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이 되는 부동산 법률] 상가분양자에게 있어 약속은 "초개"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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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닷컴 더 라이피스트
“초개(草芥)”라는 단어의 사전적의미는 지푸라기로서, 하찮은 것을 비유할 때 쓰여진다. 필자가 보기에는, 우리나라 지금의 상가분양현실에 있어 상가를 분양하는 분양자들이 수분양자들에게 한 약속이야말로 바로 “초개”와 다를 바 없지않나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의 상가분양 현실은 약속을 너무나 쉽게 하고, 또 쉽게 하는만큼이나 대수롭지 않게 너무나 가볍게 생각하고, 위반하는데 별다른 부담을 가지지 않는 것 같다.
사실 종전부터 이런 현상은 계속 있어 왔지만, 최근들어 부쩍 이런 분쟁들을 많이 상담하게 된다. 아마도, 2002년,2003년도에 상가분양붐을 타고 분양된 상가들의 완공을 앞두고, 상가분양의 거품이 푹 꺼져버려 수분양자들이 걱정과 불만이 큰 상황에서, 막상 완공된 상가의 실제모습이 당초 분양때의 약속과 너무 다르다는 것을 최근들어서 직접 보기 때문이 아닌가 짐작된다. 다음의 사례들은 최근 필자가 소송 중이거나 상담한 실제 사례들로서, 분양회사가 약속을 지키지 않는 정도가 어느 정도인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첫 번째 사례는, 모 영화관이 들어선 일산의 한 상가건물의 분양사례이다. 처음 분양당시에는 영화관 매표소 바로 옆에 편의점자리이고, 영화관 내에서는 유일한 편의점이라는 약속을 믿고 4억원 정도나 되는 거금을 주고 점포 하나를 분양받았다. 그런데, 막상 상가건물이 완성되고 보니 영화관측에서 당초 예정했던 매표소 위치를 정반대방향으로 임의로 변경해버리고, 변경된 매표소 바로 옆에 영화관측이 직영으로 매점을 운영하는 버리는 상식밖의 일이 발생해 버렸다.
두번째 사례는, 서울 종로구 모 쇼핑몰의 경우인데, 분양당시에는 한개층을 음식점(푸드코트)으로 분양하고 건물 외벽쪽으로 점포를 배치하면서 나머지 중간 부위에는 건물 한 가운데 위치한 에스컬레이터을 제외하고는 나머지 공간을 식사할 수 있는 식탁이 놓일 수 있도록 하는 배치였다. 그런데, 막상 건물완공을 앞두고 점포 추첨을 하기 위해 현장에 가본 결과, 당초 건물 외벽에 위치한 점포들의 가운데는 에스컬레이터 이외는 식탁만이 놓일 수 있게 배치되는 구조였음에도 불구하고, 분양회사측에서 에스컬레이터 주변으로 층 가운데 부분에 점포를 4개나 더 만들어서 분양을 해 버려 결국, 식탁이 놓일 수 있는 공간이 대폭 줄어드는 결과가 되어 버렸다. 이로 인해 기존에 음식점을 분양받은 사람들로서는 음식점 영업에 큰 지장을 받을 수 밖에 없게 되었다. 분양회사측에서 당초 약속을 어기고 추가로 점포를 분양해서 돈을 벌겠다는 욕심 때문에 이런 일이 발생해 버린 것이다.
세 번째 사례는, 서울 동대문구의 모 쇼핑몰인데, 이 의뢰인의 경우 분양당시부터 109호, 110호로 점포를 특정해서 분양받았고, 두 점포의 위치는 바로 옆에 연이어져 있어 두 점포를 터서 하나의 점포로 사용할 수 있도록 약속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상 완공을 임박해서 보니 109호와 110호가 연결되지 못하도록 설계가 변경되어 버린 것을 알게 되었다. 당초 분양계약 이후에 회사측에서 당초 분양하기로 예정했던 수를 초과하여 분양하는 바람에 109호와 110호가 연결되지 못하고 다른 점포들이 중간에 끼게되는 결과가 되어 버린 것이다. 더구나 이 상가는 당초 예정했던 입점시기인 2005. 10.말에 입점이 불가능할 우려가 있자, 일방적으로 입점시기를 6개월 늦춘 2006. 4.경으로 연기하겠다는 통보도 보냈다.
