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민 칼럼] 위선의 가면 벗기는 재판 시작됐다
한국 현대사의 가장 독특한 권력형 범죄 중 하나가 월성 원전 1호기 경제성 조작 사건이다. 권력이 어떻게 국민을 기만하고, 공무원 및 전문가의 영혼을 파괴하며, 국가 경제에 해악을 끼치는지를 총체적으로 드러낸 오욕투성이다. 지도자의 얼토당토않은 편견과 엉터리 선무당 지식이 사회를 어떤 혼란으로 몰아가는지에 대한 처절한 반면교사이기도 하다. 그 첫 공판이 기소된 지 10개월이나 지난 오늘에서야 열린다.

피고는 아직은 세 명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의 중대 지시 사항인 월성 원전을 조기 폐쇄하는 논리적 근거를 만들기 위해 회계법인이 경제성을 조작하도록 하는 데 관여한 혐의가 있는 채희봉 전 청와대 산업정책비서관(현 한국가스공사 사장),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한양대 교수), 정재훈 한국수력원자력 사장 등이다.

월성 원전 조기 폐쇄로 대변되는 탈원전 과정은 단순한 실정이 아니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멀쩡하게 가동되던 원전을 당장 폐쇄하기 위해 국가 문서를 아무 거리낌 없이 조작하고, 헌법기관의 감사를 방해하기 위해 자료를 무더기 삭제하는 등 국가 운영의 기본 질서를 뒤흔든 파렴치 범죄다. 한수원의 ‘설비현황조사표’도 허위로 만들어졌으며, 회계법인의 경제성 평가는 두 차례나 강제 조작됐다. 후일 이런 사실이 들통나 감사원이 감사를 벌이자 산업부 공무원 세 명이 일요일 밤 11시 사무실에 잠입해 원전 관련 파일 530개를 삭제했다. 강준만 교수의 표현대로 공무원의 준법 자율성을 말살해 그들을 ‘영혼 없는 꼭두각시’로 만든 중대 범죄행위인 것이다.

월성 원전 사건을 촉발한 것은 문 전 대통령의 청와대 인트라넷 댓글이었다. 문미옥 당시 청와대 과학기술보좌관(현 과학기술정책연구원장)의 월성 1호기 방문기를 보고 문 전 대통령이 단 “월성 1호기는 언제 폐쇄합니까”라는 댓글에 화들짝 놀란 청와대 보좌진과 산업부가 즉시 폐쇄를 위한 작업에 나서면서 온갖 무리수가 동원됐다. 청와대의 탈원전 컨트롤타워였던 ‘에너지전환 TF’는 문 정부 시절 ‘왕수석’으로 통하던 김수현 사회수석이 팀장을 맡았으며, 채 전 비서관 등 청와대 비서관과 산업부의 에너지정책 총괄인 박원주 에너지자원실장 등이 참여했다.

그러나 이들 중 월성 원전 사건과 관련해 기소된 사람은 채 전 비서관 한 사람뿐이다. 그는 산업부 에너지자원실장을 지내고 무역투자실장으로 있다가 문 정부 들어 청와대 비서관으로 임명됐다. 탈원전TF에서 김 전 수석을 보좌하던 그가 대통령의 핵심 공약이자 댓글을 직접 달 정도로 적극적으로 챙기는 사안의 최종 책임자로 지목된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검찰 공소장에는 김 전 수석에 관한 내용은 거의 언급돼 있지 않다. 산업부 블랙리스트 건으로도 수사받고 있는 박원주 전 실장 역시 문 정부 마지막 경제수석을 지냈다.

월성 원전 사건 공판 과정과 추가 수사를 통해 청와대 핵심부와 관련된 진실이 반드시 밝혀져야 한다. 채 전 비서관과 김 전 수석 간의 보고·지시 사항, 김 전 수석과 문 전 대통령 간에 월성 원전 및 탈원전과 관련해 나눈 대화에 대한 수사가 이뤄져야 한다. 대통령이 경제성 조작 등을 인지했을 경우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원자력발전소라는 국가 핵심 에너지 시설이 하루아침에 문을 닫는 것에 절차적 문제를 몰랐다고 한다면 이 역시 선택적 외면에 가까운 것이다.

신념 윤리에 함몰된 정치적 유아들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을 때 위선이 피어난다. 위선자들은 가면이 벗겨지지 않도록 끝까지 안간힘을 쓴다. ‘검수완박’이 그것이다. 심야에 잠입해 파일을 삭제한 산업부 공무원들과 경제성 평가서를 조작, 작성한 회계사도 모두 재판받고 있다. 그들을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으로 만든 ‘주범’들이 언제까지 숨어 있도록 놔둬야 하나. 진실과 징치(懲治)만이 더 이상의 불의를 막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