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필자는, 임대차기간 도중에 해당 임대차목적물 내에서 며칠 전 발생한 임차인 가족의 자살 사건을 알지 못한 상태에서 계약해지에 협조하기로 했다가 자살 사건이 뒤늦게 알려지게 되면서 신규임차인과의 임대차계약이 파기된 이후, 기존 임차인으로부터 임대차보증금반환 소송을 제기당하게 된 임대인(의뢰인)으로부터 소송을 의뢰받았다. 소를 제기한 이 임차인은 ‘며칠 전 발생한 자살사건을 은폐한 채 임대인에게 계약해지를 부탁하였고 그 때문에 새로운 임대차계약 과정에도 이러한 사실이 알려지지 못한 점은 인정하지만, 자살사실을 고지할 의무가 없으며, 경위불문하고 합의해지되었으니 합의된 대로 보증금을 반환해달라’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 사건의 판결이 최근 선고되었다. 다음은 판결전문이다.



★ 서울중앙지방법원 2016. 8. 18.선고 2015가단5363565 보증금반환

1. 기초사실
가. 망 김00과 피고는 2015. 6. 2. 피고 소유의 서울 00구 000로43라길 16에 있는 다세대주택 제1층 102호에 관하여 임대차보증금 1억 1,000만 원, 월 차임 25만 원, 임대차기간 2015. 6. 10.부터 2017. 6. 9.까지 2년으로 정하여 임대차계약을 체결하였고, 망 김00은 위 주택에 입주하여 생활하였다.
나. 망 김00은 2015. 9. 1. 13:50경 위 주택에서 자살로 사망하였고, 망 김00의 배우자인 원고 이00, 망 김00의 자녀들인 원고 김00, 김000 등 3명은 망 김00의 공동상속인으로서 망 김00의 임대차계약상 임차인 지위를 승계하였다.
다. 원고 김00은 망 김00이 위 주택에서 자살한 사실을 알리지 아니한 채 피고에게 임대차계약의 중도 해지를 요청하였고, 피고가 새로운 임차인을 구하는 것을 조건으로 임대차계약의 중도 해지를 수용할 의사를 표시하자 원고 김00은 2015. 9. 3. 부동산중개사무소에 위 주택의 새임차인을 구하는 중개를 의뢰하였으며, 피고는 다음날인 2015. 9. 4. 위 주택의 새임차인인 이##과 사이에 임대차보증금 1억 원, 월 차임 30만 원, 임대차기간 2015. 10. 3.부터 2017. 10. 3.까지로 정하여 임대차계약을 체결하고 계약금으로 1,000만 원을 수령하였다.
라. 그런데 뒤늦게 망 김00이 자살한 사실을 알게 된 피고는 2015. 9. 15. 새임차인인 이##에게 이를 알리고 임대차계약의 해지 여부에 대한 의사를 물었고, 이##은 이틀 간 여러 가지 사정을 고려해 본 끝에 2015. 9. 17. 피고에게 최종적으로 임대차계약의 해지의사를 표시함에 따라 피고와 이##은 임대차계약을 합의 해지하고, 피고는 이##에게 계약금 1,000만 원을 반환하였다.
마. 한편, 원고 김00은 2015. 9. 16.자 내용증명우편으로 피고에게 ‘이미 차후 임차인이 계약을 한 상태이나, 임대인이 고의로 사건을 알리고 전제 조건을 달아 계약을 파기한 것은 임대인의 책임이다’는 취지 등의 통지를 하며 임대차보증금 1억 1,000만 원의 반환을 요청하고, 2015. 10. 3. 위 주택의 짐들을 모두 이사하였으며, 원고들은 위 임대차보증금 반환채권을 청구채권으로 하여 2015. 11. 9. 서울중앙지방법원 2015카단811144호로 위 주택에 관한 부동산가압류 결정을 받았다.
바. 망 김00이 위 주택에서 자살한 지 1년 가까이 지난 아직까지도 위 주택에 입주할 새로운 임차인을 구하지 못하고 있고, 망 김00의 자살 사실을 향후 새로운 임차인에게 숨기지 않는 한 가까운 시일 내에 정상적으로 새로운 임차인이 입주할 가능성도 없는 상태이다.
[인정근거] 다툼 없거나, 갑 제1 내지 8호증, 을 제1 내지 6호증의 각 기재 및 변론 전체의 취지