왜 이런 터무니없는 일이 발생할까? 법적인 측면에서 정답을 이야기하자면, 근본적으로 분양회사측이 어떠한 책임을 질 수 있는 자격이 박약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도덕심이 높은 극히 선량한 사람을 제외한 보통의 사람들에게 있어서 “약속”이라는 것은, 약속을 지키지 않았을 때와 패널티(벌칙)가 있고, 그 책임을 실제로 부담해야한다는 마음의 부담이 있기 때문에 지킬 수 밖에 없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상가분양에 있어서 각종 약속들은 상가가 완공되고 난 이후에는 약속위반을 따지기가 힘든 것이 우리의 분양현실이다. 수분양자들과의 관계에 있어 약속의 주체는 공사를 하는 시공사가 아니라 “시행사”라는 분양회사인데, 이들 시행사라는 회사들은 해당 분양사업만을 위해서 급조되고 분양사업이 종결되면 즉시 재산을 모두 처분하고 사실상 청산단계로 들어서는 실정이어서, 상가가 완공되어 잔금이 모두 지급된 이후에는 분양과정에서 한 약속을 이행하지 않은 점을 따질 여건조차 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책임을 질 수 있는 재산이 없기 때문에, 돈을 들여 애써 재판을 받을 필요가 적어지게 되는 것이다. 거지가 된 사람에게 비용들여서 판결받는 것이 무의미한 것과 마찬가지다. 이런 관행이 수십년간 우리 상가분양의 현실이다보니, 분양회사들에게는 분양과정에서 수분양자들에 대한 약속을 어기는 것은 그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거의 대부분 분양현장에서 보편적인 현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더구나, 위에서 예로 든 사례들은 약속위반의 정도가 중하기 때문에, 계약을 취소하거나 해제하는 절차를 통해서 분양대금을 돌려받을 수 있는 식으로 구제를 받을 수 있지만, 위반의 정도가 이에 미치지 못하는 소소한 정도의 계약위반에 대해서는 재산의 유무를 떠나서, 법적으로 판결을 받기조차 곤란한 문제가 있다. 소소한 계약위반에 대해서는 법이론상으로 계약을 원천적으로 무효로 돌리는 계약해제는 불가능하고 손해배상만을 청구할 수 있는데, 문제는 상가분양계약위반의 거의 대부분이 약속위반에 따르는 손해배상액수를 산정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점에 있다. 두 번째 사례의 경우에 식탁이 당초 약속했던 숫자에 5-10% 정도 줄어든 것에 불과하다면, 계약해제는 곤란하고 단지 손해배상만을 청구할 수 밖에 없는 가능성이 높은데, 탁자 수가 이 정도 줄어들었다고 할 때 각 점포마다 얼마의 손해가 발생했는지를 구체적으로 계산하기가 곤란하기 때문이다. 비록 손해배상책임 자체는 분명하다고 하더라도 구체적인 액수산정이 곤란하게 되면, 법적으로는 손해배상판결이 어려워지게 될 수 있어 결국 미미한 금액으로 합의를 볼 수 밖에 없는 결과가 되는 것이다.
결국, 수분양자입장에서는 이러한 현실을 직시하고 분양회사의 계약위반에 대해서 분양사업이 완료되기 이전에 분양회사를 상대로 적절한 대책마련을 촉구하도록 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잔금을 지급하지 않는다거나, 적절한 가압류조치를 미리 해두고 분양회사와 협상 내지 소송을 하는 것이 그 방법이다. 분양이 완료되고 잔금이 모두 지급되면 분양회사측은 재산을 모두 소진시켜버리고 더 이상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경향이 있다는 점에서, ‘잔금을 모두 지급하면 약속위반을 시정하겠다’는 식의 분양회사측 제의는 일단 거부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신뢰없는 분양회사와는 거래자체를 하지 않는 자세가 수분양자들에게 필요하다고 본다. 높은 소비자 의식이 수준높은 기업을 만드는 것과 같이, 상가분양 역시 옥석을 가릴 수 있는 수분양자들의 높은 안목이 없다면 지금과 같이 한심한 상가분양현실의 개선은 하세월이 될 수 있다.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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