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사학자 박정혜 한중연 교수 '조선시대 사가기록화' 출간
장수·출세·번창…옛 그림에서 찾아낸 사대부들의 바람
조선은 이른바 '기록의 나라'였다.

실록, 승정원일기, 일성록 같은 문헌뿐만 아니라 의궤나 궁중기록화 등 다양한 그림도 남겼다.

세밀한 기록화를 보면 조선이 의례를 어떻게 치렀는지 짐작할 수 있다.

기록에 대한 욕심은 비단 왕실뿐만 아니라 사대부들도 지니고 있었던 듯하다.

일례가 한 인물의 시나 문장을 모은 문집이다.

행사나 의례, 생애와 관련된 사건을 표현한 회화인 사가기록화(私家記錄畵)도 기록을 향한 열망이 표출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회화사를 연구하는 미술사학자인 박정혜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신간 '조선시대 사가기록화, 옛 그림에 담긴 조선 양반가의 특별한 순간들'에서 그동안 학계에서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사가기록화를 심도 있게 조명한다.

사가기록화는 '사가'와 '기록화'가 결합한 말이다.

사가는 왕실이나 관청과 대비되는 용어이고, 기록화는 초상화나 산수화와 달리 특정 장면을 묘사한 그림이다.

저자는 첫 장에서 "사가기록화는 단순히 사실을 재현한 시각물에 머무르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집안 역사는 물론 조선 양반가의 유교적 가치, 가문에 대한 자부심이 모두 투영된 산물이라는 것이다.

사가기록화는 16세기부터 많이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궁중기록화나 관청기록화보다 수가 많은 편이다.

사가기록화에는 대개 특별한 제작 목적이 있었다.

저자는 사가기록화를 관통하는 핵심 주제 세 가지로 장수, 높은 관직, 가문 번성을 꼽는다.

장수를 염원하고 축하하는 의미를 담은 그림으로는 '경수연도', '회혼례도' 등이 있다.

부모의 장수를 축원하는 잔치나 혼인 6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를 화폭에 표현한 회화다.

출세와 관련된 기록화는 과거 급제 동기생 모임, 지방 수령 부임 등이 소재가 됐다.

저자는 "지방관 부임 모습은 행렬도 형식으로 많이 그려졌는데, 특히 평양이라는 도시의 특수성과 명성에 힘입어 평안도관찰사 그림이 많았다"고 설명한다.

가문 안녕과 번성을 드러내기 위한 기록화에 대해서는 "고인이 된 조상의 시호(諡號·공덕을 칭송해 붙인 이름)를 후손이 받아들이는 '연시례도', 후손이 집안에 있는 기록화를 하나로 모은 화첩 등이 해당된다"고 짚는다.

장수·출세·번창…옛 그림에서 찾아낸 사대부들의 바람
조선 중기부터 유행한 사가기록화는 19세기를 기점으로 수량이 현저히 줄어들었다.

저자는 그 이유를 '평생도'의 등장에서 찾는다.

평생도는 돌잔치, 혼례식, 과거 급제, 정승 취임 등 삶의 경사스러운 순간을 담은 그림이다.

저자는 "평생도는 풍속화의 한 영역으로 다뤄졌지만, 조선 후기 사대부 사회의 열망이 시각화된 사례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며 "평생도의 각 장면은 사가기록화와 밀접하게 연관돼 있어 두 장르를 분리해 생각하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아울러 그는 사가기록화가 영남 지역과 수도권을 중심으로 발전했고, 제작자가 당대 최고 화가부터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화원까지 다양했다는 사실도 소개한다.

또 앞서 제작된 그림을 베낀 모사본이 많지만, 모사본 하나하나에도 사연이 있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조선시대 그림 가운데 사가기록화만큼 인간의 세속적 바람을 고스란히 담아낸 그림도 없을 것"이라며 "족보나 문집이 가문의 전승 기록물을 대표한다면, 사가기록화는 가문의 역사를 시각적으로 대표하는 또 다른 존재"라고 결론짓는다.

혜화1117. 712쪽. 5만9천원.
장수·출세·번창…옛 그림에서 찾아낸 사대부들의 바람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