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전쟁이 3일로 100일째에 이른 가운데 러시아는 반도체 제조에 필수인 불활성 가스의 수출을 제한하겠다고 나섰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국토 20%가 점령당했다며 국제사회에 호소했다.

러시아 정부는 반도체 생산 공정의 핵심 소재인 네온 등 불활성 가스 수출을 올해 말까지 제한하기로 2일(현지시간) 결정했다. 수출 제한 품목은 네온, 아르곤, 헬륨, 크립톤, 크세논, 라돈 등 여섯 가지 불활성 가스다. 수출하려면 정부의 특별 허가를 받아야 하므로 러시아에 맞서는 이른바 비우호국을 겨냥한 조치로 풀이된다.

불활성 가스는 다른 원소와 반응하지 않는 기체로 반도체·자동차 공정 등에 활용된다. 네온과 아르곤은 복잡한 전자회로를 반도체 기판 위에 그리는 작업인 리소그래피에 사용된다. 네온은 빛을 활용해 반도체 웨이퍼에 미세회로를 그리는 노광공정에 쓰인다.

이번 조치로 반도체 공급난이 심화할 거란 전망이 나온다. 러시아는 세계 희소 가스의 30%를 생산·공급해 왔다. 세계 최대 네온가스 생산국이던 우크라이나는 지난 3월 마리우폴과 오데사에 있는 가스 생산 공장을 폐쇄했다.

같은 날 젤렌스키 대통령은 룩셈부르크 의회 영상 연설을 통해 “국토 중 약 5분의 1이 러시아에 점령됐다”고 피해를 호소했다. 그는 “점령된 지역의 면적은 약 12만5000㎢로 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등을 합친 것보다 넓다”고 했다. 이는 한반도 면적(약 22만3000㎢)의 절반에 육박한다. 지뢰와 불발탄 오염, 민간인들의 피해 규모도 강조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같은 날 심야 연설을 통해 “동맹국으로부터 무기 지원 등 소식이 있기를 고대한다”며 “고도화된 무기를 활용해 우크라이나군을 현대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1일 미국은 첨단 로켓 시스템이 포함된 7억달러(약 8700억원) 규모의 추가 무기 지원안을 발표했다. 영국도 사거리 80㎞인 중거리 로켓을 지원하기로 했다. 독일은 대공미사일과 레이더 추적기, 스웨덴은 대함미사일을 전달할 예정이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