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법인격 부인론과 적용요건 - ‘법인격 형해화’ 또는 ‘법인격 남용’
(대법원 2008. 9. 11. 선고 2007다90982 판결)

회사가 외형상으로는 법인의 형식을 갖추고 있으나 법인의 형태를 빌리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아니하고 실질적으로는 완전히 그 법인격의 배후에 있는 사람의 개인기업에 불과하거나, 그것이 배후자에 대한 법률적용을 회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함부로 이용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이 경우 비록 외견상으로는 회사의 행위라 할지라도 회사와 그 배후자가 별개의 인격체임을 내세워 회사에게만 그로 인한 법적 효과가 귀속됨을 주장하면서 배후자의 책임을 부정하는 것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위배되는 법인격의 남용으로서 심히 정의와 형평에 반하여 허용될 수 없고, 따라서 회사는 물론 그 배후자인 타인에 대하여도 회사의 행위에 관한 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보아야 한다.

여기서 회사가 그 법인격의 배후에 있는 사람의 개인기업에 불과하다고 보려면, 원칙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법률행위나 사실행위를 한 시점을 기준으로 하여, 회사와 배후자 사이에 재산과 업무가 구분이 어려울 정도로 혼용되었는지 여부, 주주총회나 이사회를 개최하지 않는 등 법률이나 정관에 규정된 의사결정절차를 밟지 않았는지 여부, 회사 자본의 부실 정도, 영업의 규모 및 직원의 수 등에 비추어 볼 때, 회사가 이름뿐이고 실질적으로는 개인영업에 지나지 않는 상태로 될 정도로 형해화되어야 한다.

또한, 위와 같이 법인격이 형해화될 정도에 이르지 않더라도 회사의 배후에 있는 자가 회사의 법인격을 남용한 경우, 회사는 물론 그 배후자에 대하여도 회사의 행위에 관한 책임을 물을 수 있으나, 이 경우 채무면탈 등의 남용행위를 한 시점을 기준으로 하여, 회사의 배후에 있는 사람이 회사를 자기 마음대로 이용할 수 있는 지배적 지위에 있고, 그와 같은 지위를 이용하여 법인 제도를 남용하는 행위를 할 것이 요구되며, 위와 같이 배후자가 법인 제도를 남용하였는지 여부는 앞서 본 법인격 형해화의 정도 및 거래상대방의 인식이나 신뢰 등 제반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개별적으로 판단하여야 한다.

우리 법제는 회사에 독립한 법인격을 부여하여 회사를 그 구성원인 사원과 별개의 인격체로 취급하는 분리원칙을 취하고 있다.
그런데 이 분리원칙을 중시하여 회사와 그 구성원인 사원을 독립된 법주체로 하는 것이 정의와 형평의 관념에 반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한 경우 회사와 구성원이 별개의 법주체라는 기존의 법형식을 무시하고 회사와 그 사원을 실질상 동일시하여 이 분리원칙을 문제된 법률관계에 한해서만 일시적으로 부인 또는 무시함으로써 그 배후에 있는 실체(사원)와 회사를 동 일체로 취급하여, 회사를 단순히 그 구성원의 집합체로 보아 구체적으로 타당한 해결을 꾀하기 위하여 구성된 이론이 바로 법인격부인론 내지 법인격무시론이다.

실무상 부동산이나 건설관련 거래에 있어서, 상대방이 채무를 면탈하려는 목적으로 기업의 형태·내용이 실질적으로 동일한 신설회사를 설립하였다면, 이러한 법인격 부인론을 들어 그 법인 내지 배후자에게도 채무를 이행하라고 청구할 수 있게 되므로,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는 법리이다.

