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 임대권한 위임 과정에서 건물주로부터 ‘임대차보증금은 최소화하고 월차임을 최대한 많이 받을 수 있도록 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해당 공인중개사가 세입자로부터 채권적 전세 형태로 월차임 없이 보증금만으로 계약체결한 다음, 임대차계약서를 위조하는 방법으로 건물주를 속여 차액을 공인중개사 마음대로 유용하는 사례가 종종 보고되고 있다.
이런 사고가 발생하면 거의 대부분은 임대인 건물주와 임차인간 분쟁으로 이어지게 되는데(중개사의 해결능력이 결여되기 때문에), 공인중개사에 대한 건물주의 위임 범위가 어떠했는지, 임차인이 이를 믿을 수 밖에 없는 사정이 있었는지 여부 등 표현대리 성립여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


★ 민법 제125조(대리권수여의 표시에 의한 표현대리)
제삼자에 대하여 타인에게 대리권을 수여함을 표시한 자는 그 대리권의 범위내에서 행한 그 타인과 그 제삼자간의 법률행위에 대하여 책임이 있다. 그러나 제삼자가 대리권없음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을 때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 민법 제126조(권한을 넘은 표현대리)
대리인이 그 권한외의 법률행위를 한 경우에 제삼자가 그 권한이 있다고 믿을 만한 정당한 이유가 있는 때에는 본인은 그 행위에 대하여 책임이 있다.

★ 민법 제129조(대리권소멸후의 표현대리)
대리권의 소멸은 선의의 제삼자에게 대항하지 못한다. 그러나 제삼자가 과실로 인하여 그 사실을 알지 못한 때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결국 재판을 통해 표현대리가 인정되면 체결된 임대차계약은 임대인에 대해 유효하게 되어 임차인에게 별다른 피해가 없겠지만, 그렇지 못하면 임대인에 대한 보증금청구가 불가하게 되면서 중개사의 범행에 따른 피해가 임차인에게 고스란히 돌아가게 된다. 때문에 임차인으로서는 건물주로부터 임대권한을 위임받았다고 하는 공인중개사의 말을 전적으로 믿을 것이 아니라, 반드시 건물주의 의사를 직접 정확히 확인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다음에 소개할 판결은, 공인중개사의 범행에 속아 임대차보증금을 거의 받지 못한 임차인이 보험(공제) 사업자인 공인중개사협회를 상대로 보험(공제)금을 청구한 사건이다.


★ 서울중앙지방법원 2017. 11. 22.선고 2017가단5085555 기타(금전)

1. 기초 사실
가. 송00은 안산시 00에서 ‘00중개사사무소’를 운영하는 공인중개사로서 2014. 1. 5. 피고와 공제기간을 2014. 1. 5.부터 2015. 1. 4.까지, 공제가입금액을 1억 원으로 하되, 부동산중개업자인 공제가입자가 부동산중개행위를 함에 있어서 고의 또는 과실로 인하여 거래당사자에게 재산상의 손해를 발생하게 한 경우, 피고가 거래당사자에게 발생한 재산상 손해를 공제약관 제8조의 규정에서 정하는 보상한도 내에서 보상하여 주기로 하는 내용의 공제계약(이하 ‘이 사건 공제계약’이라고 한다)을 체결하였다.
나. 송00은 이%% 소유의 안산시 00 1013호(이하 ‘이 사건 오피스텔’이라고 한다)에 관하여 이%%으로부터 임대차보증금 500만 원 및 월 차임 45만 원 상당의 월세 임대차계약의 체결에 관한 업무를 위임받았을 뿐 채권적 전세계약을 체결하고 그 전세보증금을 수령할 권한은 위임받지 않았다. 그런데도 송00은 2014. 9. 20. 이 사건 오피스텔을 임차하기 위해 위 00중개사사무소에 방문한 원고에게 마치 이%%으로부터 채권적 전세계약 체결에 관한 업무를 위임받은 것처럼 말하여, 이%%의 대리인으로서 원고와 이 사건 오피스텔에 관하여 전세보증금 6,000만 원, 전세기간 2014. 10. 9.부터 2년으로 한 전세계약(이하 ‘이 사건 전세계약’이라고 한다)을 체결한 다음, 원고로부터 위 계약 당일부터 2014. 10. 16.까지 합계 6,000만 원을 수령하였다.
다. 이후 송00은 위 편취사실을 포함한 사기, 업무상횡령 등의 공소사실로 수원지방법원 안산지원 2016고단4451, 2017고단700(병합), 2017고단1883(병합), 2017고단2118(병합), 2017고단2119(병합), 2017고단2557(병합) 사건으로 기소되어 2017. 10. 26. 위 법원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라. 원고는 이%%으로부터 500만 원을 반환받았고, 송00을 상대로 편취금 5,500만 원과 손해배상금 400만 원을 합한 5,900만 원의 지급을 구하는 지급명령(수원지방법원 안산지원 2016차4053)을 신청하여 위 법원으로부터 2016. 11. 24. 5,900만 원의 지급을 명하는 지급명령을 받았고, 그 무렵 피고에게 위 지급명령을 첨부하여 공제금 5,500만 원의 지급을 청구하였다.
【인정근거】갑 1 내지 10호증(가지번호 붙은 서증 포함)의 각 기재, 변론 전체의 취지