2. 원고들의 주장에 대한 판단
원고들은 이 사건 청구원인으로, 원고들의 임대차계약 중도 해지의사에 피고가 동의하고, 피고와 이## 사이에 2015. 9. 4. 새로운 임대차계약이 체결되어 피고가 원고들에게 2015. 10. 3.까지 위 주택을 인도하여 줄 것을 요청하고 원고들이 이를 수락함으로써 망 김00의 임차인 지위를 승계한 원고들과 피고 사이의 임대차계약은 합의 해지되었다고 주장하며, 원고들의 각 상속분에 해당하는 임대차보증금의 반환을 구한다.
살피건대, 원고들 주장의 사유만으로는 원고들과 피고 사이의 임대차계약이 합의에 의하여 중도 해지되었다고 인정하기에 부족하고, 오히려 앞서 인정한 사실을 종합하면, 피고는 정상적으로 새로운 임차인이 임대차보증금을 지급하고 위 주택에 입주하는 것을 조건으로 원고들과의 임대차계약을 중도 해지하고 원고들에게 임대차보증금을 반환할 수 있다는 의사를 표시한 것으로 보이고, 망 김00이 위 주택에서 자살한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됨으로써 피고와 이##이 임대차계약을 합의 해지하는데 피고에게 어떠한 귀책사유가 있다고 볼 수도 없으므로, 결국 새로운 임차인을 구하는 조건이 성취되지 아니한 이상 원고들과 피고 사이의 임대차계약은 합의 해지되었다고 볼 수 없어 이를 전제로 한 원고들의 위 주장은 이유 없다.



불과 며칠 전에 발생한 자살 사실을 임대인에게 알리지도 않은 채 다른 세입자에게 재임대하는 방법으로 임대차 만기 이전에 보증금을 반환받으려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새로 체결된 임대차계약의 해지로 이어지는 등의 책임이 “임차인”측에 있다는 점에서 보자면, 이런 임차인에게 불이익한 판단이 이루어져야한다는 결론은 감정적으로는 당연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 하지만, 법리적인 면에서는 간단치 않은 문제가 있다. 중도해지 합의 여부의 판단 면에서 애매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수년 전에 필자가 작성한 칼럼을 소개한다.



필자는 모 공중파 법률프로그램에 부동산 부분의 법률자문을 담당하면서 방송작가들의 방송대본 작성과정에 법적인 자문을 하고 있다. 다음의 사안은, 며칠 전에 이 프로그램 작가로부터 받은 방송자문내용이다.

상가점포 임대차계약기간 도중에 다른 곳으로 이전해야 할 개인적인 사정이 생긴 임차인 乙은, 임대인 甲에게 자신의 이런 사정을 이야기하면서 중도해지를 부탁하게 된다. 이에 대해 임대인 甲은 비록 계약기간이 만료되지는 않았지만 임차인 乙의 이런 사정을 공감하고 '일단 다른 세입자를 구해보자'고 긍정적으로 답한다. 그 후 마침 이 점포에 들어오겠다는 세입자가 나타나 임대차계약이 체결되고 그 계약금까지 기존 임차인 乙에게 건네진다.
그러나, 그 후 새로 들어오기로 예정된 세입자는 개인적인 사정을 이유로 계약금몰수를 전제로 이 임대차계약을 포기하게 된다. 이렇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기존 임차인은, 새로운 임대차계약이 체결되자 기존 임대차계약은 완전히 끝난 것으로 믿고서 임대인으로부터 받은 계약금으로 다른 곳에 새로운 점포까지 구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양측의 주장이 부딪히게 된다. 임차인 乙은 임대차계약종료를 이유로 임대인 甲에게 나머지 보증금의 반환을 요구하지만, 반대로 임대인 甲은, 새로운 임차인이 구해지는 전제로 기존 임대차계약을 중도해지하는 것으로 약속한 것인데, 새로운 임대차계약이 계약이행 도중에 파기되었기 때문에 나머지 임대차보증금을 돌려줄 수 없음은 물론이고, 계약기간이 끝날 때까지 월세도 계속 부담하라고 주장한다. 누구 주장이 타당한 것일까?

