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매매계약을 체결할 때, 정식계약을 체결하기 전에 여러 가지 사정으로 가(假)계약서란 내용의 문서를 작성하거나 그런 가계약서 작성없이 구두로만 계약하기로 하고 가(假)계약금이라는 명목으로 매매대금에 비해 소액의 금전이 수수되는 사례가 많습니다. 이러한 예비적인 계약을 ‘가계약’이라고 하고, 그때 주고받는 소액의 금전을 ‘가계약금’이라 통칭하지요.
● 본 계약으로 매수하면 될 것을 굳이 가계약을 체결하고 가계약금을 주고받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부동산을 꼭 사고싶은데 부동산 권리관계 확인, 계약금 등 매매대금 조달 등 여러 가지 이유로 당장 본 계약을 체결할 여건이 안 되는 상황에서 미리 매수자의 지위를 선점해 놓기 위하여 가계약서를 작성하거나 구두로 가계약을 하고 계약금의 일부를 미리 상대방에게 교부하는 경우가 보통입니다.
매수인이 해당 부동산을 선점할 욕심인 경우가 많지만, 중개사들이 중개의 성공을 위해 적극적으로 가계약금이라도 걸어두라고 권유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 가계약금을 주고받은 후 계약을 파기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던데, 왜 그런가요
법률전문가가 아닌 일반인들로서는 아직 정식계약은 체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가계약을 하거나 가계약금을 준 정도로는 언제든지 계약을 파기할 수 있다는 잘못된 상식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심지어 계약한지 24시간 내에는 자유로이 파기할 수 있다고 잘못 아는 분들도 있더군요.
또한 부동산을 살 때 중개사가 적극 권유해서이거나 무언가에 홀려 경솔히 계약하는 경우가 많고, 자금사정이나 가족의 의견을 고려하지 않고 계약했다가 사후에 번복하는 사례도 적지 않습니다.
이러한 사정을 들어 불과 하루이틀만에 가계약을 파기하고 교부한 가계약금을 돌려달라는 분쟁이 많이 일어나지요.
● 가계약서 작성을 하거나 구두계약을 하고 계약금 일부를 송금만 하면 매매계약은 유효하게 성립하나요
이처럼 가계약서가 작성되거나 구두로만 계약을 하고 가계약금이 교부된 경우 정식 매매계약이 체결된 것과 같은 효력을 인정할 수 있느냐가 문제됩니다.
가계약의 효력은 결국 당사자의 계약구속에 대한 의사해석의 문제라 할 것입니다.
먼저 민법상 계약은 쌍방 의사합치만 있으면 성립하는 ‘낙성(諾成)계약’이 원칙이어서 반드시 계약서를 작성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구두합의만으로도 성립하므로, 가계약서가 작성된 경우는 물론 가게약서가 없어도 가계약금이 수수되었다면 계약성립의 의사합치가 있다고 볼 여지가 있습니다.
다음으로 하급심 판례를 종합할 때, 가계약이 당사자들간 본 ‘계약의 주된 급부의 중요부분에 관하여 대략의 합의가 성립하여 있는 경우’라면 그 부수적인 내용이 상세하게 확정되어 있지 않다고 하더라도 위 합의에 관하여는 독자적인 구속력 및 책임의 근거로서 인정해야 하므로, 계약으로서 구속력을 가진다고 봅니다.
대법원도 “부동산 매매에 관한 가계약서 작성 당시 매매목적물과 매매대금 등이 특정되고 중도금 지급방법에 관한 합의가 있었다면 그 가계약서에 잔금 지급시기가 기재되지 않았고 후에 정식계약서가 작성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매매계약은 성립하였다”고 보았습니다.(대법원 2006. 11. 24. 선고 2005다39594 판결).
결국 가계약서나 구두계약 시, 매매목적물, 매매대금(계약금, 중도금, 잔금), 매매대금 지급시기 정도가 정해졌다면 계약으로서 유효하게 성립하여 구속력을 가진다고 볼 것입니다.