2. 원고의 청구에 관한 판단
위에서 인정한 사실관계에 의하면, 중개업자인 송00은 이%%으로부터 월세 임대차계약의 체결권한만을 위임받았을 뿐인데도 이 사건 전세계약을 중개하면서 마치 이%%으로부터 전세계약을 체결하고 그 전세보증금을 수령할 권한을 수여받은 것처럼 원고를 속여 원고로 하여금 이 사건 전세계약을 체결하도록 한 다음 전세보증금 명목으로 6,000만 원을 편취함으로써 원고에게 반환받지 못한 전세보증금 5,500만 원 상당의 손해를 입게 하였다. 따라서 피고는 이 사건 공제계약에 따라 송00이 이 사건 전세계약의 중개행위를 함에 있어서 고의로 거래당사자인 원고에게 입힌 재산상의 손해를 원고에게 보상할 의무가 있다.

3. 피고의 주장에 관한 판단
가. 중개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주장
피고는, 송00이 적법한 대리권을 가지고 있어서 이 사건 전세계약이 유효하게 체결됨과 동시에 송00의 중개행위는 완료되었고, 송00이 원고로부터 전세보증금을 받아 이%%에게 전달할 의무는 중개인으로서의 의무가 아니라 이%%의 대리인으로서 지는 의무이어서 원고의 손해는 송00이 전세보증금을 이%%에게 전달하지 않고 횡령함으로써 발생한 것이므로, 송00의 위 행위는 중개행위의 범위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살피건대, 공인중개사법 제30조 제1항은 “개업공인중개사는 중개행위를 함에 있어서 고의 또는 과실로 인하여 거래당사자에게 재산상의 손해를 발생하게 한 때에는 그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여기서의 중개행위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거래당사자의 보호에 목적을 둔 위 규정의 취지에 비추어 볼 때 중개업자가 진정으로 거래당사자를 위하여 거래를 알선, 중개하려는 의사를 갖고 있었느냐고 하는 중개업자의 주관적 의사에 의하여 결정할 것이 아니라 중개업자의 행위를 객관적으로 보아 사회통념상 거래의 알선, 중개를 위한 행위라고 인정되는지 여부에 의하여 결정할 것이고, 한편 중개행위란 중개업자가 거래의 쌍방 당사자로부터 중개 의뢰를 받은 경우뿐만 아니라 거래의 일방 당사자의 의뢰에 의하여 중개 대상물의 매매․교환․임대차 기타 권리의 득실․변경에 관한 행위를 알선, 중개하는 경우도 포함하는 것이다(대법원 1995. 9. 29. 선고 94다47261 판결 등 참조).
앞서 본 사실관계에 의하면, 송00이 이%%으로부터 월세 임대차계약의 체결에 관한 업무를 위임받았다고 하더라도 이 사건 전세계약과 같은 채권적 전세계약 체결에 관한 업무를 위임받지 않은 이상 이 사건 전세계약은 무권대리인에 의한 계약으로서 효력이 없을 뿐만 아니라, 위와 같은 무권대리에 의한 채권적 전세계약을 체결하기 위하여 그 계약을 중개하는 송00의 행위는 객관적으로 보아 사회통념상 거래의 알선, 중개를 위한 행위에 해당한다고 봄이 타당하다. 피고의 위 주장은 이유 없다.
나. 과실상계 또는 책임제한 주장
피고는 원고가 이 사건 전세계약을 체결하면서 임대인인 이%%과 한 번도 연락을 취하지 않은 채 송00에게 전세보증금 전액을 송금하고, 이후 이%%에게 전세보증금을 전달받았는지 확인도 하지 않는 등 중개의뢰인으로서 거래관계를 조사․확인할 책임을 게을리한 부주의가 있으므로 과실상계 또는 공평의 원칙에 의하여 피고의 책임이 50% 이하로 제한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살피건대, 피해자의 부주의를 이용하여 고의로 불법행위를 저지른 자가 피해자의 바로 그 부주의를 이유로 자신의 책임을 감하여 달라고 주장하는 것은 허용될 수 없으므로, 송00의 고의 불법행위를 원인으로 하여 피고에게 이 사건 공제계약에 따른 공제금을 구하는 이 사건에서 과실상계 주장은 허용될 수 없고(대법원 2012. 8. 17. 선고 2010다93035 판결 등 참조), 이는 같은 사유를 기초로 공평의 원칙에 의한 책임제한 주장으로 바꾸어 주장하더라도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피고의 과실상계 및 책임제한 주장은 모두 받아들일 수 없다.

