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 뒤 100일(3일)을 앞두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세계를 상대로 여론전(戰)을 펼쳤다. 러시아는 반도체 제조에 필수인 불활성 가스를 무기로 세계 각국을 겁박했고 우크라이나는 피해를 강조하며 무기를 지원해달라고 호소했다.

2일(현지시간) 로이터 등 외신에 따르면 러시아는 반도체 생산 공정의 핵심 소재인 네온 등 불활성 가스 수출을 올해 말까지 제한하기로 결정했다. 네온, 아르곤, 헬륨, 크립톤, 크세논, 라돈 등 6가지 불활성 가스를 수출 제한 품목으로 지정했다. 이를 수출하려면 당국의 특별 허가를 받도록 규제한 것. 비우호국들에 수출 제한 조치를 시행하려는 전략으로 보인다.

바실리 쉬박 러시아 산업통상부 차관은 현지 언론인 타스와의 인터뷰에서 “반도체 생산에 약 4000개의 소재와 화학물질이 사용되지만 모든 생산자가 공통으로 필요한 기본소재가 있다”며 “고순도 가스 중에선 특히 네온이 그렇다”고 말했다.

불활성 가스는 다른 원소와 반응하지 않는 기체다. 반도체·자동차 공정 등에 활용되는 핵심 소재로 특히 네온과 아르곤은 복잡한 전자회로를 반도체 기판 위에 회로를 그리는 작업인 ‘리소그래피(lithography)’에 사용된다. 네온은 빛을 활용해 반도체 웨이퍼에 미세회로를 각인하는 노광공정에 쓰인다.

이번 조치로 반도체 공급난이 심화할 거란 전망이 나온다. 러시아는 세계 희귀 가스 공급량의 30%를 생산하고 있다. 세계 최대 네온가스 생산국이던 우크라이나는 지난 3월 마리우폴과 오데사에 있는 가스 생산 공장을 폐쇄했다.


쉬박 차관은 “(이번 조치는) 손상된 공급망을 재조정하고 새로운 공급망을 만드는 기회가 될 것”이라며 “세계 초소형전자 시장에서 러시아의 입지를 강화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또 그는 “다른 국가들과 협상을 할 때 우리에게 경쟁 우위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같은 날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룩셈부르크 의회 영상 연설을 통해 “국토의 약 5분의 1이 러시아에 점령됐다”고 피해를 호소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약 12만 5000㎢에 달하며 벨기에·네덜란드·룩셈부르크 등을 합친 것보다 큰 면적”이라고 호소했다. 러시아에 빼앗긴 영토가 한반도 면적(약 22만 3000㎢)의 절반에 육박하는 것. 또 그는 “30만㎢에 달하는 국토가 지뢰와 불발탄으로 오염됐다”고 역설했다.

그는 민간인 피해도 언급하며 지원을 요청했다. 전쟁으로 인해 약 1200만명의 실향민이 생겨났고 군인을 포함한 사망자는 1만 4000명에 달한다는 것. 우크라이나를 떠난 이주민은 500만명으로 추산됐다.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동부지역 점령에 주력하며 피해는 심화할 전망이다. 우크라이나가 무기 지원 요청을 지속하는 이유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같은 날 심야 연설을 통해 “러시아에 점령된 영토가 재난지역이 됐다”며 “동맹국으로부터 무기 지원 등 소식이 있기를 고대한다”고 공언했다. 그는 “고도화된 무기를 활용해 우크라이나군을 현대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연설에 앞서 서방국가들이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 정책을 발표했다. 지난 1일 미국이 첨단 로켓 시스템이 포함된 7억달러(약 8700억원) 규모의 추가 무기 지원안을 발표했다. 영국도 사거리 80㎞인 중거리 로켓을 지원하기로 했다. 독일도 대공미사일·레이더 추적기 등을 제공할 방침이다. 스웨덴은 대함미사일을 전달할 예정이다.

<<미국은 러시아를 옥죄려 표적 타격용 드론(무인기)을 우크라이나에 판매할 계획이다. 미국 행정부는 로이터는 1일 무인 정찰·공격 드론인 ‘그레이 이글 MQ-1C’ 4대를 우크라이나에 판매하는 계획을 세우고 의회를 통과한 뒤 공식화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