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3일 MBC “생방송 오늘아침”에서 방송될 예정인 거액의 임대차보증금 피해 사건에 전문가 인터뷰를 하면서 접한 사연이다.
재력가로 알려진 건물주인이 보증금을 반환하지 못한 채 행방을 감추게 되면서 보증금을 손해 볼 위기에 처한 십여 명의 세입자들 사연인데, 해당 건물은 구분건물인 다세대주택이었고, 이미 호실 전부에 대해 경매진행 중이었다. 이들 세입자들은 경매를 통해 자신들의 보증금이 제대로 반환될 수 있을지를 궁금해했다.

이들이 처한 상황은 다음과 같았다. 다세대주택 전부의 시세는 22억 원 정도인데, 세입자들의 입주 이전에 다세대주택 전부를 공동담보로 하는 은행 근저당권 약 10억 원이 존재하고 있었고, 그 후 순차적으로 개별호실에 입주하게 된 세입자들의 보증금 합계가 대략 17억 원 정도였다.

그 때문에 경매 낙찰 가격에 따라 일부 세입자들의 보증금 손해는 불가피한 상황일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문제는, 배당을 받지 못하게 되는 손해를 어느 세입자가 입게 될 것인지 여부가, 세입자들간의 전입신고나 확정일자 순이 아니라 다세대주택 세대별 낙찰에 따른 배당시기에 따라 좌우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는, 이 사건 문제의 부동산이 구분등기되지 않은 하나의 다가구주택이 아닌 개별 호실 별로 구분등기된 다세대주택이었기 때문이었다. 다가구주택이 경매에 처해지면 경매대상물인 건물은 전체 하나의 물건이라는 점에서 다가구주택에 대한 배당은 그 하나의 건물에 이루어진 전입신고, 확정일자 순서에 좌우된다. 결국, 전입신고, 확정일자를 상대적으로 먼저 갖춘 세입자들은 나중에 갖춘 세입자들에 비해 배당순위가 빨라질 수 있다(물론, 최우선변제권있는 세입자의 경우는 예외).

반면, 다세대주택은 개별 호실 하나하나가 별개의 경매대상물인데, (일괄매각 아닌) 개별매각의 원칙상 경매진행 과정에서 개별 호실들간 매각 시점과 배당 시점에 차이가 발생하는 것은 불가피할 수 밖에 없다. 만약, 1호부터 10호까지 열 개 다세대주택에 대해 개별매각의 방식으로 경매가 진행되던 중, 1호, 2호, 3호의 순서로 해서 마지막 10호에 대한 매각과 배당이 이루어졌다면, 이 사건의 경우에서처럼 선순위 저당권 10억 원에 대한 변제가 앞서 진행된 경매과정에서 계속되게 되면서 배당이 거듭될수록 선순위 저당권자의 채권은 점차 감소하다가, 어느 특정호실 예를 들어 6호에 대한 배당을 끝으로 모두 완제될 수가 있을 것이다. 그 결과, 6호 이후에 진행되는 7, 8, 9, 10호에 대한 배당과정에서는 그동안 선순위 채권자였던 은행이 지위를 상실하면서 7, 8, 9, 10호 부동산 매각대금은 세입자에게 배당될 가능성이 높아지게 되는 것이다.

공동저당 대상물의 경매 종결 시점 차이에 따라 세입자들간 발생할 수 있는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민법 368조 유추적용을 생각해 볼 수 있지만, 후순위 저당권이 아닌 임차인에게 이를 인정하는 판례는 아직 없는 것으로 보이고, 학설상으로도 우호적이지 않다고 보여진다(후순위 가등기권자나 전세권자에 대한 유추적용은 가능하지만, 등기되지 않은 임차인에 대한 적용은 부정하는 것이 다수견해이다).


