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한복판에 있는 국내 최대 쇼핑몰이자 초고층 건물인 '서울타워'에서 좀비 바이러스가 퍼진다.
3시간 만에 신속한 진압과 봉쇄가 이뤄졌지만, 타워 안에는 여전히 수많은 좀비와 사람들이 남아 있다.
잃어버린 가족을 찾기 위해서 버티는 사람도 있지만, 탈영병이나 전과자, 학교폭력과 가정폭력 피해자, 사업에 실패한 사장, 갈 곳 없는 노인들도 이곳을 떠나지 않는다.
이들에게는 타워 밖의 현실이 당장 목숨을 위협하는 좀비보다도 두렵기 때문이다.
이명재 작가의 '위 아 더 좀비'는 좀비물의 외피를 쓰고 있지만, 현대 사회의 뒷면으로 밀려난 인간군상을 조명하는 블랙코미디에 가깝다.
주인공인 김인종은 아르바이트를 3개씩 뛰며 '몇 살까지 열심히 살아야 할까?'라는 의문을 품고 있다가 타워에 갇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를 맛보면서 1년째 눌러앉은 인물이다.
도중에 새총에 맞아 쓰러졌다가 일으켜질 때도 '삶은 역시 강제적이라는 것'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본인이 세상의 흐름에 떠밀려 살고 있다는 점을 인지하고 있다.
이처럼 인종은 현대 사회 속에서 떠밀려 사는 수많은 사람을 대변하는 듯하다.
동생을 괴롭히는 일진을 죽인 '소영', 군대의 부조리에 질려 탈영한 '경업', 글을 쓰지 않는 추리소설 작가 지망생 '왓 존슨', 우울증에 걸린 '보라' 등 인종과 함께 사는 사람들도 모두 현실과 동떨어진 타워에서 안식을 찾는다.
이들은 직원 카드가 있어야 출입할 수 있는 분실물 보관소에 안전한 거처를 만들고 가끔 외부에서 식량을 조달하면서 나름대로 평온하게 살아간다.
타워에 인종의 무리만 있는 것이 아니다.
사회에서는 손이 느려서 타박을 받았지만, 타워에서는 천천히 커피를 타며 이야기를 들어주는 '카페 사장 지혜', 공권력을 대신해 나쁜 무리를 징벌하는 '착한 청년단', 이들을 오가면서 물건과 정보를 전하는 '보부상 김씨'까지 다양한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과정이 시트콤처럼 펼쳐진다.
하지만 이들이 영원히 현실을 외면한 채 좀비 타워에서 살 수는 없다.
인종은 우연히 탈출로를 찾아낸다.
당장은 "큰일 날 뻔했네"라고 생각하며 돌아섰지만, 결국 인종의 무리는 이듬해 봄에 이곳에서 나가기로 결정한다.
흔한 좀비물과 달리 이들이 성공적으로 탈출할지는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는다.
독자들은 인종의 좀비타워 생활을 지켜보면서 잠시 안식을 얻고, 다시 현실로 돌아갈 힘을 얻을 뿐이다.
학교폭력에 시달리던 동생과 보복살인을 저지른 누나, 화장실이 딸린 집에 사는 게 소원이라 타워 내 화장실에서 생활하는 남매, 명문대와 공무원이라는 안정된 궤도를 따라가다가 자신을 잃어버린 우울증 환자 등 어두운 사회 문제를 무겁지 않게 풀어내는 것이 이 작품의 가장 큰 장점이다.
동시에 유머로만 스토리를 풀어가지 않고, 빠르고 냉정한 현대사회와 그 속에서 으깨지는 개개인의 삶을 반복해서 조명하는 실력이 인상적이다.
알록달록하고 뭉글한 그림체도 스토리와 잘 어우러진다.
이 작품은 2020년 네이버 지상최대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았으며, 지난해부터 네이버웹툰에서 연재 중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