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규호의 논점과 관점] '부자 감세'라는 케케묵은 담론
정부가 지난달 말 내놓은 보유세(재산세+종합부동산세) 완화 방향에 ‘부자 감세(減稅)’라는 비판이 조금씩 나온다. 2년 전 수준으로 보유세를 내릴 경우 시가 10억원(공시가 6억원대) 이하 주택은 세금이 고작 7만원 줄어드는 데 반해 30억원 이상 고가(高價) 주택은 1700만원가량 감소한다는 것이다. 세부담 감면액만 놓고 보면 분명 커다란 차이다. 정부가 보유세 완화를 ‘중산·서민층 주거안정 대책’이라고 강조해 빌미를 제공한 측면도 없지 않다.

중산층 주택에도 폭탄 과세

하지만 뒤집어 보면 고가 아파트라 하더라도 2년 사이에 세금이 1700만원 오른다는 게 말이 되나 싶다. 서울 강남 도곡렉슬 아파트 전용 120.8㎡의 경우 올해 공시가격과 공정시장가액비율 100%를 적용하면 보유세로 2556만원을 내야 한다. 이를 2년 전으로 돌리면 918만원이다. 역산해 본 상승률은 178%에 이른다. 상황이 이런데, 집값이 오른 만큼 응당 내야 할 세금이라고 강변할 수 있을까.

최근의 보유세 급등은 집값이 오른 때문만은 아니다. 이전 문재인 정부가 공시가격 현실화라는 명분을 앞세워 집값 급등기에 공시가격을 더 높인 게 화(禍)를 불렀다. 시장 안정책이라기보다 집주인에 대한 징벌에 가까웠고, 그 의도가 짙었다는 점에서 폭탄으로 인식될 만하다. 자기 집 한 채도 못 갖게 하는 세금 제도가 어떤 정당성을 얻을까 싶다. 당초 명분인 시장 안정에도 얼마나 기여했는지 의문이다.

고가 주택만 그런 것도 아니다. 서울 강북의 한 아파트(전용 84㎡)는 작년 공시가격이 7억원대 초반으로, 보유세를 190만원가량 내야 했다. 불과 2~3년 전 100만원이 안 되던 재산세가 훌쩍 뛰어버린 것이다. ‘세금 폭탄’ 담론은 보유세 강화가 부유층뿐 아니라 중산층 이하에도 경제적 고통을 안길 것이란 주장이 핵심인데, 이런 논리가 틀렸다고 말하기 어렵다.

세제 강화를 보수 측에선 세금 폭탄, 세제 완화를 진보 쪽에선 부자 감세로 맞받아친 게 어제오늘 얘기는 아니다. 노무현 정부 때부터 시작됐으니 거의 20년 역사다. 세금 담론 싸움은 선거철이 되면 항상 소환됐다. 하지만 지금 상황을 부자 감세로 몰아가는 것은 과하기도 하고, 진영논리 그 이상도 아니다. 더불어민주당도 이번 지방선거를 앞두고 보유세 완화,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일부 완화 등 부동산 세부담 완화책을 제시한 바 있다.

좌파 진영에선 지방선거 패인으로 민주당의 ‘오락가락’ 정책을 꼽는다. 그중 대표적인 게 보유세 완화책이다. 하지만 과연 이 문제에서 오락가락해서 패배한 걸까. 거꾸로 표심(票心)을 다지는 데 도움을 줬을 수 있다. 부자 감세 주장의 재등장엔 다분히 정치적 의도가 끼어 있음을 의심하게 한다.

저성장 대응에 감세 불가피

민주당이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연이어 패한 것은 기계적 평등에만 치우친, 박제화된 이념 우선 정책이 몰고온 결과라 볼 수 있다. 집을 가진 자와 그렇지 못한 자, 기업주와 근로자, 기득권자와 소외받는 이들로 세상을 이분법적으로 보고 갈라치기 정치에 올인한 것을 국민이 심판한 것이다. 그런데도 선거 패배의 핵심 이유는 덮어두고, 정책 일관성을 둘러싼 책임 논란만 민주당 내에서 되풀이되고 있다.

고(高)물가를 이겨내더라도 이후 저성장과 경기침체를 맞을 수 있다는 한국은행 총재의 경고가 나온 마당이다. 감세로 기업과 가계의 활력을 높이는 것 말고 스태그플레이션(물가 상승 속 경기침체)에 대처하는 법이 따로 있을 리 없다. 정부가 법인세 최고세율 인하, 상속세 인하 방침까지 밝히는 배경이다. 이를 케케묵은 부자 감세론에 갇혀 비판만 할 일인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