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자유주의와 반지성주의
“인류 역사를 돌이켜보면 자유로운 정치적 권리, 자유로운 시장이 숨 쉬고 있던 곳은 언제나 번영과 풍요가 꽃피었습니다.” 이 길지 않은 문장이 윤석열 대통령 취임사의 핵심이다. 우리 사회의 구성 원리인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대한 믿음을 이처럼 힘차게 밝힌 취임사는 없었다.

이번 취임사는 윤 대통령 자신이 썼다고 알려졌다. 투박한 문체를 보면, 연설문 작성자가 윤필하지도 않은 듯하다. 파격에 가까운 담대함이다. 그래서 울림이 더 크다. 윤 대통령은 시민들의 자유를 늘리기 위해 애쓰고 국제 관계에서도 자유에 바탕을 두고 협력하겠다고 밝혔다. 실제로 그는 기업 규제 개혁을 첫 번째 과제로 삼아 직접 챙기겠다고 밝혔다.

주목할 대목은 우리 사회의 위기가 반지성주의에서 비롯했다는 진단이다. 자유주의에 대한 위협은 전체주의다. 전체주의와 반지성주의는 친화적이지만, 두 개념이 비슷한 것은 아니다. 전체주의는 나름으로 잘 짜인 이념이지만, 반지성주의는 개인적 태도와 사회적 풍토의 모습을 한다. 반지성주의는 추상적 지식과 지식인에 대한 부정적 태도와 풍토를 가리킨다.

역사를 살피면, 우리는 반지성주의가 흔히 전체주의에서 나왔음을 발견한다. 널리 알려진 경우는 전체주의 제국 진(秦)을 세운 시황제의 분서갱유(焚書坑儒)다. 제자백가(諸子百家)가 나온 전국시대의 자유로운 풍토를 억압적 질서로 바꾸는 과정에서 그 사건이 일어났다. 전체주의의 반지성주의적 모습은 철저한 전체주의 체제였던 소련에서 선명하게 나왔다.

1930년대 초엽에 트로핌 리센코라는 젊은 농업 기술자가 갑자기 소련 사회의 주목을 받았다. 그는 식물들의 한 세대가 얻은 유용한 특질은 다음 세대로 유전된다고 주장했다. 이런 주장은 생물학의 정설에 어긋났다. 그때는 이미 다윈의 진화론과 멘델의 유전학이 결합해서 현대적 생물학이 정립된 터였다. 그래서 체세포들의 경험은 다음 세대로 전달되지 않고 성세포들의 유전자만이 다음 세대의 특질을 형성한다는 것을 모두 받아들였다. 리센코는 유전자의 존재를 아예 부정했다.

리센코주의(Lysenkoism)라고 불린 이런 주장은 공산당 정권의 입맛에 맞았다. 농장들의 집단화가 불러온 생산량 급감에 당황한 소련은 리센코의 주장을 농업 문제 해결책으로 여겼다. 스탈린의 지지를 받자, 리센코주의는 공식 학설이 됐다. 그 뒤로 20년 동안 소련에서 유전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직장을 잃고 감옥에 갇혔으며 여럿이 더러 목숨을 잃었다. 이런 정치적 탄압으로 러시아의 생물학은 황폐해졌다. 아울러, 그른 생물학 지식에 바탕을 둔 농업 정책은 기근을 더욱 심각하게 만들었다.

흥미로운 것은 1950년대 중국이 리센코주의를 받아들여 러시아의 경험을 되풀이했다는 사실이다. 1950년대 초엽 중국에선 줄잡아도 4000만 명이 굶어 죽었다. 공산당 지도자들이 리센코의 이론을 지지한 근본적 이유는 그의 이론이 전체주의와 부합한다는 점이다. 그는 생물들이 학습을 통해 천성을 쉽게 바꾼다고 주장했는데, 스탈린이나 마오쩌둥 같은 전체주의 지도자도 인민들이 학습을 통해서 생각과 행태를 쉽게 바꿀 수 있다고 믿었다. 반면에, 현대 생물학은 사람의 천성이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처럼 전체주의는 반지성주의를 속성으로 지니고, 반지성주의는 전체주의 질서의 출현을 돕는다. 전체주의의 특질을 유난히 짙게 띠었던 지난 정권 아래서 반지성주의가 번창했던 것은 당연하다. 경제를 파탄으로 몬 ‘소득주도성장’은 상징적이다. 찬찬히 살피면, 소득주도성장은 리센코주의와 여러모로 비슷하다. 둘 다 정설에 어긋나는 비과학적 주장이며, 정권의 비호를 받아 추진됐고 엄청난 해를 끼쳤다.

윤 대통령의 취임사는 자유주의자에게 자신들의 신념을 펼칠 계기를 마련해 줬다. 짧은 취임사에서 충분히 다뤄지지 못한 얘기들을 찬찬히 펼쳐서, 시민들이 우리 사회의 구성 원리를 보다 잘 알도록 돕는 것이 그들의 책무다. 특히 개인들의 자유를 한껏 늘려서 시장경제가 발전하면 사회가 조화롭게 발전하는 과정을 시민들이 깊이 이해하도록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