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사례이다.
서울 강남구에 소재한 아파트를 소유한 갑이 최근 이 아파트를 6억원에 매도하면서 계약금은 6천만원, 중도금은 1억원, 잔금은 4억4천만원으로 정하였다. 그런데, 매수인 을이 계약당일 2천만원 밖에 준비하지 못해 나머지 계약금 4천만원은 계약체결일 3일 후에 갑의 구좌로 송금키로 하였다. 그런데, 계약한 바로 다음날 향후 아파트가격급등을 직감한 갑은, 계약을 해약하는 것이 유리하겠다는 판단을 하면서, 중개업자를 통해 지급받은 계약금 2천만원의 2배인 4천만원을 반환할 예정이니 계약을 해약하겠다는 뜻을 매수인 을에게 전달하였다. 그러나, 매수인 을로서는 어떻게든 계약을 유지하는 것이 경제적으로 유리하다는 판단을 하고 나머지 계약금4천만원을 약속한 날에 갑의 구좌에 송금한 것은 물론이고, 계약후 1달 후에 지급하기로 약속한 중도금 1억원도 계약금 4천만원과 함께 미리 송금해 버린 것이었다. 이에 당황한 갑이 필자의 법률사무소를 방문하게 된 것이다.
이 사안은 법률쟁점을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과연 약정된 중도금지급기일 이전에 중도금이 지급되었다고 하더라도 계약을 해약할 수 없는 것인지의 문제이고, 두 번째는 계약해약이 가능하더라도 얼마의 금액을 을에게 반환해야 하는지의 문제이다.

먼저 첫 번째 쟁점부터 살펴보자.
매도인이 계약금 2배를 매수인에게 지급하고서 계약을 해약할 수 있는 시기는 제한되어 있다. 민법 제565조에서는 “당사자 일방이 이행에 착수할 때까지”로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이행에 착수할 때”의 해석과 관련하여 다른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중도금지급기일”라고 해석하는데, 문제는 약속한 중도금지급기일 이전에 중도금이 지급되었다고 하더라도 이미 이행에 착수한 것으로 보고, 그 뒤로는 더 이상 계약을 해약할 수 없다고 해석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예외적으로 매도인이 민법 제565조에 의하여 계약을 해제한다는 의사표시를 하고 일정한 기한까지 해약금의 수령을 최고하며 기한을 넘기면 공탁하겠다고 통지를 한 이상 중도금 지급기일은 매도인을 위하여서도 기한의 이익이 있으므로, 이 경우에는 매수인이 이행기 전에 이행에 착수할 수 없는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 해당하여 매수인은 매도인의 의사에 반하여 이행할 수 없다고 보는 것이 옳으며, 매수인이 이행기 전에 일방적으로 이행에 착수하였다고 하여도 매도인의 계약해제권 행사에 영향을 미칠 수 없다(대법원 1993. 1. 19. 선고 92다31323 판결).
따라서, 이 점에서 본다면 위 사례에서 갑의 경우에는 을의 중도금지급에 불구하고 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

두 번째 쟁점은, 얼마의 금액을 지급해야 해약이 가능한지의 문제이다.
우선, 위 사례에서와 같이 약정된 계약금(6천만원) 중 일부(2천만원)만이 계약금으로 실제 수수되고 나머지는 수수되지 않고 있는 상태에서 계약을 해약하고자 할 때는 약정한 계약금을 기준으로 2배를 상환해야 하는지 아니면 실제 지급된 금액만을 기준으로 해야 하는지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 학설상 논란이 있지만, 다수설과 판례는 기본적으로는 실제 지급된 금액만을 기준으로 해야한다는 입장이다. 계약서상으로는 ‘ 중도금 지급 이전에 계약금을 포기하고 계약을 해약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고, 계약서상에 기재된 계약금은 비록 6천만원이지만, 법률적으로 계약금계약은 요물(要物)계약성을 가지기 때문에 실제로 교부된 금액만이 계약금으로서의 효력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따라서, 이러한 입장에 의한다면 비록 지급하기로 약정은 하였지만 실제로 지급되지 않은 계약금 부분에 대해서는 계약금으로서의 효력이 없는 것이다. 이 점에 관한 우리나라 대법원 판례는 정확하지는 않지만, 일본판례는 이러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다만, 우리 대법원은 계약금이 미처 준비되지 못한 매수인이 일단 형식상으로는 매도인에게 약정한 계약금을 모두 지급한 것으로 하되, 다만 이를 다시 매도인으로 돌려받아 매수인이 보관하는 형식으로 현금보관증을 매도인에게 작성해준 것이라면, 매도인과 매수인 사이에는 실제로 계약금이 교부된 것으로 해석할 수 있으므로, 매수인으로서는 약정한 계약금을 모두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하여, 요물계약성을 다소 완화하여 해석하고 있다(대법원 1991.5.28. 선고 91다9251 판결, 대법원 1999. 10. 26. 선고 99다 48160호 판결).

