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임대인들은 참 보증금지급에 적극적이지 않다는 느낌을 자주 받게 된다. 법적으로는 임대차기간이 종료하면 당연히 보증금을 반환할 의무가 있는데도 대부분의 임대인들은 제 날짜에 보증금을 반환해야한다는 부담을 갖고 있는 것 같지 않다. ‘다른 임차인이 들어와야 줄 수 있다’는 태도는 보통이고, 심지어는 임대차보증금을 회수하는 것이 임차인의 의무인 것인양, ‘ 직접 중개업소에 집을 내놓고 알아서 보증금을 회수하라’는 식의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반면 임차인은, 임대차만기일이 되기 몇 달전부터 임대차보증금을 반환해 줄 것을 이야기한 것은 물론, ‘이 보증금을 반환받아야만 다른 곳에 내정된 다른 전셋집(점포)에 보증금을 지급할 수 있다’거나, ‘분양받은 곳에 잔금을 지급하고 입주할 수 있다’는 식의 통사정으로 보증금반환에 소극적인 임대인을 감동시키고 있는 것이 지금의 일반적인 현상이다.
임대차보증금을 반환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임차인에 대해 채무자일 수밖에 없는 임대인의 자세가 왜 이렇게 소극적, 아니 어떻게 보면 고압적으로 느껴지는 것일까? 다른 사회, 경제적인 이유는 생략하고, 이 문제를 법적인 측면에서 이야기해 볼까 한다(보증금반환은 주택이나 점포이거나간에 논리가 대동소이하므로 이해의 편의상 주택을 중심으로 한다).

우선,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드는 재판구조에 큰 이유가 있다. 임대차보증금소송은 사실 쟁점이 전혀 없는 아주 간단한 재판이다. 따라서, 법률전문가라면 기록 검토하는데 불과 10분이면 충분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사건과 별반 다름없이 처리되어 재판이 3-4개월이 걸리는 것이 보통이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지급명령”이라는 제도가 있지만, 지급명령신청 후에 지급명령이 결정되기까지는 불과 1-2주 밖에 걸리지 않지만, 임대인이 지급명령결정에 이의할 경우 보통의 본안재판으로 회부될 수밖에 없는데, 그 경우 오히려 지급명령을 신청하지 않고 바로 본안재판을 신청할 때보다 오히려 시간이 더 소요되어버린다. 또한, 소송을 위한 인지대나 송달료, 그 밖에 법률구조를 위한 제반비용 역시 경제적인 약자인 임차인에게는 큰 부담이 되고 있는 것이다.

두 번째, 재판으로 가더라도 임대인에게 별다른 큰 불이익이 없는 것이 우리나라 재판구조이다. 임대인이 자진해서 임대차보증금을 지급하지 않을 경우에 임차인이 소송을 제기한다면 임대인에게 상당히 큰 타격이 될 수 있다고 할 때, 임대인은 임차인을 소송으로 가지 않도록 달래기 위해 노력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재판구조는 이와는 정반대이다. 이는 굳이 보증금사건 뿐 아니라 다른 보통의 사건에도 적용될 수 있는 경우이지만, 지급의무가 명백한 보증금사건에 적용하여 생각해 보면 이해가 훨씬 빠를 수 있다. 실력있는 변호사 유능한은, 임대차보증금소송을 당한 임대인을 위해 다음과 같이 자문할 수 있다. ① 소송이 제기되어 재판이 되더라도 재판이 종결될 때까지 임대차보증금을 마련하라. 재판이 마칠 때까지만 보증금을 돌려주게 되면 임대인에게는 어떠한 불이익도 없다. 재판 도중에 임대차보증금을 구해서 임차인에게 지급하려 하면, 대부분의 순진하고 착한 임차인들은 보증금 원금만 받고 임대차만기일 이후의 이자나, 소송비 등과 같은 다른 보상없이 바로 소송을 취하하게 된다. ‘억울해서 그렇게는 할 수 없다’고 임차인이 항변해도 오히려 법원이 좋은 말로 임차인에게 양보할 것을 설득한다. 법원에서 합의를 하게 되면 재판비용은 상대방인 임대인에게 받지 못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만약, 재판 도중에 극히 일부 독한 임차인이 ‘보증금 원금만 지급받고는 도저히 재판을 그만둘 수 없다’고 하더라도, 결과는 별로 임차인에게 득이 되지 않는다. 임대인은 그 금액을 (변제)공탁할 수 있고, 그 공탁서가 법원에 증거로 제출되면 법원은 원고인 임차인의 청구(소송)를 기각하는 판결을 선고할 수밖에 없다. 즉, 임차인이 재판에서 패소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 재판구조는 재판(변론)종결 당시의 상황을 기준으로 승패의 판단을 하게 되어있어, 비록 재판제기 당시에는 임차인이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상황이었지만, 재판이 종결되기 전에는 임차인이 보증금을 (공탁으로)돌려받은 셈이 되므로, 보증금을 달라고 하는 임차인의 청구는 기각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재판에 패소하면, 재판에 따른 소송비용은 오히려 패소자인 임차인이 부담할 수도 있게 된다(물론, 예외적으로 패소자에게 소송비용부담을 하지 않을 수 있지만, 어디까지는 예외적인 경우이므로, 이러한 경우의 임차인 모두에게 그러한 예외가 적용될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다). 만약, 합의도 하지 않고 패소판결을 선고받기도 싫다면, 독한 임차인이 택할 수 있는 방법은 소를 취하하는 방법 밖에 없다. 그러나 재판절차상 소취하 역시 상대방인 임대인의 동의를 받아야만 가능하므로, 임대인이 동의하지 않으면 소취하도 가능하지 않게 되어 결국 패소판결이 불가피하다. 소취하에 대한 임대인의 동의는 결국, 임차인에게 불이익한 방향으로 서로간에 합의가 되고야 사실상 가능한 것이다.