● 가계약금이 교부된 경우, 가계약금만 배액상환하거나 포기하면 계약을 파기할 수 있나요
▶ 가계약만으로 계약이 성립하지 않은 경우
먼저 가계약시 본 계약의 중요내용(목적물, 대금, 지급시기 등)에 대해 정한 바가 없어 계약이 성립하지 않았다면, 교부된 가계약금은 단순한 ‘보관금’에 그쳐 부당이득으로서 상대방에게 반환해야 합니다.
▶중개사가 무권대리행위로서 가계약금 수수한 경우
다음으로, 중개사가 무리하게 계약을 성사시키기 위해 매도인의 의사를 묻지 않고 매도인을 위하여 가계약금을 수수하는 사례도 종종 있는데, 이런 경우 ‘무권대리행위’로 본인인 매도인에게 효력이 없는 경우가 있음을 주의하여야 합니다. 다만 중개사가 매도인으로부터 가계약금 수수를 위임받았다면 매도인에게도 효력이 있겠지요.
▶계약당사자간 가계약금을 포기하거나 배액상환으로 해제하는데 합의한 경우
그리고 가계약서나 구두계약을 할 때 ‘당사자가 서로 계약을 파기하려는 경우 교부된 가계약금을 포기하거나 배액상환으로 할 수 있다’고 특약(해약금 약정)을 했다면 가계약금의 포기나 배액상환으로 파기가 가능합니다. 위약금 약정을 따로 했다면 역시 효력이 있겠지요. 다만, 가계약서 특약에 그런 문구를 명시해야 하고, 구두계약 시에는 그런 내용을 녹음이라도 해둘 필요가 있겠지요.
구두계약 시 이런 분쟁이 자주 일어나다보니 요즘 공인중개사들이 매도인, 매수인 쌍방에게 “이 계약의 해제는 교부된 가계약금의 포기나 배액상환으로 할 수 있다”는 내용을 문자나 카톡으로 보내 해약금 내지 위약금의 기준이 가계약금임을 명시하고 있는데, 분쟁해결에 큰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당사자간 합의없다면, 가계약금 포기 내지 배액상환만으로 해제할 수 없다
대법원은 “매도인이 ‘계약금 일부만 지급된 경우 지급받은 금원의 배액을 상환하고 매매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고 주장한 사안에서, ‘실제 교부받은 계약금’의 배액만을 상환하여 매매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면 이는 당사자가 일정한 금액을 계약금으로 정한 의사에 반하게 될 뿐 아니라, 교부받은 금원이 소액일 경우에는 사실상 계약을 자유로이 해제할 수 있어 계약의 구속력이 약화되는 결과가 되어 부당하기 때문에, 계약금 일부만 지급된 경우 수령자가 매매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해약금의 기준이 되는 금원은 ‘실제 교부받은 계약금’이 아니라 ‘약정 계약금’이라고 봄이 타당하므로, 매도인이 계약금의 일부로서 지급받은 금원의 배액을 상환하는 것으로는 매매계약을 해제할 수 없다”라고 판시했습니다.(대법원 2015. 4. 23. 선고 2014다231378 판결)
이에 따라, 대법원은 아파트 매매대금 11억 원, 계약금 1억 원으로 정하고 매수인이 가계약금 1,000만 원을 매도인에게 지불한 상태에서 매도인이 일방적으로 해제의사표시를 하고 수령한 가계약금의 배액인 2,000만 원을 공탁하자 매수인이 잔금 수령거절을 이유로 매도인에게 해제통지한 사례에서, 매도인이 해약금을 지급하고 계약을 해제하려면 실제 교부받은 가계약금 1,000만 원의 배액인 2,000만 원만 상환하면 되는 게 아니고, 약정 계약금인 1억 원에 가계약금으로 받은 1,000만 원을 합한 1억 1,000만 원을 상환해야 해제된다고 보았습니다. 다만, 1억 1,000만 원 전부를 반환케 하는 것은 여러 가지 사정상 부당히 과다하므로 30%를 감액하여 70%인 7,700만 원만 상환하면 된다고 최종 판단했습니다.
