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건축은 '삶을 담는 공간'
대부분 대학 건축학과 커리큘럼은 건축의 기본적 요소를 두루 갖춘 주택 설계부터 시작한다. 과제가 주어지면 학생들은 건축학도가 되기 전부터 꿈꾸었던 나름의 멋진 집을 디자인하기 위해 조형적인 해결책을 찾아 나선다. 하지만 주택을 설계하면서 주관적인 경험에 얽매이거나 선호하는 외형을 미리 정해놓고 시작하면 대부분 실패하고 만다.

집(house)이라는 물질적 구조물을 디자인하려는 접근보다는 주택의 혼이 되는 집(home), 즉 가족 공동체나 가정생활, 주거의 습성, 사용자의 기호 등 비물질적인 가치에 관해서 먼저 고민해 보도록 학생들에게 가르친다. 눈에 보이고 구상화한 물리적 형상보다는, 사용할 사람들의 정서적인 면과 삶에 대해서 숙고하고 시작해야 균형 잡힌 건축 설계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인습에 치우치지 않으면서도 독창적이고 편리하며, 미학적으로도 아름다운 건축에 이르려면 본질을 바라보면서 생각을 뒤집는 다면적 사고방식이 필요하다. 겉으로 쉽게 드러나 보이는 조형성보다는 건축물 내부에서 조성되는 공간의 추상성을 모색할 때, 비로소 건축설계는 시작된다.

건축의 내부를 디자인할 때는 ‘공간의 확장(擴張)’이란 것에 관심을 두는데, 실제 소유한 것보다 더 넓게 인식하는 방식이다. 즉 창문에 처마를 덧대거나 방의 모서리를 여는 방식만으로도 실제 면적보다 훨씬 더 넓은 실내 공간으로 인지할 수 있게 된다. 물리적 면적으로는 좁더라도 공간적으로 크게 느끼도록 하는 감각적 공간 전략이다.

조경 계획에서 공간 개념의 추상화는 더욱 깊어진다. 경치를 빌려 온다는 ‘차경(借景)’이란 개념은 만져지기도 어려운 먼 자연을 내 집 속으로 끌어올 때, 건축은 내부 공간에 담길 자연 영역을 한정 짓는 ‘틀’을 형성하며, 이 가치를 누릴 줄 아는 것을 고차원적 조경이라고 보는 것이다.

건축, 이것은 삶을 담는 공간의 존재를 깨닫고, 보이지 않는 공간의 무게를 느끼며, 직접 소유하지 않고서도 공간을 빌려와 풍족히 누릴 줄 아는 추상적 가치를 중시한다. 오래전부터 건축의 본질을 꿰뚫어 본 현자들은 외관 아닌 공간 속에 인간의 삶과 시간의 흔적이 기록됨을 이해했고, 빈 마당의 외부공간 안에 이벤트가 담기고, 벽과 지붕이 구성하는 내부 공간 속에 인간의 생활이 채워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건축의 핵심은 외형(外形·shape)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비어 있는 내면의 ‘허(虛·void)’, 즉 공간에 있음을 이해할 때, 건축물의 가치를 논할 수 있다. 그리고 건축 공간을 이해하는 열린 개념은 소유하지 않고서도 공유할 수 있는 인간 사고의 지평을 넓혀주는 돌파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