② 만약, 재판종결될 때까지도 돈을 마련하지 못하더라도 재판이 끝난 이후에도 보증금을 지급하고 사건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얼마든지 있다. 보증금반환판결을 받은 임차인은 임대차목적물을 경매신청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여러 가지 소송절차적인 이유로 법원에 경매신청하는데만 판결 선고일로부터 1개월 이상이 걸리기 때문에, 그 사이에 보증금을 갚아버리면 아무런 이상없다. 만약, 부득이 이 시점까지도 보증금이 준비되지 못해 부득이 경매신청되더라도, 경매신청에서부터 낙찰시까지는 최소 6개월 이상이 걸리는 것이 일반적이므로, 그 사이에 보증금을 변제하면 된다. 다만, 이 때는 임차인이 부담한 경매신청비용은 임대인이 부담해야 한다.

③ 보증금을 지급하지 않더라도 임차인이 전셋집에서 이사하지 않으면 임차인에게 지연이자를 지급할 의무가 없으니 보증금반환에 너무 초조해 하지 마라. 임대인의 임차인에 대한 보증금반환의무는, 임차인의 임대인에 대한 임대차목적물 인도의무, 즉 전셋집을 완전히 비우는 의무와 법률적인 용어로 “동시이행의 관계”에 있어, 비록 보증금만기가 지났다고 하더라도 임차인이 집을 비워주지 않으면 이자지급의무가 없는 것이다. 즉, 보증금에 이자를 가산하는 시점은, 임차인이 집을 비워주는 시점부터이다. 돈없는 임차인이 어떤 방법으로 보증금을 받지 않고 다른 곳에 주거를 구할 수 있으랴?

④ 더구나, 우리 재판제도는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한 임대인에게 임차인의 정신적인 위자료를 지급할 의무를 부여하지 않는다.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장기간의 소송 끝에 판결을 받아 경매절차를 거쳐 낙찰 직전에 겨우 보증금을 반환받더라도, 임차인에게 돌아오는 것은 보증금 원금이 전부이다. 임대인은 경매비용을 약간 손해볼 수 있지만, 그 돈은 임차인 몫이 아니다. 오랜 기간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함으로 인해 정신적인 고통이 당연히 예상될 수 있지만, 이러한 정신적인 고통에 대해서는 재산적인 손해가 회복되면, 즉 보증금을 돌려받으면 모두 없어지는 것으로 법원실무에서 관행처럼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상의 내용이, 유능한 변호사가 임대인을 위해 훌륭하게 자문할 수 있는 내용이다.

결국, 이런 방법으로 임대인이 큰 돈 들이지 않고 임대차보증금만기일로부터 약 1년간 이상을 버틸 수 있는 것이 우리나라 재판구조인 것이다.
이런 구조에서 어느 임대인이 임의적인 보증금반환에 적극적일 수 있으며, 그렇다고 어느 임차인이 소송제기에 적극적일 수 있을까?
그렇다고 임차인의 입장에서 무작정 소송을 회피하면서 임대인의 선처만 기대할 수는 없다. 위에서 본 바와 같은 이유로 우리나라 임대인은 보증금반환에 대단히 소극적인 인간형이 대부분이므로, 임대인의 눈치를 보면서 재판을 지체하다보면 마냥 세월이 흘러가게 된다. 결국, 임차인 입장에서는 장시간을 소요하는 우리재판절차를 감안하여, 가급적 일찍 재판을 시작하고, 재판 도중이나 재판 종결이후에 보증금을 돌려받기를 기대하는 것이 현재로서는 가장 안전한 방법으로 생각된다. 재판은, 보험료 납부가 아깝지만 어쩔 수 없이 가입하는 일종의 “보험” 정도로 생각하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결국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 제도적으로는 임대차보증금사건과 같이 쟁점이 단순하고 명백한 사건에 대한 재판처리절차를 총체적인 측면에서 개선하는 것이 시급히 필요하다고 보이고, 아울러, 보증금반환도 상호간에 중요한 “약속”이라는 점을 인식하여 자신의 약속위반으로 상대방에게 폐를 끼치지 않겠다는 성숙한 시민의식이 좀 더 필요하지 않을까하는 마음이다. -이상-

※ 그나마, 현행 재판구조하에서 임대차보증금을 수월하게 반환받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는 종전에 <임대차보증금의 효과적인 회수방안>이라는 제목으로 쓴 칼럼내용을 참고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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