● 부동산・건설관련 법인격 부인론이 적용된 판례 소개

가. 대법원 2011. 5. 13. 선고 2010다94472 판결(소유권이전등기청구등)
아파트 신축사업을 추진하던 갑 회사와 을 회사가 사업부지인 토지의 공유지분을 소유하고 있던 병과, 그에게서 공유지분을 이전받는 대신 신축 아파트 1세대를 분양해 주기로 하는 내용의 약정을 체결하면서 담보로 당좌수표를 발행해 주고, 그 약정에 따라 을 회사와 병이 분양계약을 체결하여 갑 회사가 공유지분을 이전받았는데, 아파트 공사 진행 중 갑, 을 회사가 위 토지와 사업권을 정 회사와 무 회사를 거쳐 기 회사에 매도해 버렸고, 기 회사는 별개의 법인이라는 이유로 병에게 아파트 1세대 분양의무를 이행할 수 없다고 하자, 병은 갑,을 회사는 물론 기 회사도 상대로 소유권이전등기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위 갑, 을, 정, 무, 기 회사들은 모두 영업목적이 동일하고 법인 소재지도 상당 부분 일치하는 점, 위 회사들은 을 회사의 대표이사였던 자가 사실상 지배하는 회사인 점, 위 토지 외에 별다른 자산이 없었던 갑, 을 회사가 부도가 이미 발생하였거나 임박하여 위 토지와 사업권을 정당한 대가를 지급받지 않고 정 회사에 양도한 것으로 보이고, 정 회사에서 무 회사를 거쳐 기 회사에게 위 토지와 사업권이 이전되는 과정에서도 정당한 대가가 지급되었다고 볼 만한 자료가 없는 점, 갑, 을 회사가 병에게서 이전받은 공유지분이 포함된 위 토지와 사업권을 정 회사에 양도하면서 위 약정 등에 따른 병에 대한 채무를 부도난 갑, 을 회사에 남겨둔 점 등을 종합할 때, 위 회사들은 을 회사의 대표이사였던 자가 사실상 지배하는 동일한 회사로서 갑, 을 회사가 병에 대한 채무를 면탈할 목적으로 다른 회사의 법인격을 내세운 것으로 볼 여지가 충분하므로, 갑, 을 회사의 채권자인 병은 갑, 을 회사뿐만 아니라 기 회사에 대해서도 위 약정에 기한 채무의 이행을 청구할 수 있다”라고 판결했다.

위 대법원이 위 판결의 근거로 든 법리는 다음과 같다.
“기존회사가 채무를 면탈할 목적으로 기업의 형태·내용이 실질적으로 동일한 신설회사를 설립하였다면, 신설회사 설립은 기존회사의 채무면탈이라는 위법한 목적달성을 위하여 회사제도를 남용한 것이므로, 기존회사의 채권자에게 위 두 회사가 별개의 법인격을 갖고 있음을 주장하는 것은 신의성실 원칙상 허용될 수 없다 할 것이어서 기존회사의 채권자는 위 두 회사 어느 쪽에 대하여서도 채무 이행을 청구할 수 있고, 이와 같은 법리는 어느 회사가 채무를 면탈할 목적으로 기업의 형태·내용이 실질적으로 동일한 이미 설립되어 있는 다른 회사를 이용한 경우에도 적용된다.”
“기존회사의 채무를 면탈할 의도로 다른 회사 법인격을 이용하였는지는 기존회사의 폐업 당시 경영상태나 자산상황, 기존회사에서 다른 회사로 유용된 자산의 유무와 정도, 기존회사에서 다른 회사로 이전된 자산이 있는 경우 정당한 대가가 지급되었는지 등 제반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하여야 한다.”

나. 대법원 2019. 12. 13. 선고 2017다271643 판결(공사대금)
갑 주식회사가 을에게 건물 신축공사를 도급하였고 을은 병 등에게 공사를 하도급하였으며, 그 후 을이 병 등에게 갑 회사에 대한 공사대금채권 일부를 양도하였다.
이처럼 도급계약 체결 당시 위 건물의 건축주는 갑 회사였는데, 그 후 정 주식회사가 갑 회사를 상대로 건축주 명의변경을 구하는 소를 제기하여 승소 판결이 확정됨에 따라 정 회사로 건축주 명의가 변경되었다가 이후 다시 무 주식회사로 변경되었다.
그런데 갑 회사와 무 회사는 모두 기가 설립하여 실질적으로 운영하는 회사임을 알게 된 을과 병 등이 회사제도 남용의 법리에 따라 무 회사를 상대로 공사대금의 지급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하였다.