그런데, 이 사안에서는 갑이 해약의 의사표시를 하자, 곧바로 을이 미지급한 나머지 계약금 4천만원과 중도금 1억원까지 함께 송금해 버렸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위에서 본바와 같이 해약의 시기와 계약금의 요물성이라는 점에서 본다면, 만약 갑이 해약의 의사표시와 동시에 실제로 지급받은 계약금 2천만원의 배액인 4천만원을 을에게 지급하거나 공탁해버렸으면 아무런 문제없이 계약이 적법하게 해약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갑은 ‘받은 계약금의 2배를 돌려줄테니 해약하겠다’는 취지의 의사표시만 을에게 전달하였을 뿐, 실제로 계약금 2배를 지급하지는 않은 상태에서 상대방으로부터 나머지 계약금과 중도금을 송금받아버렸는데, 바로 이 점에서 문제가 있는 것이다. 민법 565조에 의한 해약을 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이행의 착수 이전에 계약을 해약하겠다는 의사표시만을 해서는 안되고, 계약금의 배액을 “이행제공”하여야 하는데(“이행제공”이란, 사안마다 다를 수 있지만 보통의 경우에는 돈을 지참하고 상대방이 받을 수 있는 상태를 만드는 것이다), 갑의 경우에는 단순히 계약해약의 통보만 하고 계약금배액을 이행제공하지 않았으므로, 적법하게 계약이 해약되지 못한 상태에서 나머지 계약금과 중도금이 지급되어버린 것이다. 결국, 이행제공 없이 단순히 해약의 뜻만을 전달한 것에 불과하여 계약이 적법하게 해약되지 않아 여전히 계약이 유효한 상태에서 나머지 계약금이 추가로 지급되었으므로 일단은 나머지 계약금지급은 유효하다고 판단될 가능성이 크다(물론, 이 점에 대해서는 “신의칙”이라는 차원에서 나머지 계약금의 지급에 문제가 있다는 반론이 제기될 여지는 있다). 이렇게 본다면, 계약을 해제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한 가운데 중도금을 지급했다고 하더라도 중도금지급기일 이전에는 계약금의 배액을 제공하여 계약을 해제할 수는 있지만, 갑이 지급하여야 할 금액은 1억2천만원(계약금 6천만원 ×2)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으로 생각된다.
법에 무지하여 신속하게 대처하지 못함으로 인해 불필요한 손해를 입게 되는 사례가 아닌가 생각된다.-이상-


<참고판례 및 법조문>
❏ 대법원 1993. 1. 19. 선고 92다31323 ❏
가. 민법 제565조가 해제권 행사의 시기를 당사자의 일방이 이행에 착수할 때까지로 제한한 것은 당사자의 일방이 이미 이행에 착수한 때에는 그 당사자는 그에 필요한 비용을 지출하였을 것이고, 또 그 당사자는 계약이 이행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는데 만일 이러한 단계에서 상대방으로부터 계약이 해제된다면 예측하지 못한 손해를 입게 될 우려가 있으므로 이를 방지하고자 함에 있고, 이행기의 약정이 있는 경우라 하더라도 당사자가 채무의 이행기 전에는 착수하지 아니하기로 하는 특약을 하는 등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이행기 전에 이행에 착수할 수 있다.
나. 매도인이 민법 제565조에 의하여 계약을 해제한다는 의사표시를 하고 일정한 기한까지 해약금의 수령을 최고하며 기한을 넘기면 공탁하겠다고 통지를 한 이상 중도금 지급기일은 매도인을 위하여서도 기한의 이익이 있다고 보는 것이 옳고, 따라서 이 경우에는 매수인이 이행기 전에 이행에 착수할 수 없는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 해당하여 매수인은 매도인의 의사에 반하여 이행할 수 없다고 보는 것이 옳으며, 매수인이 이행기 전에, 더욱이 매도인이 정한 해약금 수령기한 이전에 일방적으로 이행에 착수하였다고 하여도 매도인의 계약해제권 행사에 영향을 미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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