4. 결론
피고는 원고에게 공제금 55,000,000원 및 이에 대하여 공제금 청구일로부터 공제규정 등이 정한 60일이 경과한 이후로서 원고가 구하는 이 사건 소장 부본 송달일 다음날인 2017. 5. 12.부터 다 갚는 날까지 소송촉진 등에 관한 특례법이 정한 연 15%의 비율로 계산한 지연손해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
원고의 청구는 모두 이유 있으므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1심판결에 대해 패소한 공인중개사협회가 항소하였지만, 비슷한 논리로 항소기각판결이 선고된 후 상고없이 사건이 확정되었다. 재판 과정에서 협회는 ‘고의로 중개사고를 자행한 공인중개사는 신의칙상 피해자의 과실상계를 주장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공제사업자에 불과한 협회 입장에서 피해자 과실을 주장하는 것은 신의칙위반이 아니라는 점에서 피해자 과실이 공제되어져야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 대법원 2016. 4. 12. 선고 2013다31137 판결[손해배상(기)][

[3] 피해자의 부주의를 이용하여 고의로 불법행위를 저지른 자가 바로 그 피해자의 부주의를 이유로 자신의 책임을 감하여 달라고 주장하는 것은 허용될 수 없으나, 이는 그러한 사유가 있는 자에게 과실상계의 주장을 허용하는 것이 신의칙에 반하기 때문이므로, 불법행위자 중 일부에게 그러한 사유가 있다고 하여 그러한 사유가 없는 다른 불법행위자까지도 과실상계의 주장을 할 수 없다고 해석할 것은 아니다.
[4] 피해자의 부주의를 이용하여 고의로 불법행위를 저지른 자가 바로 그 피해자의 부주의를 이유로 자신의 책임을 감하여 달라고 주장하는 것이 허용되지 아니하는 것은, 그와 같은 고의적 불법행위가 영득행위에 해당하는 경우 과실상계와 같은 책임의 제한을 인정하게 되면 가해자로 하여금 불법행위로 인한 이익을 최종적으로 보유하게 하여 공평의 이념이나 신의칙에 반하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므로, 고의에 의한 불법행위의 경우에도 위와 같은 결과가 초래되지 않는 경우에는 과실상계와 공평의 원칙에 기한 책임의 제한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하지만, 이러한 피고 협회의 항변은 재판에서 받아들여지지 못했다. 협회의 항변은 나름 일리가 있었지만, 위 판결에서도 판시된 2010다93035 판결의 피고가 다름 아닌 공인중개사협회이다보니, 협회의 항변은 기존 판례에 정면으로 저촉될 수 밖에 없었다. 기존판례 변경을 위해서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필요한데, 가능성이 워낙 적어 하급심으로서는 기존판례를 존중하여 판결을 선고할 가능성이 크다.

어쨌건 간에, 중개업자의 고의가 아닌 과실에 기한 중개사고에 대해서는 책임제한이나 형평차원에서 중개의뢰인인 피해자 과실을 공제한 나머지만 배상되지만, 중개업자의 고의에 기한 사고에 대해서는 과실상계없는 피해금액 전부를 배상받을 수 있어, 형사처벌 차원 뿐 아니라 민사 배상차원에서도 중개업자의 고의(악의)를 밝히려는 노력이 더 필요할 수 있다. -이상-



※ 칼럼에서 인용된 판결의 전문은 최광석 변호사의 홈페이지인 www.lawtis.com 에서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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