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연극 '고래', 잠수정 속 모두 숨진 채 발견된 北 간첩들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왜 이들은 서로에게 총을 겨눴나
北 잠수정 침투 사건 실화 바탕
이데올로기 등 정치적 요소 대신
죽음 앞 인간 본성과 갈등 조명
거칠고 감정적인 전개가 특징
北 잠수정 침투 사건 실화 바탕
이데올로기 등 정치적 요소 대신
죽음 앞 인간 본성과 갈등 조명
거칠고 감정적인 전개가 특징
1998년 6월 강원 속초 앞바다. 한국 어선이 쳐놓은 꽁치잡이 그물에 북한 무장간첩 9명을 태운 잠수정 한 척이 걸렸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해군은 잠수정을 나포한 지 나흘 만에 내부로 들어갔다. 당시 잠수정 조종실 및 침실에서는 북한 승조원 9명 전원이 숨진 채로 발견됐다. 모두 총격을 입은 상태였다.
서울 혜화동 연우소극장에서 공연 중인 연극 ‘고래’는 실제로 속초에서 발생한 북한 잠수정 침투 사건을 소재로 다뤘다. 극작가 겸 연출가인 이해성 극단 고래 대표가 이 사건을 다룬 뉴스를 보고 잠수정 내부에서 무슨 일이 있었을지를 상상해 극본을 썼다. 2007년 처음 무대에 올랐고, 2014년 재연 이후 8년 만에 관객을 찾았다.
무대는 잠수정 속 비좁은 조종실로 꾸며졌다. 날것 그대로 드러난 파이프와 철근 구조는 마치 거대한 고래 배 속에 들어온 듯하다. 잠수정장(신현종 분)과 기관장(전형재 분), 부기관장(홍철희 분), 무전수(박형욱 분), 전투원 세 명(이요셉·문종철·김태양 분) 등 승조원 7명 중 가장 막내인 무전수(박형욱 분)의 서사가 두드러진다. 미성숙하고 두려움에 떠는 모습과 아버지 고향 땅의 흙을 챙기는 모습 등을 통해 분단의 아픔을 간접적으로 드러낸다.
북한 간첩이란 정치적인 소재를 다뤘지만 작품은 정치극으로 비치지 않는다. 체제나 이데올로기를 논하기보다 보편적인 인간의 본성을 고찰한다. 남한의 대형마트에서 훔쳐 온 분유, 속옷 등 각종 생필품을 북한 승조원들이 나눠 가진 뒤 전투원1(이요셉 분)과 전투원3(김태양 분)이 다투는 장면에서 공산주의는 왜 인간의 욕망을 긍정하지 못하는지, 역사적으로 승리했다고 간주되는 자본주의는 과연 완벽한 것인지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극은 이데올로기를 넘어 행복이란 무엇인지 묻고, 죽음을 앞둔 인간이 갈등하는 모습을 조명하는 데 집중한다.
연출은 다소 거칠고 남성적이다. 공연 시간 90분 내내 기쁨과 즐거움, 다툼, 절망 등 감정의 소용돌이가 숨 쉴 틈 없이 휘몰아친다. 서로 혹은 자기 자신을 향해 총구를 겨누는 절정의 장면에선 땀 냄새와 담배 향이 배어나는 것 같다. 작품 중간에 본능적 욕망을 묘사하기 위해 간간이 등장하는 여성에 대한 인식이 담긴 대사는 현대적 정서와 동떨어져 있다. 공연은 다음달 5일까지.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
서울 혜화동 연우소극장에서 공연 중인 연극 ‘고래’는 실제로 속초에서 발생한 북한 잠수정 침투 사건을 소재로 다뤘다. 극작가 겸 연출가인 이해성 극단 고래 대표가 이 사건을 다룬 뉴스를 보고 잠수정 내부에서 무슨 일이 있었을지를 상상해 극본을 썼다. 2007년 처음 무대에 올랐고, 2014년 재연 이후 8년 만에 관객을 찾았다.
무대는 잠수정 속 비좁은 조종실로 꾸며졌다. 날것 그대로 드러난 파이프와 철근 구조는 마치 거대한 고래 배 속에 들어온 듯하다. 잠수정장(신현종 분)과 기관장(전형재 분), 부기관장(홍철희 분), 무전수(박형욱 분), 전투원 세 명(이요셉·문종철·김태양 분) 등 승조원 7명 중 가장 막내인 무전수(박형욱 분)의 서사가 두드러진다. 미성숙하고 두려움에 떠는 모습과 아버지 고향 땅의 흙을 챙기는 모습 등을 통해 분단의 아픔을 간접적으로 드러낸다.
북한 간첩이란 정치적인 소재를 다뤘지만 작품은 정치극으로 비치지 않는다. 체제나 이데올로기를 논하기보다 보편적인 인간의 본성을 고찰한다. 남한의 대형마트에서 훔쳐 온 분유, 속옷 등 각종 생필품을 북한 승조원들이 나눠 가진 뒤 전투원1(이요셉 분)과 전투원3(김태양 분)이 다투는 장면에서 공산주의는 왜 인간의 욕망을 긍정하지 못하는지, 역사적으로 승리했다고 간주되는 자본주의는 과연 완벽한 것인지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극은 이데올로기를 넘어 행복이란 무엇인지 묻고, 죽음을 앞둔 인간이 갈등하는 모습을 조명하는 데 집중한다.
연출은 다소 거칠고 남성적이다. 공연 시간 90분 내내 기쁨과 즐거움, 다툼, 절망 등 감정의 소용돌이가 숨 쉴 틈 없이 휘몰아친다. 서로 혹은 자기 자신을 향해 총구를 겨누는 절정의 장면에선 땀 냄새와 담배 향이 배어나는 것 같다. 작품 중간에 본능적 욕망을 묘사하기 위해 간간이 등장하는 여성에 대한 인식이 담긴 대사는 현대적 정서와 동떨어져 있다. 공연은 다음달 5일까지.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