방송대본으로 만들어진 사안이기는 하지만, 실제로도 자주 발생하는 사례다. 이 사건 골자는 기존 임대차계약이 합의해지되었는지의 판단문제라고 할 수 있는데, 판단이 쉽지 않다. 법리적으로 복잡해서가 아니라 사실관계판단이 어렵기 때문이다.

이 사안을 법리적으로 하나씩 풀어보자. 임대차계약에서 정한 계약기간은 엄연히 있기 때문에, 임대차계약이 중도에 합의해지되었다는 입증책임은 임차인에게 있다. 이렇게 입증책임부터 거론하는 것은 입증책임이 법원판단의 기본이기 때문이다. 분쟁이 되고 있는 사안을 직접 경험하지 않은 판사로서는 어떤 기준을 가지고 나타난 증거를 판단할 수밖에 없는데, 그것이 바로 입증책임론이다. 민사소송법상으로 입증(立證)이라는 것은, 법관으로 하여금 확신을 얻게 하는 당사자의 노력이라고 할 수 있는데, 입증책임이 있는 사람이 입증해야 될 부분에서 법관에게 확신을 가지는 상태에까지 이르지 못하게 하면 입증에 실패해서 재판에서 불리하게 된다. 그런데 이 사안은 임차인에게 입증의 부담이 있는 사건이기는 하지만, 사안의 전체적인 분위기상으로 볼 때 ‘새로운 임차인이 들어오면 임대차계약을 중도해지시켜주겠다’는 임대인의 의사표현이 있었다는 점은 분명하기 때문에, “중도해지 합의”라는 입증에 상당한 정도 임차인이 다가간 것은 틀림없다는 점에 판단의 어려움이 있다. 새로운 임차인과 임대차계약이 체결되면서 다른 변수를 생각하지 못한 채 확정적으로 중도해지하겠다는 의사를 임대인이 표현한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임차인과 단순히 계약체결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최종적으로 임차인이 입점하는 것을 조건으로 중도해지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한 것인지가 판단에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판단의 여지가 있을 수는 있지만 필자는, 기존 임대차계약이 합의해지된 것으로 자문했다. 새로운 임차인으로부터 받은 계약금을 기존 임차인에게 건넸다는 것은 기존 계약을 정리하겠다는 확실한 의사표시가 아닐까 하는 판단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 사건 역시, 다른 세입자를 구하는 조건으로 보증금을 반환해주겠다는 임대차계약의 중도해지가 합의되었지만, 체결되었던 다른 세입자와의 계약이 해제되어버렸고, 그 책임이 자살사건을 고지하지 않은 기존 임차인에게 있다는 점을 감안해서, 중도해지 합의에 대한 전제 조건인 “기존 세입자가 다른 세입자를 구한다”는 조건이 제대로 성취되지 않은 것으로 판단될 수 있었다고 보여진다.

이 판결을 계기로, 보다 정직한 계약문화, 합의된 계약내용을 정확하게 표현하는 것에 대한 중요성이 좀 더 부각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상-


※ 칼럼에서 인용된 판결의 전문은 최광석 변호사의 홈페이지인 www.lawtis.com 에서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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