이에 대법원은 “갑 회사와 무 회사는 설립목적과 형태·내용이 실질적으로 동일한 회사이고, 갑 회사의 유일한 자산은 위 건물의 건축주 지위였는데, 확정판결에 따라 건축주 지위가 정 회사에 이전되었다가 다시 무 회사에 이전되었으며, 무 회사는 정 회사로부터 건축주 지위를 양수할 무렵 별다른 자산이 없었던 것으로 보이고, 갑 회사와 마찬가지로 기가 실질적으로 운영하고 있었는바, 갑 회사로부터 정 회사에 건축주 지위가 이전된 것이 정 회사의 정당한 권원에 기초한 것이라 하더라도, 이후 정 회사로부터 무 회사에 다시 건축주 지위가 이전되는 과정에서 갑 회사가 차용한 자금이 사용되는 등 갑 회사의 자산이 정당한 대가 없이 이전되었거나 유용되었다면, 갑 회사의 채무면탈이라는 위법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무 회사를 이용하여 회사제도를 남용한 것으로 볼 수 있으므로, 갑 회사의 채권자는 갑 회사뿐만 아니라 무 회사에 대해서도 채무의 이행을 청구할 수 있다고 볼 여지가 있는데도, 이와 달리 본 원심판단에 법리오해 등의 잘못이 있다.”라고 하여 원심을 파기환송하였다.
결국 공사업자인 병과 하수급인이자 채권양수인인 정은 갑 회사는 물론 무 회사를 상대로도 공사대금을 청구할 수 있다는 결론이다.

위 대법원이 판결의 근거로 든 법리는 다음과 같다.
“기존회사가 채무를 면탈할 의도로 기업의 형태·내용이 실질적으로 동일한 신설회사를 설립한 경우 이는 기존회사의 채무면탈이라는 위법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회사제도를 남용한 것에 해당한다. 기존회사의 채권자에 대하여 위 두 회사가 별개의 법인격을 갖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신의성실의 원칙상 허용되지 않으므로, 기존회사의 채권자는 위 두 회사 어느 쪽에 대해서도 채무의 이행을 청구할 수 있다.”
“이러한 법리는 어느 회사가 이미 설립되어 있는 다른 회사 가운데 기업의 형태·내용이 실질적으로 동일한 회사를 채무를 면탈할 의도로 이용한 경우에도 적용된다. 여기에서 기존회사의 채무를 면탈할 의도로 다른 회사의 법인격을 이용하였는지는 기존회사의 폐업 당시 경영상태나 자산상황, 기존회사에서 다른 회사로 유용된 자산의 유무와 정도, 기존회사에서 다른 회사로 자산이 이전된 경우 정당한 대가가 지급되었는지 여부 등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하여야 한다.”

“이때 기존회사의 자산이 기업의 형태·내용이 실질적으로 동일한 다른 회사로 바로 이전되지 않고, 기존회사에 정당한 대가를 지급한 제3자에게 이전되었다가 다시 다른 회사로 이전되었다고 하더라도, 다른 회사가 제3자로부터 자산을 이전받는 대가로 기존회사의 다른 자산을 이용하고도 기존회사에 정당한 대가를 지급하지 않았다면, 이는 기존회사에서 다른 회사로 직접 자산이 유용되거나 정당한 대가 없이 자산이 이전된 경우와 다르지 않다. 이러한 경우에도 기존회사의 채무를 면탈할 의도나 목적, 기존회사의 경영상태, 자산상황 등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회사제도를 남용한 것으로 판단된다면, 기존회사의 채권자는 다른 회사에 채무 이행을 청구할 수 있다.”

이 사례는 기존회사의 자산이 실질적으로 동일한 다른 회사로 ‘바로’ 이전되지 않고, 기존회사에 정당한 대가를 지급한 ‘제3자에게 이전되었다가 다시’ 다른 회사로 이전되었다고 하더라도, 법인격남용 내지 회사제도남용의 법리가 적용된다고 본 점에서 특별한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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