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이야기] 애벌레와 소상공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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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닷컴 더 라이피스트
애벌레의 삶
지난 가을 한 휴양림을 방문했을 때였다. 숲 해설사는 가는 줄에 아슬아슬하게 몸을 의지해 공중에 매달린 애벌레를 보고 발을 멈췄다. “이런 애벌레의 처지는 한마디로 사면초가입니다. 간신히 나뭇잎 위로 다시 올라간다 해도 새들이나 곤충의 먹이가 될 가능성이 높고요. 행여나 바닥에 떨어지면 굶어 죽거나 숲을 오가는 사람들에 밟혀 죽습니다. 아주 운이 좋은 경우라야 나비가 될 수 있습니다.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작은 생명체이지만, 보게 된다면 굳이 밟아 죽이지는 말아주세요.” 과연 그날 애벌레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을까.
2.4%와 4.3%
2017년 하반기 서울에 터를 둔 소상공인의 월평균 창업률과 폐업률이다.(소상공인진흥공단) 한 달에 거리에 있는 100개의 점포 중 두세 곳이 문을 열고, 네 개정도는 문을 닫는다는 것이다. 최근 3년 새 상가 임대료는 30평형 기준 평균 매월 40~60만원씩 올랐고, 임대 보증금은 전국이 약 4,000만 원, 서울은 약 1억 원 가까이 올랐다.(더불어 민주당 제윤경 의원실) 장사가 안 되어 폐업하는 점포가 늘어나는 것은 이해가 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임대료가 오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분명 주인은 아무리 공실이 늘더라도 임대료 수준을 낮추어 새 임차인을 들일 만큼 절박하지는 않은 것 같다.
룰을 바꾸면 모두 잘살아 갈까
갈 곳 없는 유동자금, 주택시장은 끝났으니 규제가 없는 꼬마빌딩을 사라고 부추기는 사람들에 떠밀려 건물주가 되고나면, 하루라도 빨리 대출을 갚기 위해 임대료를 올리고 싶을 것이다. 한편, 임차인은 투자비용 때문에 손해를 감수하고라도 잠시나마 버티겠지만, 결국 높은 임대료를 견디지 못하고 폐업한다. 이렇게 한 건물이 그렇게 임대인이 바뀌고, 임대료가 오르고, 더 높은 임대료를 임차인이 지불하게 되면, 그 옆 건물 주인도, 뒤 건물 주인도 임대료를 올리고. 11월 상가임대차보호법이 시행됐다. 계약갱신요구권 기간 연장, 권리금 회수기회 보호기간 연장, 권리금 회수기회를 가질 수 있는 대상에 전통시장 포함, 분쟁조정위원회 신설 등이 주요 개정내용이다. 5년 이상 되거나 건물주가 바뀐 경우 임차인의 계약갱신 요구권이 기본적으로 소급 적용되지 않는 것은 아쉬운 일이지만, 소상공인의 어려운 환경을 이해하고 현실적으로 규칙을 변경했다는 점에서 진일보 한 것으로 보인다. 현실을 균형 있게 반영하지 못해 시장규칙을 바꾼 것이기는 하지만 과연 규칙을 바꾸는 것만으로 소상공인들의 삶이 나아질 것인가는 여전히 미지수이다.
애벌레가 나비로 살아남으려면
나라에 큰 위기로 모두가 힘들었던 때를 제외하더라도 과거 어느 때보다도 소상공인들의 현재상황은 무척 어렵다. 경기침체, 물가상승은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최저임금 인상은 정부가 소상공인과 상황을 살펴 속도를 조절해 나가야 할 일이다. 그나마 임대료 조정은 임대인과 소상공인이 협의해 나갈 수 있는 부분이다. 내수 침체는 아르바이트생도, 소상공인도, 임대인도 함께 겪는 상황이겠지만 임대인은 임대료를 올리고 이미 보유한 자본력으로 버틸 수 있다. 하지만 최저임금 인상, 임대료 인상 등의 상황을 영세 소상공인이 모두 짊어질 수는 없다. 최저임금도 안 되는 수입으로 버티는 편의점 주인이 최저임금인상이 부담되어 아르바이트 직원을 내보내는 것을 일자리를 줄였다고 탓할 수만은 없다. 더욱이 점포가 성장해 내 건물의 이미지를 제고해 주고 상권을 생기 있게 만들어 주는 것은 임대인에게도 보람이 아닐까. 아무렴 애벌레가 자신을 피해 지나가는 등산객을 만날 확률보다는 임차인이 상호존중 할 줄 아는 임대인을 만날 확률이 높아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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