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 사기, 잊을만하면 터져 나온다. 언론에 어지간히 보도되어 이제 충분히 경각심이 들만도 하지만, 피해자 수나 피해금액은 오히려 더 늘고 있는 듯하다. 방송이나 글을 통해 필자도 이 문제의 발생원인과 심각성을 여러 차례 피력했다. 하지만, 현실은 크게 변하지 않고 있다. 답답한 마음에 전세사기가 지속되고 있는 우리 사회 구조적 문제를 생각해보게 되었다.

우선, 전세사기가 무엇이고 어떻게 발생하는지 간략하게 살펴보자. 사기수법 자체는 단순하다. 월세계약임에도 불구하고 보증금이 거액인 전세계약인 것처럼 실제 세입자를 속이는 것이다. 실제 사기행태는 임대차계약을 중개하는 부동산 중개업소의 관여 여부에 따라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중개업소가 관여하지 않은 유형은, 甲이라는 사기범이 등기부발급 등을 통해 범행대상 아파트(주택)를 물색한 다음, 중개업소를 통해 월세계약을 체결한다. 예를 들어 보증금 1천만 원에 월차임 80만 원으로. 이 과정에서 건물주의 인적사항과 주민등록증사본 등 필요한 정보를 입수하게 되고, 합법적으로 해당 아파트에 거주한다. 그 다음에는, 자신이 집주인인 것처럼 월세 아닌 전세로, 예를 들어 보증금 1억 8천만 원에 세입자를 구한다. 물론, 월세를 구했던 곳과 다른 중개업소를 통해서. 이 과정에서 건물주의 위조된 주민등록증을 사용한다. 인적사항 확인을 주로 신분증에 의존하는 거래관행상 전세사기 확인이 쉽지 않다.

그 다음은, 중개사무소가 사기에 적극 가담하는 경우인데, 앞선 경우와 비교할 때 피해금액도 크고 사기예방도 매우 어렵다. 중개업소에 대한 소비자들의 신뢰 때문이다. 건물주로부터의 건물관리 위임 여부에 따라 이런 범행도 다시 두 가지 형태로 구분해볼 수 있다.

먼저, 건물주로부터 건물관리를 위임받지 않은 일반중개업소의 범행이다. 앞서 본 유형에 중개업소가 조직적으로 개입하는 식이다. 즉, 사기범 일당 중 한사람이 건물주와 월세로 임대차계약체결한 후 이를 통해 건물점유를 확보한다. 다른 사기범 일당은 중개업소를 차려 전세를 구하는 피해자를 물색한다. 이 피해자와 건물주 행세하는 월세 세입자 사기범이 전세계약을 체결하고 전세금을 가로채는 식이다. 개인 사기범행과 수법은 유사하지만 중개업소까지 가담하면 피해규모가 눈덩이처럼 커진다. 중개업소를 통해 불특정 다수의 전세 세입자들이 피해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다음은, 건물주로부터 건물임대관리를 위임받은 중개업소가 이런 범행을 주도하는 유형이다. 임대차계약을 포함한 건물관리에 관한 건물주위임을 미리 받았기 때문에 굳이 건물주 들러리를 동원하지 않더라도 범행이 가능할 수 있다. 세입자와 전세 형태로 계약체결하고도 건물주에게는 월세로 계약체결된 것처럼 거짓보고를 하는 방법으로 보증금 차액을 중개업자가 횡령하게 된다. 건물주에 대한 허위 보고용으로 가짜 전세계약서가 만들어진다. 건물주나 임차인의 직접 확인을 대비해서 건물주나 임차인 연락처까지 허위로 기재하거나, 건물주 들러리까지 동원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범행이 발생하는 근본원인은, 계약의 기본원칙인 적법한 계약당사자를 확인하는 노력이 계약당사자 모두에게 부족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사고의 거의 대부분 피해는 임차인에게 돌아간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1) 건물주로부터 건물관리위임없이 이루어지는 일반 사기범행의 경우, 건물주는 월차임 형태로 계약을 체결했을 뿐 그 후에 발생한 전세사기는 사기범(일당)이 벌인 것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건물주에게 (계약상 내지 불법행위) 책임을 지우기 어렵다. (2) 중개업소에 대한 건물관리 위임이 있는 경우라고 하더라도 결과는 별반 다르지 않다. 중개업소에 대한 건물주 위임은 통상 월차임 형태의 계약에 국한되는데, 이를 넘어선 중개업소의 전세계약은 건물주에 대해 기본적으로 무권대리인 셈이다. 따라서, 건물주에게는 원칙상 계약상 책임을 부담시킬 수 없다. 다만 예외적으로 표현대리 논란이 있을 수 있지만 재판에서 건물주 책임이 인정되기는 쉽지 않다.

