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래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은 채 무작정 거래대금의 일부만 송금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돈이 수수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상대방의 계약진행 여부가 불확실하다는 이유로, 계약진행에 대한 구속력을 갖기 위해 생겨난 특이한 우리만의 관행인 셈이다. 게다가, 계약체결이 되지 못하면 중개 수수료를 받지 못하는 우리의 중개실무 관행상, 계약서가 작성되지 못함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분쟁에 대한 우려는 돈으로 손님을 잡아두고보자는 욕심에 뒷전으로 밀리곤 한다.
하지만, 계약서 없이 돈만 오고간 상태에서 분쟁이 발생하면 분쟁해결은 참으로 쉽지않다. 대부분의 재판은 계약내용을 해석하는 과정인데, 해석해야 할 계약내용이 정확치않다보니 재판이 어려울 수 밖에 없다.

다음의 사례 역시 제주도 토지를 매매함에 있어 계약서 작성 없이 1억원이라는 거액이 수수된 후 “신공항건설”이라는 대형 개발호재의 등장으로 서로간에 가격에 대한 분쟁이 발생했고, 급기야는 송금받은 사람을 상대로 계약위반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소송까지 제기되고 말았다.



★ 제주지방법원 2016. 7. 19.선고 2015가단56832 약정해제금 청구의 소

1. 원고의 주장
원고는 2015. 11. 10. 피고로부터 피고와 정000가 각 1/2 지분씩 소유하고 있는 서귀포시 성산읍 00리 000 임야 3,841㎡, 같은 리 000 임야 10,119㎡, 같은 리 10006 임야 4,245㎡(이하 위 3필지를 ‘이 사건 각 토지’라 한다)를 평당 약 9만 원(전체 매매대금 495,830,000원)에 매수하기로 하는 매매계약을 구두로 체결하였고, 계약서는 다음날 작성하기로 하였다. 원고는 위 매매계약에 따라 계약금 1억 원을 피고에게 송금하였다.
그 후 이 사건 각 토지 인근에 신공항이 들어선다는 발표가 나자 피고는 2015. 11. 13. 원고에게, 본인의 지분만 평당 약 11만 원에 매도하겠고 원고가 이를 수락하지 않으면 매매계약을 파기하겠다고 하였고, 원고가 이를 바로 수락하지 않자 원고를 피공탁자로 하여 1억 원을 공탁하였다.
피고가 계약 파기의 의사를 명확히 하면서 계약금을 반환한 것은 이행거절의 의사를 표시한 것이고, 계약금 1억 원은 거래의 관행상 위약금으로 볼 수 있는바, 피고를 상대로 위약금 1억 원 및 이에 대한 지연손해금의 지급을 구한다.

2. 원고의 주장에 대한 판단
부동산에 대한 매매계약이 체결되었다고 보기 위해서는 매매목적물과 매매대금, 계약금, 잔금의 액수나 그 지급시기 등 계약체결에서 중요한 사항에 관한 의사가 확정적으로 합치되어야 하는바, 이 사건에서 원·피고 사이에 매매목적물과 매매대금 등 계약체결에서 중요한 사항에 관한 의사가 확정적으로 합치되었는지 본다.
갑 제1호증의 기재, 증인 김00의 증언 및 변론 전체의 취지에 따르면, 피고가 2015. 11. 10.경 원고로부터 이 사건 각 토지에 대한 매수 의사를 전해 듣고 자신도 매도 의사를 표시하면서 다른 공유자인 정000도 지분을 매도할 것이라는 내용을 전달한 사실, 피고는 이 사건 각 토지의 매매대금을 평당 약 9만 원으로 정하는 것과 원고가 같은 날 계약금을 지급하는 것에 동의하여 원고에게 계좌번호를 알려주었고, 이에 원고가 계약금으로 1억 원을 송금한 사실, 원·피고는 계약서를 다음날 각자 작성하여 팩스로 교환하기로 한 사실, 피고는 3일 후인 2015. 11. 13. 원고에게, 이 사건 각 토지 인근이 신공항부지로 발표가 나는 바람에 정000가 이 사건 각 토지의 지분을 매도하지 않으려 한다고 하면서 자신의 지분만이라도 평당 약 11만 원이면 매도하겠다고 하였으나 원고가 이를 수락하지 않은 사실을 각 인정할 수 있다.
위 인정사실에다가 갑 제1 내지 3호증, 을 제2호증(각 가지번호 포함)의 각 기재, 증인 김00의 증언 및 변론 전체의 취지를 종합하여 알 수 있는 다음과 같은 사정, 즉 원·피고는 당초 피고의 지분 뿐만 아니라 정000의 지분까지 모두 매매의 목적물로 파악하고 매매대금을 평당 약 9만 원으로 하기로 하였으나 3일 후 정000가 매도의사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이에 피고는 자신의 지분만이라도 매도하겠다고 하면서 평당 약 11만 원을 매매대금으로 제시한 점, 이러한 과정에서 작성된 부동산매매계약서(을 제2호증)에는 매매대금의 기재가 없고 단지 원고가 입금한 1억 원이 계약금이라는 기재만 있으며 원고의 도장이 날인되지도 않고 피고의 무인만 날인되어 있는 점, 원고는 피고로부터 정000의 지분 매도의사를 들었을 뿐 정000나 그 대리인으로부터 직접 매도의사를 확인한 것이 아닌 점, 원고가 피고에게 계약금의 명목으로 송금한 1억 원도 통상 거래관행에 따라 매매대금을 먼저 확정하고 그 10% 정도의 금액으로 정한 것이 아니고 원고가 임의로 정하여 송금한 것인 점 등에 비추어 볼 때, 원고가 2015. 11. 10. 피고로부터 구두로 피고와 정000의 매도의사를 확인하고 스스로 정한 계약금 1억 원을 피고에게 송금하였다 하더라도, 매매목적물이나 매매대금 등 계약체결에 있어서 중요한 사항에 관하여 원·피고, 정000 사이에 확정적인 의사의 합치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고 단지 매매계약 체결의 교섭단계에 있었다가 그 체결이 무산된 것이라고 봄이 상당하다.
따라서 원고가 주장하는 바와 같은 매매계약이 확정적으로 체결되었음을 전제로 원고가 송금한 1억 원을 위약금으로 보아 그 지급을 구하는 원고의 주장은 더 나아가 살필 필요 없이 받아들일 수 없다(설령 원·피고 사이에 매매계약이 확정적으로 체결된 것으로 보더라도, 원고는 피고와 위약금에 관한 합의를 한 적은 없고 관행에 따라 계약금을 위약금으로 청구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는바, 계약금을 위약금으로 하기로 하는 특약이 없는 이상 상대방은 계약불이행으로 입은 실제 손해만을 배상받을 수 있을 뿐 계약금이 위약금으로서 상대방에게 당연히 귀속되는 것은 아니어서 피고에게 송금된 1억 원을 위약금으로 배상하라는 원고의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



결국, 분쟁 없는 안전한 거래를 위해서는 중요한 계약내용은 분명한 문구로 계약서화하는 자세가 기본인데, 만약 부득이하게 계약서가 작성되지 못한 상태에서 대금이 수수되는 상황이라면 향후 분쟁을 대비해서 미리 계약의 기본적인 사항, 즉 대금, 지급일, 목적물, 매매당사자 등에 대해서는 휴대폰 문자 교환 등의 방법으로라도 명백히 정해두는 자세가 필요할 수 있다. -이상-



※ 칼럼에서 인용된 판결의 전문은 최광석 변호사의 홈페이지인 www.lawtis.com 에서 참고하세요.


"외부 필진의 기고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독자 문의 : the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