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와 선거
“드라마는 사실적일 때 시청자를 감동시키고, 선거는 드라마 같을 때(dramatic) 유권자의 표심을 자극한다.” 방송분야에 몸담고 있는 지인에게 선거에 이기는 방법을 물었더니 한 문장으로 답을 주었다. 선거과정 자체가 역전과 반전을 거듭하고, 유권자의 감성에 호소해야 당선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그런 표현을 한 것 같다. 이러한 믿음 때문인지 후보자들은 각자의 드라마를 만들기 위해 눈물겨운 노력을 하고 있다. 눈에 띄는 색상의 유니폼을 입고, 개사한 유행가를 귀가 아플 정도로 반복해서 틀고, 심지어 맨바닥에서 엎드려 유권자를 향해 절하기도 한다. 이러한 행위는 사람의 감성을 자극하여 상품의 판매를 유도하려는 기업의 모습과도 닮아 있다. 광고와 홍보를 통해 감성에 자극을 받은 고객은 상품의 가치에 확신이 생기면 구매한다. 상품의 가치는 사용하는 순간 바로 알게 되고 마음에 들면 다시 구매를 한다. 기업에 대한 신뢰감이 쌓이면 충성도 있는 고객이 된다.
부동산 공급이라는 상품
후보자는 ‘공약’ 이라는 상품을 통해 자신의 가치를 드러낸다. 그간 정당 주력상품 중 하나는 ‘부동산공급’ 이었다. 기업의 경제적 부가가치 창출에 유리하고 부동산 개발지와 그 주변은 돈이 된다는 국민의 기대에 부합하여 표를 얻는 데는 이만한 상품은 없기 때문이다. 잘 팔리는 상품이기 때문에 진보와 보수의 철학적 논쟁은 무의미 했다. 미시경제학자 헤럴드 호텔링(Harold Hotelling)이 주창한 호텔링 이론은 선거에서도 적용된다. 좌우파의 이념적 성향이 보통 정규분포로 이루어졌을 때 정책이나 각 입장들이 중간에 수렴한다는 이론이다. 아이스크림 장사가 아주 더운 여름날 해변에서 아이스크림 장사를 할 때 어느 위치에서 하는 게 가장 유리할가? 사람들이 정규 분포한다고 가정하고 정 가운데에서 서로 등을 맞대고 장사하는 것이 자신의 이익에 가장 부합할 것이다. 즉 선거 공학적으로 보면 중간에서 멀어질수록 얻을 수 있는 표의 양이 줄어드는 셈이다. 이론은 각 정당의 이념을 떠나 그 동안 부동산공급과 관련된 공약이 난무했던 이유를 설명해준다.

공약의 문제점
각 후보 모두 공통되게 5년간 250만 가구를 공급하겠다고 했다. 기본주택이든 원가주택이든 현재 전국적으로는 40만 가구, 수도권은 28만여 가구가 필요하다. 양쪽 모두 의욕적인 공급물량을 제시했지만 꽤 많은 물량이다. 물론 이 물량이 공약처럼 시장에 쏟아진다면 반드시 국민에게 도움이 된다. 여당후보는 공공주도로, 야당 후보는 민간주도로 공급하겠다고 한다. 한국주택토지공사(LH), 경기주택도시공사(GH), 서울주택도시공사(SH) 등 공공주도로도 이 많은 물량을 공급하기는 쉽지 않다. 구체성이 떨어지고 실현방안이 없다. 실제로 250만 가구를 공급할 예산도 없고 토지도 없다. 기본주택이나 원가주택은 이전에 반값아파트, 토지 임대부 아파트와 동일한 개념이다. 기본주택이나 원가주택을 공급하려면 토지와 예산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러한 주택을 지을 토지가 그렇게 많지 않고 재정도 취약하다.
원가주택라는 신상품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야당이 내놓은 “신상 공약”은 원가주택이다. 현실에 대한 인식을 같이 하더라도 정당 간 해결방안에는 분명 차이가 존재한다. 하지만 주거공급이라는 대의의 근본적인 취지는 변하지 않아야 한다. 서민들의 주거비 부담을 줄이고, 최저 주거기준에도 못 미치는 집 아닌 집에 거주하는 저소득층, 장애인 가구 등 주거 취약계층에게 안정적인 거주 환경을 제공해 주고, 괜찮은 임대주택을 합리적인 가격으로 공급해 줄 수 있어야 한다.
때로는 정치적 이해관계에 원칙이 왜곡되는 경향이 있다. 차별화 할 것이 있다 하더라도 원칙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 특정지역의 지지를 받는 정당이라 할지라도 그들만의 이해를 대변하는 것이 우리나라의 주택 공급을 실현하는 길은 분명 아니다. 공약을 선택하는 것은 유권자의 몫이지만, 믿고 선택해준 국민에게 품질 좋은 상품을 만들어 내야 하는 것은 분명 정치인들의 책임이다. 공약을 제대로 실천했을 때 국민은 충성도 높은 단골고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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