★ 민법 제125조(대리권수여의 표시에 의한 표현대리) 제삼자에 대하여 타인에게 대리권을 수여함을 표시한 자는 그 대리권의 범위내에서 행한 그 타인과 그 제삼자간의 법률행위에 대하여 책임이 있다. 그러나 제삼자가 대리권없음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을 때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 민법 제126조(권한을 넘은 표현대리) 대리인이 그 권한외의 법률행위를 한 경우에 제삼자가 그 권한이 있다고 믿을 만한 정당한 이유가 있는 때에는 본인은 그 행위에 대하여 책임이 있다.

★ 민법 제129조(대리권소멸후의 표현대리) 대리권의 소멸은 선의의 제삼자에게 대항하지 못한다. 그러나 제삼자가 과실로 인하여 그 사실을 알지 못한 때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건물관리를 위임받은 중개업자에게 전세계약을 체결할 대리권이 있다고 임차인이 믿을 수 밖에 없는 정당한 사유가 있었는지 여부에 따라 건물주 책임 여부가 결정되는데 그 입증책임은 이를 주장하는 임차인에게 있다. 게다가, 대리권 확인에 기울이는 임차인의 주의정도가 낮은 것이 우리 현실이다. 때문에 이런 유형의 사기사건 피해는 거의 대부분 임차인에게 돌아간다.

물론, 이런 유형의 사고방지를 위한 건물주의 주의 정도도 많이 미약한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앞서 본 바와 같이 건물주가 보증금반환에 대해 책임질 가능성은 낮다. 법적 책임부담의 가능성이 낮기 때문에 사고방지를 위한 건물주 노력도 부족한 것이다. 임대차계약 체결할 때 참석하지 않은 것은 물론 임대차기간 중에도 건물방문을 거의 하지 않다가 월차임 지급이 중단되어서야 비로소 건물을 방문하면서 사고사실을 알게 되는 것이 엄연한 현실인 것이다. 반대로, 이런 사고발생에 대해 건물주 책임이 훨씬 강화된다면, 건물주는 지금보다 훨씬 더 경각심을 가질 것이다. 사고예방을 위해 건물주가 조금만 더 신경쓰면 이런 유형의 사고는 거의 대부분 미연에 방지될 수 있고, 사고가 발생하더라고도 보다 빠른 사고수습으로 임차인 피해규모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중개업자에게 건네는 위임장에 ‘건물주 입회하지 않은 계약은 원천무효이다’, ‘계약체결시 반드시 건물주와 직접 통화를 해야 한다’, ‘건물주 계좌에 입금되지 않은 보증금은 무효이다’라는 등으로 무권대리의 여지를 최대한 줄이고, 제대로 시행되고 있는지 임대차건물 방문을 통해서 자주 확인한다면 전세사기는 발붙이기 어렵게 된다.

하지만, 현실은 전세사기 발생시 건물주 책임을 묻기 힘든 구조이고 그 때문에 불성실한 건물주를 양산하고 있다. 당연히 이런 구조하에서는 전세사기 근절을 기대하기 어렵다.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면 우리 사회 전체가 해결을 위해 노력해야 하는데, 사고책임을 온전히 임차인에게만 돌리면서 수수방관하고 있는 것이다. 임차인에게 너무 가혹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전세사기 예방을 위한 관련 법과 제도 정비에 우리 사회가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때이다. -이상-

※ 칼럼에서 인용된 판결의 전문은 최광석 변호사의 홈페이지인 www.lawtis.com 에서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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