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6월의 어느날 오후.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 다른 전화와 마찬가지로 경매투자 내지 임대차나 권리분석 상담이겠거니 하고 무심코 수화기를 들었는데 상대방의 목소리가 흐느끼듯 약간은 떨리는 목소리다. 무슨 일 때문인지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첫 마디가 “이부장님, 이럴 수가 있나요?”다. 분명 필자를 아는 사람인데 감정 정리가 안된 듯 신분 밝히는 것도 잊었다. “누구시죠?” 하니까 그 때서야 김 아무개라고 한다. 기억이 가물가물하여 얼굴이 쉽게 떠오르지 않았지만, 오래 전에 필자에게서 경매강의를 들었던 사람이다.
필자도 안부인사 물을 겨를도 없이 바로 무슨 일이냐고 확인작업 들어갔다. 그랬더니 “이부장님, 경매로 낙찰받았는데 무잉여라는 것 때문에 매각이 불허가되었대요, 그럴 수도 있나요? 경매강의 수강하면서 무잉여는 들어봤는데, 이게 나한테 닥칠 줄은 생각도 못했어요.”하면서 이제는 울먹울먹할 태세다.
겨우 진정시켜 놓고 들어본 얘기인 즉 이렇다. ‘김씨’는 경매강좌를 이수하고 배운 지식대로 경매에 투자하고자 계획을 세운 후 보유하고 있는 자금에 맞게 맘에 드는 물건을 골라 몇 차례 입찰하였으나 번번히 쓰라린 패배만을 거듭하였다. 입찰자가 10명 이상으로 경쟁이 많아 떨어지기도 했고, 아주 아슬아슬하게 차순위로 낙방하기도 했단다. 하지만 경매에서의 2등은 아무도 알아주지도 않고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차순위매수신고인으로서의 자격만 있을 뿐.
그러던 중 노원구 월계동에 소재한 삼창아파트 25평형이 경매에 나온 것을 보고 다시금 입찰에 도전하기로 마음 먹었다. 1985년에 준공된 중층아파트로 향후 리모델링이나 재건축에 대한 기대감도 있고, 감정가가 1억1500만원에서 2회 유찰되어 최저매각가가 7360만원으로 떨어져 가격에 대한 메리트도 충분하였다.
등기부등본에 나타난 권리관계를 보니 2003년 2월에 ○○새마을금고에서 설정한 근저당이 말소기준권리로서 이보다 앞선 권리는 없었고, 후순위로 가압류 1건과 압류 3건이 있었지만 낙찰로 모두 말소되므로 문제가 없었다. 근저당채권자가 아닌 후순위 가압류채권자가 경매를 신청한 물건이었다. 근저당보다 앞서 1997년 9월에 전입신고된 사람이 있었으나 채무자(겸 소유자)로서 낙찰자에게 아무런 권리도 행사할 수 없다.

주변에 광운대학교가 인접하여 있어 거래나 임대상황도 좋은 편이다. 경매신청한 가압류채권자의 채권청구액이 980만원으로 소액이라 취하가능성이 있어 찜찜했지만 최초근저당채권자의 설정액이 1억1000만원을 넘고, 투자용으로나 실수요용으로 이만하면 상급물건에 해당한다 싶어 입찰하기로 결심하였다.
취하가능성이 있고, 5월 16일 ~ 5월 23일까지 기간입찰에 부쳐지는 물건이라 입찰경쟁이 적을 것으로 예상하고 입찰가를 감정가의 72.7% 정도인 8630만원을 적어냈다. 입찰가액 기재시마다 매번 떨리는 마음과 손을 어찌할 수가 없다. 아직도 경매초보티를 벗어나지 못했나 보다. 입찰자 명의는 ‘김씨’의 모친으로 하였다.
5월 30일 개찰 결과, 예상 적중! 입찰자는 모두 3명. 입찰자수도 그러려니와 아주 저렴한 가격에 낙찰받은 것에 너무 고무되었다. ‘이런 게 바로 경매야’하면서 사뭇 우쭐한 마음까지 생겼다. 나중에 대금납부한 후에는 주변의 아는 사람들을 죄다 불러모아 나의 승전보를 자랑삼아 얘기하리라. 5번의 도전 끝에 얻은 귀중한 승리이니 그럴 만도 했다.
