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개업자나 주택관리사가 건물주로부터 임대관리 등을 위임받아 일정한 수수료를 받는 형태의 건물관리가 급증하고 있는데, 이 와중에서 건물관리를 위임받은 중개업자 등이 전세보증금이나 월세를 횡령하는 사고가 자주 발생하고 있다. 사고유형으로는, 전세형태로 임대차계약을 체결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월세계약인 것처럼 관련서류를 조작한 후, 전세보증금을 건물주에게 전달하지 않고 횡령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건물주들이 건물 관리업자에게 건물관리를 전적으로 위임한 후에는 건물관리나 사후확인조치에 소흘하다는 점, 은행금리가 낮은 상황에서 전세계약보다는 월세계약을 선호한다는 점을 악용한 것이다.
이 경우 법률적으로는 어떠한 분쟁이 발생할 수 있을까?
형사적으로는 범법행위를 한 관리업자가 횡령이나 사기로 당연히 처벌될 수 있다.
한편 민사적으로 어떤 분쟁이 발생할 수 있을까?
관리업자에게 돈을 횡령당한 건물주는, ‘관리업자가 아무런 위임을 받지 못한 채 임대차계약을 임의로 체결한 것으로서 임대차계약을 책임질 수 없다’고 하여 임차인을 상대로 건물을 비워달라는 명도소송을 적극적으로 제기하거나, 아니면 임차인이 원고가 되어 건물주에게 임대차보증금을 달라는 소송의 형태로 분쟁이 발생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 경우, 임차인은 건물주와의 관계에서 임차인으로서의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을까?
구체적인 사안마다 결론이 달라질 수 있다.
만약, 건물주가 관리업자에게 임대차에 관한 전적인 권한을 위임한 것이라면, 관리업자가 임차인으로부터 전세형태로 임대차계약을 하고 임대차보증금을 수령한 행위는 적법하고 유효한 것이다. 즉, 임대인과 관리업자간의 위임관계는 법적으로 유효하고, 다만 임대인을 위해 전세보증금을 보관하고 있던 관리업자가 이를 횡령한 것에 불과하다. 다시 말하면, 임차인이 관리업자와 임대차계약을 체결하고 임대차보증금을 지급한 행위는 건물주의 적법한 대리인과의 행위로서 법적으로 유효한 것이다. 따라서, 임차인은 당연히 건물주에 대해서 임차인으로서의 권리가 있다.
반면에, 건물주로서는 월세계약만을 위임하였는데, 관리업자가 위임권한을 무시하고 전세계약을 체결한 것이라면 결론이 나뉘어질 수 있다. 이 경우는 관리업자가 정당한 위임권한을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건물주를 대리하여 전세계약을 체결한 행위를 건물주에 대해 당연히 유효하다고 할 수는 없다. 다만, 이러한 전세계약을 체결한 임차인으로서는 관리업자가 건물주를 대리하여 전세계약을 체결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 것으로 오인한 것이므로, 이러한 잘못된 믿음에 정당한 사유가 있는, 다시 말하면 믿음에 큰 과실이 없는 것으로 법적으로 평가될 수 있다면, 민법상 표현대리(表現代理)제도라는 논리에 따라 임차인으로서의 권리를 보장받게 된다. 그렇지 않고 그러한 믿음에 정당한 사유가 없다면 권리보장이 어렵게 된다.
결국, 건물관리업체의 사기횡령사고는 건물주나 임차인의 손해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건물주나 임차인으로서는 보다 세심한 주의를 할 필요가 있다.
건물주 입장에서는 건물관리를 관리업체에 전적으로 맡겨두고 손을 뗄 것이 아니라, 관리업체가 계약한 부분에 대해서 수시로 직접 재차 확인하는 등의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한편, 임차인 입장에서는 관리업체가 건물주로부터 받은 위임장 내용을 구체적으로 확인하여, 위임장 내용에 월세계약 뿐만 아니라 전세계약까지 위임된 것인지, 위임된 기간이 언제까지인지 등에 대하여 자세히 살필 필요가 있으며, 만약 조금이라도 의심되는 점이 있다면 건물주 면전에서 계약서를 작성할 것을 관리업자에게 요구할 필요도 있다.
아무리 주의해도 지나치지 않다는 격언은, 거래단위가 크면서도 거래질서가 문란한 현재의 우리나라 부동산거래 현실에 가장 적절한 표현일 수 있다고 본다.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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