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매나 임대차계약한 부동산을, 지급한 계약금을 포기하고서라도 해제했으면 하고 희망하는 사람들이 많다. 지급한 대금 중에서 계약금만 반환받지 못하게 되더라도 나머지는 돌려받으면서 계약을 끝냈으면 하는 바램인 것이다. 부동산시장에 상당한 거품이 형성되어 있다고 느껴지는데다가, 예정대로 부동산을 인수하더라도 수지가 맞지 않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계약금 정도만 포기한다면 언제든지 계약을 종료하고 더 이상 계약에 구속되지 않게 되면서, 더불어 계약금 이외에 지급한 돈이 있다면 나머지는 반환받을 수 있는 법률적인 권리가 있을까?

이 문제는 법률가들에게는 매우 간단함에도 불구하고 일반인들은 의외로 많은 분들이 오해하고 있는 사실에, 적지않게 놀라곤 한다. 일반인들은 계약금을 포기하면 당연히 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계약금 상당의 금액을 포기하고서라도 계약을 해제하고자 하더라도, 언제든지 가능한 것이 아니라 시기적인 제한이 있다. 이 문제에 관해 민법 제565조에서는 “해약금”이라는 제목으로 다루고 있는데, 계약금을 포기하고서 계약을 해제할 수 있는 시기를 “이행에 착수하기 이전까지”로 제한하고 있다. “이행에 착수하기 이전”이라는 시점에 대해서는 상황에 따라 여러 가지 법률적인 해석이 있을 수 있지만, 보통의 경우에는 “중도금지급약정일”로 해석된다. 따라서, 중도금지급일 이후에는 계약금 상당을 자진해서 포기하더라도 임의로 해약할 수 없게 된다. 즉, 계속 계약에서 구속될 수밖에 없게 되어, 계약을 벗어나지 못하고 이행할 의무를 부담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이행에 착수한 시점 이후에는 상대방과의 합의나, 상대방의 계약위반사유(이행지체, 이행불능 등)가 없는 등 다른 사정이 없는 한, 계약금을 포기하고서라도 마음대로 계약을 깰 수는 없게 된다.

그렇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 계약을 이행하지 않으면 법률적으로 어떻게 처리될까? 당사자간에 계약처리에 관해 적절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고 결국 법적으로 해결될 수밖에 없다면, 매도인이나 임대인으로서는 상대방을 상대로 나머지 대금을 지급해 달라는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재판결과, 일정금액을 지급하라는 판결이 선고되면, 매수인이나 임차인의 재산에 강제집행이 가능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계약금을 포기할 경우 언제든지 계약을 끝낼 수 있다’고 오해하고 있는 이유는, 비록 법률적으로는 계약금을 포기하고 임의로 계약을 해제할 수 있는 시기가, 이행에 착수하기 이전까지로 제한되어 있지만, 부동산거래 관행상으로는 매수인이나 임차인이 계약을 이행할 의사나 능력이 되지 않는데, 매도인이나 임대인으로서도 굳이 법적인 소송으로 진행되는 것을 원치않은 상황하에서, 계약금만 받고 계약을 합의하면서 다른 계약자를 구하거나 아니면 현재의 계약자 대신 바로 다른 매수자를 연결하는 식으로 해결되어 올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현재와 같은 극심한 부동산불황기에서는 지금까지와 같은 원만한 해결이 되지 않고 그 이상의 상당한 손해를 감내하거나 아니면 법적인 분쟁으로 가야 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단적으로 상가분양의 경우만 하더라도, 토지매입비에서 분양대행수수료에 이르기까지 실제 상가의 순수가치보다 엄청난 거품을 포함한 금액으로 상가분양가격이 책정된 경우가 많은 것이 현 실정인데, 지금과 같은 부동산불황기에는 현재의 계약자와 적절한 금액(계약금 정도)으로 합의해제한 이후에, 상당한 손해를 보지 않고 다시 다른 적절한 계약자를 구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계산이 된다는 점에서, 종전과 같이 원만하게 해결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여차하면 계약금이라도 포기하고서 계약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안이한 마음으로 쉽게 체결한 계약은, 예상치 못한 족쇄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고, 계약체결에 더욱 신중을 기해야 할 것이다.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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