낙찰 후 매각허부결정이 내려지기까지 7일내 행여 이해관계인의 이의신청으로 매각이 불허가되지 않을까? 혹 매각이 허가되더라도 즉시항고로 인해 경매절차가 지연되지 않을까? 아니면 소액인 가압류채권이 변제되어 경매가 취소되지 않을까? 등등. 갖가지 상념으로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그래도 그러한 우려보다는 낙찰로 인한 기쁨과 기대가 더 컸으리라.
그러나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만은 않았다. 매각결정기일인 6월 6일 오후. 경매법원에 가볼 겨를도 없이 궁금한 마음에 떨리는 마음으로 경매계에 전화를 걸었다. “저~, 수고하십니다. 사건번호 2004 타경 ○○○○○호 낙찰잔데요~. 낙찰이 허가되었나요?” “아~, 그 물건이요? 불허가됐습니다.” 허걱~! 우려가 현실로 다가왔다. 믿고 싶지가 않았다. “불허가라니요? 이유가 뭔데요?” “예~,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아마 무잉여 때문인 것 같아요~.” “아! 예~, 감사합니다.” 정신없이 전화를 끊었다. 머리가 어지럽고 하늘이 노랬다. 어떻게 몇 수만에 얻은 물건인데, 그것도 무잉여 때문에 불허가되다니..,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데에서 사고가 터졌다.
그때서야 경매교육 수강시 들었던 ‘잉여주의’라는 원칙이 떠올랐다. 잠시 접어 두었던 경매교육교재를 펼쳐보았다. 포스트잇으로 구분해 놓은 ‘채권자매수신청’이라는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채권자매수신청’이 바로 ‘잉여주의’와 관련이 있는 대목이다.
‘잉여주의’란 경매신청채권자(압류채권자)에게 배당될 배당액이 있어야 경매를 진행한다는 원칙이다. 즉, 최저매각가를 기준으로 경매비용과 압류채권자보다 우선하는 저당권, 전세권 등 부동산상의 부담을 변제하면 잉여가 없다고 인정한 때에는 법원은 압류채권자에게 무잉여 사실을 통지하게 되는데, 압류채권자가 이 통지를 받은 날로부터 1주일내에 우선채권 등을 넘는 가격을 정하여 매수신고가 없을 때에는 스스로 그 가격으로 매수하겠다고 신청하면서 충분한 보증을 제공하지 않으면 법원 직권으로 경매절차를 취소하게 된다.
만일에 법원이 무잉여 사실을 간과하고 채권자매수신청이 없이 경매가 속행되어 다른 입찰자에게 낙찰되었다 하더라도 그 매수신청가격이 여전히 무잉여라면 매각이 불허가 되고 종국에는 경매가 취소될 수밖에 없다.
교재를 읽고 나서 낙찰받은 물건의 채권액과 낙찰가격을 다시금 살펴 보았다.낙찰가격은 8630만원, ○○새마을금고의 선순위 근저당채권액은 1억1000만원, 압류채권자인 후순위 가압류채권액은 980만원. 굳이 경매비용을 고려하지 않더라도 선순위 근저당채권자인 ○○새마을금고에게 우선 배당하고 나면 아무것도 남을 것이 없었다. 무잉여다.., 무잉여!
경매교육도 받았고, 알고 있는 내용이었지만 정작 무잉여에 의한 매각불허가가 나에게 해당되다니! 왜 그걸 몰랐을까? 일찍 알았더라면 잉여가 될 금액으로 조금 더 높여 쓸 수 있었는데. 하기야 최초감정가(1억1500만원)와 선순위 채권액(1억1000만원)을 두고 보면 가격도 높여 쓸 수도 없었겠다. 그냥 입찰을 포기할 수 있었겠지. 아쉬움과 허탈.., 만감이 교차했다. 눈물이 글썽거렸다. 번복이 안되는 줄 알면서도 누군가에게 한탄을 하고도 싶었다. …………………………… ………………………………………………………………………………………………….
그렇게 해서 걸려온 전화였다. 필자가 뭐라 위로의 말을 할 수 있을까? “힘 내세요~, 기회는 또 있잖아요!” 그렇게 전화를 끊었지만 풀 죽은 ‘김씨’의 모습이 아른거려 일이 손에 잡히질 않았다. 손에 다 들어왔다 싶었는데 예상치 못한 사유로 놓쳤을 때의 그 실망이야 오죽했을까! 성공적인 경매투자, 경매고수가 되는 길이 참으로 멀고도 험난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례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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