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재화와 달리 부동산거래에 있어서는 대금이 먼저 지급될 수밖에 없는 관행이 있고, 이러한 관행이 부동산을 취득하고자 하는 측에 얼마나 불리한 점이 있는지에 대해서 종전 칼럼에서 자세하게 언급한 바 있다.
다음의 사례는 실무에서 비교적 자주 발생하는 것으로, 선지급구조의 문제점으로 볼 수 있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갑은, 을 소유의 다가구 주택을 보증금 7천만원에 임차하기로 계약하기로 하고 을에게 계약금 7백만원을 지급하였다. 나머지 잔금 6,300만원의 지급일은 계약일로부터 1달 후로 정하였다. 그런데, 임대차계약체결 후 잔금지급하기 사이에 을은 자신의 ‘채권자 병이라는 사람에게 빚을 진 것이 있다’는 이유로 채권최고액을 5억원으로 하는 근저당권을 병 앞으로 설정해 버렸다. 그 결과 임대차하고자 하는 다가구주택의 시가를 초월하는 근저당권이 설정되어버려, 갑으로서는 나머지 잔금을 지급할 수 없게 되었다. 임차인으로서 보증금을 반환받을 수 있는 권리는 임대차목적물인 그 집에 이사를 가서 주민등록과 확정일자를 갖추는 시점부터 확보되게 되는데, 이미 그 전에 막대한 선순위 근저당권이 발생하게 되어 보증금반환이 불가능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입주를 포기한 갑이 계약금을 반환받기 위해 어떤 조치를 취할 수 있을까?
먼저 민사적으로는, 을의 계약위반책임을 물어 을에게 계약금반환과 별도로 손해배상책임까지 물을 수 있다. 그러나, 임대차계약 이후에 무단으로 채권자에게 근저당권을 설정해 버리는 을의 행태로 미루어 볼 때는 을에게 임대차목적물인 다가구주택 이외에는 다른 재산이 없을 가능성이 많아서, 손해배상책임은 커녕 계약금 그 자체의 반환도 실제로는 여의치 않을 수 있다.
그 다음으로는 형사적인 고소를 고려할 수 있는데, 위와 같은 경우에는 사기죄와 배임죄가 검토될 수 있다. 그러나 두가지 모두 성립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사기죄의 성립은 임대차보증금을 편취할 목적으로 임대차계약할 당시부터 임대차할 의사나 능력도 없이, 처음부터 임대차계약 후에 바로 근저당설정을 해 버리려는 생각을 가지고 행위한 것이라는 것이 입증되어져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입증은 쉽지가 않다. ‘당초에는 그런 악의는 전혀 없었고, 임대차계약 이후에 채권자들의 독촉에 쪼들려 어쩔 수 없이 근저당권을 설정해준 것이다’라고 임대인이 변명하게 되면, 임대인의 사기의사를 입증하기 곤란하기 때문이다.
한편, 배임죄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그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로써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여 본인에게 손해를 가한 행위로 정의되는데, 위와 같은 사례의 경우에는 판례상으로 배임죄가 성립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배임죄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지위”에 있어야 하는데, 이와 같이 임대차계약을 한 임대인이 임대차목적물을 타인에게 근저당설정해 주어서 향후 임차인에 대한 임대차보증금반환을 곤란하게 만든 정도에 불과하다면, 이러한 의무위반은 단순히 민사적인 채무불이행에 불과할 뿐 형사적인 배임죄가 성립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 더구나, 위와 같이 단순히 계약금을 받은 것에 불과한 상태에서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지위”에 있지 않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현행판례의 입장이다. 계약금만을 받은 단계에서는 해약금 2배를 지급하고 언제든지 해약이 가능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결국, 어떠한 이론구성으로도 을에 대한 형사처벌은 쉽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임대차계약을 체결하고서 이를 준수해야 할 의무가 있는 사람이 이를 제대로 준수하지 않더라도 별다른 실효성 있는 제재를 가할 수 없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그렇다면 예방이 최선일텐데, 지금의 현실하에서는 계약금을 적게 지급하는 것이 그나마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다. 매우 소극적인 방법이긴 하지만 다른 대안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생각할 수 있는 대안으로는, 계약금지급과 동시에 다음과 같은 여러 가지 조치들을 고려할 수 있는데, ➀ 근저당권을 설정하는 방법, ➁ 가압류를 하는 방법, ➂ 먼지 전입신고하고 확정일자를 갖추는 방법 등이 그것이다.
먼저, 근저당권설정은 임대인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데 계약금만 지급한 단계에서 근저당권을 요구하는 것은 지금의 관행으로는 관철하기가 쉽지 않아서 현실적이지 못하다.
가압류하는 방법은 임대인의 동의없이 법원에 간단한 재판을 거쳐 일방적으로 할 수 있는 방법이기는 하지만, 이러한 사안에서는 재판과정에서 가압류가 채택(인용)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가압류가 받아들여지기 위해서는, 법적으로 계약금을 반환받을 수 있는 권리가 있고 시급하게 가압류를 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는 사실을 입증해야하는데, 임대차 계약에 별다른 문제가 발생한 것이 아니라 단순히 임대인이 계약을 위반할 수 있다는 우려만으로는 가압류가 인용되기 곤란하다.
마지막으로 전입신고, 확정일자를 갖추는 방법을 생각할 수 있는데, 역시 적절하지 않다. 임대차보증금을 확고하게 반환받을 수 있는 권리인 대항력, 우선변제권은, 단순히 전입신고, 확정일자를 갖춘 시점부터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임대차목적물을 점유하게 되는 “이사”라는 요건과 동시에 충족될 때 가능하다. 따라서, 잔금을 치르고 이사하는 시점 이전에 전입신고, 확정일자만을 받아두었다고 하더라도, 후에 설정된 근저당권보다 후순위가 될 수밖에 없다.
위에서 본 문제점은 매매계약 등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으므로, 부동산거래의 보편적인 문제로 볼 수 있다.
결국, 부동산을 거래할 때 돈을 먼저 지급하게 되는 관행에서는 이러한 문제가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각자 자신의 상황에 맞게끔 적절하게 계약을 조절하는 것이 최선일 수 있다. 앞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➀ 가급적 계약금을 적게 지급하는 방법, ➁ 계약체결과 동시에 대금을 전부 지급하고 권리를 즉시 인수하는 방법, ➂ 에스크로제도가 그 보완책으로 생각할 수 있다.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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