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이야기] 선거와 부동산공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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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닷컴 더 라이피스트
드라마와 선거
“드라마는 사실적일 때 시청자를 감동시키고, 선거는 드라마 같을 때(dramatic) 할 때 유권자의 표심을 자극한다.” 방송분야에 몸담고 있는 지인에게 선거에 이기는 방법을 물었더니 한 문장으로 답을 주었다. 선거과정 자체가 역전과 반전을 거듭하고, 유권자의 감성에 호소해야 당선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그런 표현을 한 것 같다. 이러한 믿음 때문인지 후보자들은 각자의 드라마를 만들기 위해 눈물겨운 노력을 하고 있다. 눈에 띄는 색상의 유니폼을 입고, 개사한 유행가를 귀가 아플 정도로 반복해서 틀고, 심지어 맨바닥에서 엎드려 유권자를 향해 절하기도 한다. 이러한 행위는 사람의 감성을 자극하여 상품의 판매를 유도하려는 기업의 모습과도 닮아 있다. 광고와 홍보를 통해 감성에 자극을 받은 고객은 상품의 가치에 확신이 생기면 구매한다. 상품의 가치는 사용하는 순간 바로 알게 되고 마음에 들면 다시 구매를 한다. 기업에 대한 신뢰감이 쌓이면 충성도 있는 고객이 된다.
부동산개발 이라는 상품
후보자는 ‘공약’ 이라는 상품을 통해 자신의 가치를 드러낸다. 그간 정당 주력상품 중 하나는 ‘부동산개발’ 이었다. 기업의 경제적 부가가치 창출에 유리하고 국민 생활과도 밀접하여 표를 얻는 데는 이만한 상품은 없기 때문이다. 잘 팔리는 상품이기 때문에 진보와 보수의 철학적 논쟁은 무의미 했다. 20세기 초 미시경제학자 헤럴드 호텔링(Harold Hotelling)이 주창한 호텔링 이론은 공급경쟁이 치열해지면 공급자의 시장 위치나 시장가격 등 상품 구성요소가 비슷해지는 ‘경향’ 이 생긴다는 것이다. 이론은 각 정당의 이념을 떠나 개발공약이 난무했던 이유를 설명해준다.
2008년 총선 당시 서울 지역구에서 나온 국회의원 후보 상당수는 보수와 진보를 떠나 출마 지역 뉴타운 개발계획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뉴타운사업은 집값 상승이란 학습효과를 얻은 유권자에게 변함없는 영향력을 발휘하니 이를 재생산 한 것이다. 국민은행 부동산시세 조사에 따르면 제16대 대선과 지방선거가 있었던 2002년 한 해 동안 서울 집값은 20% 이상 올랐으며, 2006년 서울시장 선거가 있었던 제16대 지방선거에서는 18.9% 뛰었다. 2008년은 부동산 침체기가 시작된 상황이었음에도 서울지역 집값은 5%나 올랐다.
개발공약의 실종
지난 대통령 선거에 그 동안 선거결과에 영향을 미쳤던 부동산 개발공약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 원인을 크게 세 가지로 추정해 볼 수 있다. 첫째, 국내 경기가 ‘저성장기’ 로 접어들었다. 저성장으로 개인의 가처분 소득은 줄고 부동산 수요 역시 감소한다. 둘째, 복지 수요 증가로 SOC 투자를 늘리기 어려운 상황이다. 지난해 복지예산 비중은 최초로 30%를 넘어섰으나 SOC 예산은 축소되었다. 셋째, 수요자의 인식 변화이다. 최근 1~2년 간 주택거래량 증가와 함께 가격도 올랐다. 하지만 가계부채가 증가한 상황에서 어지간한 정책으로는 더 이상 시장을 움직이기 어렵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검토가 부족한 개발계획으로는 유권자들의 환심을 사기 어렵다. 한마디로 국민들이 똑똑해졌다.
주거복지라는 신상품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각 정당이 내놓은 “신상 공약”은 주거복지와 관련된 것이다. 서민들의 주거비 부담이 커지자 여야를 떠나 주거복지와 관련한 공약을 내놓았다. 크게 공공임대주택 공급, 구매력 지원, 주거비 보조, 주거환경개선, 사회취약계층 주거지원등이다. 이렇듯 현실에 대한 인식을 같이 하더라도 정당 간 해결방안에는 분명 차이가 존재한다. 하지만 주거복지라는 대의의 근본적인 취지는 변하지 않아야 한다. 서민들의 주거비 부담을 줄이고, 최저 주거기준에도 못 미치는 집 아닌 집에 거주하는 저소득층, 장애인 가구 등 주거 취약계층에게 안정적인 거주 환경을 제공해 주고, 괜찮은 임대주택을 합리적인 가격으로 공급해 줄 수 있어야 한다.
때로는 정치적 이해관계에 원칙이 왜곡되는 경향이 있다. 차별화 할 것이 있다 하더라도 원칙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 특정지역의 지지를 받는 정당이라 할지라도 그들만의 이해를 대변하는 것이 우리나라의 주거복지를 실현하는 길은 분명 아니다. 모처럼 나온 신상 공약 중에 국민들의 표심을 넘어 민생에 도움이 되는 히트상품이 나와 주기를 바란다. 공약을 선택하는 것은 유권자의 몫이지만, 믿고 선택해준 국민에게 품질 좋은 상품을 만들어 내야 하는 것은 분명 정치인들의 책임이다. 공약을 제대로 실천했을 때 국민은 충성도 높은 단골고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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