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맹국끼리 경제적 협력관계를 강화하는 프렌드쇼어링(friend-shoring)이 세계 경제 성장을 저해하고 인플레이션을 자극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세계무역기구(WTO) 소속 경제학자들의 연구를 인용해 미국과 중국이 각각 주도하는 두 개의 배타적 경제블록이 형성될 경우 10~20년 안에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5%가 감소할 전망이라고 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세계 GDP 감소액 예상치를 금액으로 환산하면 4조4000억달러(약 5508조원)다.

최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미·중 갈등 등의 여파로 세계화 시대가 끝나가고 있다는 분석이 이어지고 있다. 이런 탈세계화 경향을 잘 보여주는 신조어가 프렌드쇼어링이다. 동맹국들끼리 공급망 등을 구축하는 프렌드쇼어링은 최근 미국이 역점을 두고 있는 전략이다. 오프쇼어링(생산시설의 해외 이전) 때문에 서방 경제의 중국 의존도가 높아졌다는 판단이 반영됐다. 제조업의 자국 복귀를 뜻하는 리쇼어링의 대안으로 프렌드쇼어링이 주목받기도 했다.

일부 경제학자는 프렌드쇼어링의 종착지를 블록경제(일부 국가끼리 경제적으로 결속하는 경제)로 보고 있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 중심의 경제 블록, 중국과 러시아가 주축을 이루는 또 다른 경제 블록이 맞대결하는 구도가 형성될 수 있다는 전망이다.

WSJ에 따르면 경제학자 중 상당수는 프렌드쇼어링이 세계 경제에 중장기적 악재라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각국의 정책 수립에 있어 정치·외교적 관계, 안보 문제가 경제적 효율성보다 더 중요한 고려 사안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일례로 인건비나 원자재 가격이 훨씬 싸도 적대국과는 무역하지 않게 된다. 그만큼 각국이 부담해야 할 원가가 상승하고 소비자가격도 오르게 된다.

세계화 시대에 선진국을 대신해 생산기지 역할을 하고 무역 상대국이 돼 경제 발전을 이룬 개발도상국의 충격이 특히 클 것이란 예상이다. WTO 경제학자들이 블록경제 형성 시 세계 GDP가 감소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은 이유다.

베아타 자보르치크 유럽부흥개발은행(EBRD)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최근 세계가 블록 경제로 나아가는 듯하다”며 “프렌드쇼어링 움직임이 냉전시대를 연상케 한다”고 우려했다. WSJ는 프렌드쇼어링의 여파로 세계 물가가 코로나19 팬데믹 전보다 높은 수준을 유지할 가능성이 상당하다고 봤다. 또 기업들이 소속 국가의 정치적 이해관계를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원가 절감 등 경제적 효과에만 집중해 의사결정을 내리기 어려워질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프렌드쇼어링을 지지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프렌드쇼어링을 통해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동안 불거진 공급망 병목을 완화하고 반도체 칩이나 원자재 등 확보의 안정성을 강화할 수 있을 것이란 분석이다. 상호 신뢰할 수 있는 동맹국끼리 뭉치게 되면 원가는 다소 상승하더라도 위험도는 낮출 수 있다는 뜻이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