★ 민법 제368조(공동저당과 대가의 배당, 차순위자의 대위)
① 동일한 채권의 담보로 수개의 부동산에 저당권을 설정한 경우에 그 부동산의 경매대가를 동시에 배당하는 때에는 각부동산의 경매대가에 비례하여 그 채권의 분담을 정한다.
② 전항의 저당부동산중 일부의 경매대가를 먼저 배당하는 경우에는 그 대가에서 그 채권전부의 변제를 받을 수 있다. 이 경우에 그 경매한 부동산의 차순위저당권자는 선순위저당권자가 전항의 규정에 의하여 다른 부동산의 경매대가에서 변제를 받을 수 있는 금액의 한도에서 선순위자를 대위하여 저당권을 행사할 수 있다.


이를 알게 된 세입자들은 필자의 자문 내용에 매우 난감해하는 반응이었다. 지금까지는 법원경매를 지켜보면서 주어진 배당만을 기다리는 입장이었는데, 경매 순서에 따라 세입자들간의 희비가 엇갈릴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되면서 어떻게 대처할지가 고민스러웠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필자는, 이런 경우 통상적으로 자신의 호실에 대한 매각 지연을 위해 세입자들의 암투와 모략이 발생할 수 있고 그 때문에 세입자들간 갈등으로까지 번질 수도 있으니, 이런 무모한 소모전을 방지하기 위해 세입자들간 신사협정 내지 공동 대응이 필요할 수 있다고 자문해주었다.

아울러, 이 사건의 경우 세입자들 대부분이 임대차과정에서 중개업자로부터 제대로 된 확인설명을 받지 못한 것으로 파악되었다. 이 사건 개별 호실들에 대한 각각의 임대차계약 체결과정에서 거의 대부분의 세입자들은 중개업자로부터 ‘개별 호실 전체를 공동담보로 하는 10억 원의 근저당권이 있지만, 건물 전체의 시세가 22억 원 정도로 상당하기 때문에 1억 원 정도의 개별 호실 임대차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다’는 취지로 설명받았다고 했다. 앞선 필자의 분석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는 설명일 수 밖에 없다. 향후 세대별 경매진행 결과에 따라, 늦은 경매 진행으로 보증금 배당을 받게 되는 운 좋은 일부 세입자들의 경우에는 결과적으로 임대차계약으로 인한 손해가 없어 중개업자에게 배상청구할 일이 없겠지만, 반대로 해당 호실에 대한 빠른 경매진행으로 보증금을 배당받지 못하게 되는 운 나쁜 세입자들은 입은 손해를 중개업자에게 배상청구해야하는 상황도 예상될 수 있었다.

이처럼, 비록 수십 억 원을 호가하는 건물이고 재력가로 알려진 건물주라고 하더라도 선순위 담보권과 세입자의 총 예상 보증금 합산액이 건물 시세에 육박한다면, 향후 경매 진행시 보증금반환이 쉽지 않을 수 있다는 점에서, 세입자의 입장에서는 임대차계약 자체를 피해버리는 것이 가장 현명한 행동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계약체결을 원한다면, 거액의 공동담보 대신에 호실별로 채권을 나누는 개별담보 형식으로 등기부를 정리한 다음에 임대차계약해야만 불의의 손해를 방지할 수 있다.

아울러, 중개업자는 해당 임대차목적물의 시세를 과장하거나 예상되는 위험을 축소하는 방법으로 계약 체결을 부추길 것이 아니라, 전문가답게 세입자의 권리 보호를 위해 보다 세심하게 확인설명할 필요가 있다. 이 사건 피해 세입자들 대부분의 경우도 이삼십대 사회초년생들이었는데 이들에게 1억 원에서 2억 원 정도의 보증금은 전 재산이나 다름없는 소중한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액의 공동 담보로 얽혀 경매에 처해지게 되면 상황이 복잡해질 수 있는 다세대 주택에 별다른 법적 검토 없이 안일한 설명만으로 입주시키게 한 것에 대해서는 너무나 무책임하고 비양심적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걱정 가득한 표정으로 필자의 설명에 귀를 기울이던 순진한 이들의 얼굴이 뇌리를 스친다. -이상-



※ 칼럼에서 인용된 판결의 전문은 최광석 변호사의 홈페이지인 www.lawtis.com 에서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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