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면 주무부처인 고용노동부와 경영계를 대표하는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이번 판결은 정년 유지형 임금피크제에 대한 것으로, 정년 60세 연장을 조건으로 도입한 임금피크제는 관련이 없다고 해석했다. 고용부와 경총은 산업 현장의 노사 갈등과 혼선을 줄이고 기업들의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다. 노사가 대법원 판결을 각각 다르게 해석하면서 현장의 혼란은 점점 커질 조짐이다. 그런데도 법원은 늘 그랬듯이 판결이 미치는 효력의 범위나 구체적 대상 등 다툼의 소지가 있는 부분에 대해 친절하게 다시 설명해주지 않는다. 판결문에 대한 해석은 각자의 몫이다. 처음부터 이런 혼선이 생긴 건 판결이 모호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오는데도 말이다.
◆정년 연장형 임피제도 영향받나
이번 판결 대상이 된 A 연구원 건은 정년을 늘려주거나, 근로 시간을 줄여주는 조치를 하지 않은 채 55세 이상이라는 이유만으로 임금을 깎은 사례다. 임금 삭감의 수준도 과도했다는 게 법원의 판단이다. 1,2심에 이어 대법원에서도 회사 측이 패소한 이유다. 상식적으로 봐도 이런 식의 임금피크제는 무효라는 대법 판결에 수긍이 간다.
문제는 대법원이 이 사건에 한정된 판결을 넘어서 임금피크제가 효력을 갖기 위한 일반적인 조건을 제시하면서 불거졌다. 대법원은 판결문에서 ‘정년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임금을 삭감하는 형태의 임금피크제를 시행하는 경우’라고 전제하면서 임금피크제가 합법으로 인정받기 위한 ‘합리적 이유’ 네 가지를 적시했다. 구체적으로 △임금피크제 도입 목적의 타당성 △대상 근로자들이 입는 불이익의 정도 △임금 삭감에 대한 대상 조치의 도입 여부 및 그 적정성 △임금피크제로 감액된 재원이 제도 도입의 본래 목적을 위해 사용되었는지 등이다. 이를 종합적으로 따져봐야 한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판결의 의의를 설명하는 보도자료를 통해 “현재 다른 기업에서 시행 중인 정년 유지형 임금피크제나 하급심에 진행 중인 사건 관련 개별 기업들이 시행하는 임금피크제 효력의 인정 여부는 도입목적의 정당성 및 필요성, 실질적 임금 삭감의 폭이나 기간, 대상 조치의 적정성(ex. 임금 삭감에 준하는 업무량 또는 업무강도의 저감), 감액된 재원이 도입목적을 위해 사용되었는지 등에 따라 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다. 정년 유지형이든 연장형이든 제도 운용의 적정성은 개별 사례마다 따져봐야 한다는 취지로 해석될 여지를 남겼다. 대다수의 기업이 정년 연장을 전제로 임금피크제를 도입했지만, 노동계가 다퉈볼 만하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지금도 법원은 정년 유지형과 연장형에 상관 없이 사안에 따라 엇갈린 판결을 내놓고 있다.
◆노·사·정 해석 모두 달라 혼선
경총은 대법 판결은 정년유지형 중에서도 예외적인 사례이며, 정년연장형과는 무관하기 때문에 대부분 기업은 법적으로 문제가 없을 것으로 판단했다. 경총은 이런 내용을 담은 ‘임금피크제 대법원 판결 관련 대응 방안’을 회원사에 배포했다. 경총이 최근 30대 기업을 조사한 결과 대다수(95.7%)는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도입 목적은 정년연장(73.9%)과 신규채용 확대(13.0%), 고용유지(4.3%) 등이었다.
고용부의 판단은 경총과는 조금 다르다. 좀 더 신중한 유권해석을 내놨다. 고용부는 지난 3일 보도 참고자료를 통해 “대부분의 임금피크제는 정년 60세 의무화를 배경으로 도입된 정년 연장형이기 때문에 이번 대법원 판결에서 다룬 임금피크제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했다. 고용부에 따르면 임금피크제 도입 사업체 7만6507곳 중 87.3%는 정년 60세를 의무화하는 내용으로 고령자고용법이 개정된 2013년 이후에 제도를 도입했다.
고용부는 “정년 연장형 임금피크제에 대해서는 대법원에서 연령차별 여부에 관한 판단기준을 제시하지 않았다”면서도 “다른 대법원과 하급심 판례에 따르면 고령자고용법 제19조2에 근거해 정년연장에 수반된 조치로서 노사 협의를 통해 임금피크제를 도입했다면 원칙적으로 연령차별이 아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명목만 임금피크제일 뿐 실질적으로는 비용 절감, 직원 퇴출 등의 목적으로 특정 연령의 근로자 임금을 과도하게 감액하는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연령차별에 해당할 수 있다는 의견을 내놨다. 그러면서 정년을 2년 연장하는 대신 빠르면 44세부터 연차별로 최대 50%까지 임금을 삭감하는 임금피크제에 대해 무효로 판결한 서울고법 판례를 제시했다.
이렇듯 대법 판결을 놓고 고용부와 경영계, 노동계의 입장이 엇갈리면서 임단협을 앞둔 산업 현장에 새로운 노사갈등의 씨앗이 뿌려졌다. 애초부터 대법원이 ‘정년 유지형에만 해당되는 판결’이라고 명확하게 못을 박았다면 이런 혼란은 없었을 것이다. 적용 범위가 헷갈리는 판결을 해놓고 설명도 부족하다 보니 혼선이 커진 것이다. 지금이라도 사회적 갈등과 혼란을 줄이기 위해 대법원이 추가적인 입장이나 상세한 설명을 내놔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과거 통상임금 사태 때는 통상임금의 기준을 놓고 법원마다 판결이 달라 현장에서 혼란이 끊이지 않자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나서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013년 12월 ‘통상임금은 소정 근로의 대가로 정기적, 일률적, 고정적으로 지급되거나 재직요건 등 별도의 조건 없이 당연히 지급되기로 한 것’이라고 정의했다. 추가적인 통상임금 청구가 회사의 경영상 어려움을 초래하거나 기업의 존립을 위태롭게 하는 경우는 신의칙에 위배돼 허용되지 않는다는 판단까지 덧붙였다.
이건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