 능력은 최고인데…

사우디에 수출하려면 美 협조 필수…시험대 선 '韓·美 원전동맹'
세계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는 한국이 건설한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의 성공을 확인한 뒤 원전 건설에 속도를 내고 있다. 원전이 탄소중립과 에너지 안보를 모두 달성할 수 있는 수단으로 떠오른 것이다.

한국은 미국 컴버스천엔지니어링(웨스팅하우스에 합병)에서 원천기술을 사와 ‘한국형 원자로(APR1400)’를 개발했다. 2012년께 원자로 냉각펌프 등의 기술력을 추가 확보하면서 APR1400의 기술 자립에 성공했다. 미국 도움 없이 독자적으로 원전을 건설할 수 있게 됐다. 게다가 부품·시공 능력에서 한국은 세계 최고로 평가받는다. 한국은 바라카 원전을 1기당 약 4조~5조원에 지었는데 미국, 프랑스 등은 한국보다 원전 건설비가 두 배가량 더 비싸다.

한국의 이 같은 원전 경쟁력에도 불구하고 사우디 원전 수주를 낙관하긴 이르다. APR1400은 미국의 원천기술을 사용해 수출할 때 미국 원자력법 123조를 적용받기 때문이다. 이 법에 따라 미국이 원전 수출을 막은 국가에 한국이 독자적으로 수출을 추진하기엔 제약이 크다. 사우디가 이란을 의식해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을 꺼리고 있는 점도 변수다. 130개 이상 국가가 합의해 미신고 원자력 시설에 대한 사찰을 강제한 IAEA 추가의정서에 사우디는 아직 가입하지 않고 있다. 이란이 핵무장에 나서면 맞불을 놓겠다는 게 사우디의 속내다. 한수원 관계자는 “미국이 원자력법 123조에 대한 규제 완화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한국도 사우디 원전 수출이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미 공조 절실

한국 정부는 최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방한과 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양국이 원전 수주전에 공동 대응하기로 합의한 점에 기대를 걸고 있다. 한국이 미국의 협조하에 사우디 원전 건설사업을 수주하고 웨스팅하우스 등 미국 원전 기업들이 주요 부품을 납품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방식으로 수익을 나누는 게 최상의 시나리오라는 게 원전업계 시각이다. 한국이 2009년 수주해 지은 UAE 바라카 원전의 경우 미국 기업들이 전체 수주액의 5~10%가량을 나눠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이 미국과의 공조를 통해 사우디 원전 수주에 성공하면 향후 원전 수출 시장에서도 우위를 점할 수 있다. 경쟁자인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국제 사회의 신뢰를 잃었고, 프랑스의 경우 원전 1기 건설에 최소 10조원은 필요한 것으로 알려진 점을 감안할 때 가격 경쟁력에서 한국이 앞선다는 평가다.

전문가들은 원전 수출 시장도 확대될 것으로 보고 있다. 중동뿐만 아니라 석유·가스의 러시아 의존도가 높았던 유럽 국가들도 에너지 안보 중요성을 자각하면서 원전 건설에 대한 시각이 긍정적으로 변하고 있다. 영국은 2050년까지 전력 구성의 25%를 원전으로 채운다는 목표다. 체코도 2020년 37%인 원자력 비중을 점차 끌어올려 46~58%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특히 폴란드는 1.4GW급 원전 6기를 발주해 원전 수출국의 주목을 끌고 있다. 폴란드 원전 6기의 규모는 최소 40조원이 넘을 전망이다.

원전업계 관계자는 “미국과 한국은 원전 수출 시장에서 경쟁과 협력을 동시에 해야 하는 묘한 상황”이라며 “양국이 모두 이기는 전략을 함께 고민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이지훈/김소현 기자 liz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