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건설 法테크] 아파트 시행사와 지주와의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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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닷컴 더 라이피스트
근래 몇 년간 주택경기가 활성화되면서 전국적으로 아파트 건설분양붐이 크게 일어났다. 최근에는 정부의 대출규제, 투기과열지구의 지정, 분양가상한제 실시 등 억제책으로 인해 지방을 중심으로 침체를 면치 못하고 있으나, 서울과 대구 등 일부 지방은 국지적으로 여전히 과열양상을 보이고 있다.
주택공급은 도시및주거환경정비법에 의한 재건축, 재개발사업으로도 많이 이뤄지지만, 주택법에 의한 아파트시행사업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데, 시행사들이 아파트를 지을 만한 전국 요지의 땅을 휘젓고 다니는 바람에 땅값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고, 일부 알박기식으로 버티는 지주들 때문에 사업이 난관에 부딪히는 사례까지 생겨나고 있다. 대구지역만 해도 수년 전엔 알박기 요구금액이 3.3㎡당 보통 2,000~3,000만 원 정도였으나 최근 5,000만 원 내지 1억 원까지 뛰어 사업추진에 큰 장애가 되고 있다.
그동안 지주들의 학습효과로 인해 해당부지나 인근지역에서 가장 고가의 매매가격을 달라고 요구하는 것이 유행이 된 것이다.
현재의 상황은 값싸게 부지를 확보하려는 아파트 시행사와 최대한 비싸게 팔려는 지주간에 총성없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형국이다.
그런데 현행 주택법은 일정한 요건을 갖추는 경우 아파트 시행사에 지주들의 땅을 감정가격으로 강제로 매수하는 제도를 두고 있다. 이 제도를 이용하면 지주들의 알박기 관행을 쉽게 없앨 수 있을 것 같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다. 그 이유를 살펴보자.
주택법은 지구단위계획결정이 필요한 주택건설사업의 사업계획승인을 받은 사업주체가 부지면적의 ‘80% 이상’ 사용권원을 확보하면 지구단위계획결정 고시일 ‘10년 이내’에 소유권을 취득한 자에 대하여, 부지면적의 ‘95% 이상’ 사용권원을 확보하면 위 고시일 ‘10년 이전’의 소유자, 즉 모든 소유자에 대하여 매도청구를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제22조) 즉, 매도청구소송을 제기하여 법원감정가격으로 강제로 매수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매도청구제도가 제대로 작동될 수 없는 구조적인 이유가 있다. 우선 매도청구를 하려면 95% 이상 소유권을 확보한 후 사업계획승인을 받아야 하고 승인고시된 날로부터 5일 이후부터 3개월 이상 실질적인 매수협의를 해야 하는데, 그 협의요건을 충족하기가 만만치 않다. 실질적 매수협의란 것이 무엇인지 기준도 불명확하여 어느 정도까지 협의해야 할지 난감하다. 실제 매수협의를 하려고 연락해도 연락을 받지 않고, 만나는 것도 교묘히 회피한다.
이런 경우 시행사는 보통 미리 매도청구소송을 제기하여 법원의 조정기일에 협의를 하기도 하는데, 협의가 쉽지 않고 소송은 기본적으로 1심 재판만 해도 최소한 6개월 내지 8개월이 걸린다.
매도청구소송 진행도 쉽지 않다. 매도를 거부하는 지주들이 법원의 송달을 일부러 받지 않아 재판을 지연시키거나 거액의 가압류나 근저당권을 설정하거나 가등기까지 해 두어 시행사가 매도청구소송에서 판결을 받아도 거액의 부채를 시행사가 떠 안아야 하는 경우가 생기고, 심지어 판결선고 직전에 가등기를 본등기로 전환하는 바람에 처음부터 다시 소송을 제기하게 하는 등 재판을 교묘히 지연시키기도 한다.
또한 소유권이전과 인도청구의 1심판결을 받아도 인도가집행을 하기 전에 강제집행정지신청을 하고 집행정지결정을 받아 인도받는 것을 방해하고, 세입자에게 기한을 연장해 주는 계약을 체결해 주어 세입자 인도도 어렵게 만들기도 한다.
보다 더 큰 문제는 시행사들이 대부분 토지대금이나 건설비를 지급하기 위해 거액의 PF자금을 이용하다 보니 이자 등 금융비용이 막대하여 시간에 절박하게 쫓긴다는 것이다. 한 달 이자만 몇 십억 원이 들 수 있는데 토지매수가 몇 달만 늦어져도 시행사의 사업수익이 다 날아가 버릴 수도 있다.
매도청구소송의 1심 판결에서 승소하면 매매대금을 공탁하고 공사에 착수할 수 있지만, 지주가 항소와 상고까지 하면 대법원 판결로 확정될 때까지 해당 부동산의 소유권을 이전받을 수가 없어 결국 최장 2년간 실질적인 착공을 할 수 없게 된다. 판결확정 전에 임의로 건물을 철거하면 재물손괴죄 등 형사처벌이 되기 때문이다.
결국 시행사는 단 한 명의 지주라도 끝까지 버티면 사업이 불가능해지므로, 울며겨자먹기식으로 지주의 터무니없는 요구에도 굴복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도시정비법에 의한 재개발, 재건축에서와 같이 1심 판결과 공탁만으로 주택을 철거까지 할 수 있도록 주택법을 개정하지 않는 한 매도청구제도는 실효성이 별로 없음을 유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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