▶ 가계약금(계약금 일부)만 교부된 상태에서 매수인이 계약금의 잔액을 지급하지 않는 한 매도인, 매수인 모두 계약해제 불가
대법원은 “매매계약이 일단 성립한 후에는 당사자의 일방이 이를 마음대로 해제할 수 없는 것이 원칙이다. 다만 주된 계약과 더불어 계약금계약을 한 경우에는 민법 제565조 제1항의 규정에 따라 해제를 할 수 있기는 하나, 당사자가 계약금 일부만을 먼저 지급하고 잔액은 나중에 지급하기로 약정하거나 계약금 전부를 나중에 지급하기로 약정한 경우, 교부자가 계약금의 잔금 또는 전부를 지급하지 아니하는 한 계약금계약은 성립하지 아니하므로 당사자가 임의로 주계약을 해제할 수는 없다”(대법원 2008. 3. 13. 선고 2007다73611 판결)라고 판결했습니다.
따라서, 가계약금을 교부한 매수인이 해제하려면 계약금 잔액 전액을 교부(공탁)해야 하고, 수령한 매도인이 해제하려면 받은 가계약금에다 본 계약금을 합친 금액을 상환해야만 적법하게 해제가 되는 것입니다.
▶ 가계약금을 교부한 매수인이 일방적으로 해제하고 가계약금 반환청구할 수 있나
최근 대구지법 서부지원에서는 매수인이 가계약금을 교부한 후 일방적으로 계약을 파기하고 교부한 가계약금을 돌려달라고 소송을 제기한데 대하여 기각시킨 사례가 있어 소개합니다.(대구지법 서부지원 2018. 12. 11. 선고 2018가소21928 판결)
사례를 보면, A는 B 소유 부동산에 대해 B로부터 매매대금 2억7천만원, 잔금지급일 2018년 10월 중순, 계약금은 매매대금의 10%, 가계약금은 300만원이라는 제안을 받고, 2018년 4월27일 B에게 가계약금으로 300만원을 송금했습니다. 그 후 A는 마음이 바뀌어 B에게 계약을 파기하고 싶으니 지급한 가계약금 300만원을 돌려달라는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그러나 법원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A의 반환청구를 기각하고 B의 손을 들어 주었습니다. “매매의 가계약을 체결하고 가계약금을 수수하는 것은 매수인에게 다른 사람에 우선하여 본계약을 체결할 수 있는 우선적 선택권을 부여하고, 매도인은 이를 수인하는데 본질적인 의미가 있으므로, 가계약제도는 매도인보다 매수인을 위한 장치다. 매수인은 일방적인 매매계약 체결요구권을 가지는 대신 매수인이 매매계약의 체결을 포기하면 가계약금의 반환 역시 포기해야 하는데, 이는 매도인이 매수인에게 일방적인 계약체결 요구권을 부여함으로써 부담하는 법률적인 지위의 불안정성에 대한 보상의 의미를 가진다”라는 이유로 스스로 계약을 파기한 A의 가계약금의 반환청구를 기각한 것입니다.
그런데 대법원은 “매매 당사자가 계약금 일부만 먼저 지급하고 잔액은 나중에 주기로 약정한 경우 계약금 전부가 지급되지 않으면 계약금 계약이 성립하지 않으므로 당사자가 임의로 주계약인 매매계약을 해제할 수 없고, 해약금의 기준은 실제 받은 계약금이 아니라 약정계약금”으로 보고 있으므로(대판 2014다231378), 위 사례에서 만약 매도인 B가 매수인 A의 가계약금 반환청구에 대해 반소로써 “해약금이 약정계약금 상당액인 2천700만원이므로 이미 지급한 300만원을 공제한 나머지 2천400만원을 추가로 지급해야 해제가 된다”고 주장했다면, 매수인 A가 B에게 2천400만원을 더 지급해야 해제가 될 수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 결론 – 가계약금 교부시 주의할 점
이처럼 가계약체결이나 가계약금 교부시 여러 가지 복잡한 문제가 생기고 특히 소액의 가계약금만 생각하고 함부로 계약을 파기했다가 계약금 전체를 배상해주어야 하는 불의의 타격을 입을 수 있는 점을 고려할 때 이상의 법리를 숙지하고 가계약금 지불시 특히 유의하시는 것이 바람직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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