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매로 세상얻기] 다시는 꾸고 싶지 않을 ‘4’의 악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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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닷컴 더 라이피스트
이런 황당한 일이 또 어디 있을까! 경매업무를 시작한 지 어언 16년. 그간 각급 경매법정 내 입찰과정에서 숱한 사건ㆍ사고들을 목격해왔지만 이 같이 황당한 사건은 처음이다.
지난 11월 4일 서울동부지방법원에 입찰이 있었던 날. 필자도 입찰할 물건이 있어 경매법정에 들렀다. 처음엔 듬성듬성하게 비어있던 자리가 어느새 빈자리 없이 빼곡하게 들어차더니 입찰 마감 시점에는 통로나 복도에도 비집을 틈 없이 사람들로 붐볐다.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전세난, 주택가격에 대한 저점 인식, 정부의 부동산활성화를 위한 정책적 지원 등의 원인으로 중소형아파트에 대한 인기가 되살아나고 있지만 그래도 혹시나 모를 추가 하락에 대비해 가격경쟁력 확보 차원에서 저가의 매물을 찾으려는 수요자들이 대거 경매시장으로 몰리고 있는 형국이다.
침체된 부동산시장을 부양하기 위한 8.28부동산대책으로 향후 집값이 오를 것이라고 판단한 탓인지 최근 들어 경매시장에 내 집 마련 실수요자나 투자자들이 부쩍 늘었음을 실감했지만 이렇게 사람들이 많을 줄이야! 오늘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필자가 입찰한 송파구 가락동 가락쌍용아파트 29평형은 이날 두 번째로 입찰자가 많은 13명이 응찰해 감정가의 94%에서 낙찰이 됐다. 보기 좋게 낙방했음은 물론이다. 불과 두어 달 전만해도 1회 유찰된 물건은 거들떠보지도 않았었는데 그새 상황이 바뀌었다.
개찰을 진행하는 과정에 다른 물건보다 심하게 웅성거림이 들려온 물건은 성동구 하왕십리 소재 청계벽산아파트 34평형을 개찰할 즈음이다. 입찰자를 호명하는데 17명. 이날 최고의 경쟁을 기록한 물건이다.
더군다나 입찰표를 개봉해 입찰가를 불러주는 순간 한번 더 곳곳에서 웅성거림이 들려왔다. 이 아파트의 감정가는 4억2000만원, 1회 유찰된 최저매각가는 3억3600만원. 낙찰가는 4억5630만원으로 낙찰가율이 무려 108.64%를 기록했다. 최근 거래된 사례로 보아 아무리 시세를 높게 평가해도 4억1000만원 이상 보기에는 어려운 아파트이다.
이 아파트를 최초매각가인 4억2000만원보다 3630만원이나 높게, 시세보다는 4630만원이나 높게 낙찰됐으니 아무리 경매가 과열됐다고 한들 최근의 주택시장 침체 상황으로 보아 도저히 써낼 수 없는 입찰가가 나온 셈이다.
낙찰자는 향후 이 아파트값이 그 이상 오를 것이라 예상하고 입찰가를 써냈을까? 아니면 근저당채권을 양수한 채권자 입장에서 입찰에 참여한 것일까? 갖은 상념에 사로잡혀 있었는데 개찰 시 그 답이 나왔다. 이도저도 아녔다.
개찰 시 최고가매수인을 호창했을 때 낙찰자가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입찰가를 재차 확인한 낙찰자는 아연실색했다. 자신이 써내고자 하는 금액은 4억5630만원이 아니라 3억5630만원이었단다. 3자를 4자로 잘못 써내 쓰고자 한 금액보다 1억원을 더 써낸 셈이다.
그간의 입찰과정에서 입찰가액에 ‘0’을 하나 더 써낸 사례는 종종 있었지만 입찰가액의 제일 앞자리 숫자를 잘못 써낸 경우는 필자가 알기로는 처음 있는 일이다.
‘0’을 하나 더 써내든 앞자리 숫자를 잘못 써내든 또는 입찰자의 단순한 실수이든 고의적 실수이든 이 사실은 매각불허가 대상이 되지 않는다. 대금납부기한이 지정될 수밖에 없고 낙찰자는 기 기한내에 대금을 납부할 것인지 아니면 대금을 납부하지 않고 매수신청보증금으로 제공한 3360만원을 몰수당할 것인지 심각한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는 사안이다.
이 건은 예정대로 매각결정이 나고 매각이 확정되면서 12월 24일까지로 대금납부기한이 잡혔다. 낙찰자가 12월 24일까지 대금을 납부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되는 사안이다.
이날 이렇게 입찰가를 잘못 써내 사고가 난 사례 외에도 매각기일이 변경되거나 취소됐음에도 그 사실을 모르고 입찰한 사람도 있었다. 경매대중화로 입찰자 저변이 확대되면서 입찰사고 유형도 점차 다양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그간 서울을 제외한 수도권, 특히 일산, 분당 등 1기 신도시 중심으로 전세가로 내 집을 마련할 수 있는 경매물건이 인기를 끌었지만 그 여세가 서울까지 그것도 강남권까지 확산되고 있는 느낌을 여실히 보여줬다.
이날 진행된 중소형아파트는 입찰자수에서 정도의 차이는 있었을 뿐 그간의 서울 평균 낙찰가율을 훨씬 웃도는 수준에서 대부분 낙찰이 됐다.
카페: 경제적 자유를 위한 경매투자자들의 모임(http://cafe.daum.net/ewau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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