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매로 세상얻기] 야탑벌 유통대전 - 차순위매수신고의 요건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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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닷컴 더 라이피스트
지난 6월 5일 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의 약 40평 됨직한 경매법정에 여느 때보다 사람들이 많이 운집해 있다. 말쑥한 정장차림의 사람들이 수시로 법정을 들락날락하며 휴대전화에 여념이 없다.
이날은 야탑동에 소재한 대형할인점 까르푸가 경매에 부쳐지는 날이다. 올초 이랜드가 까르푸를 인수하였지만, 까르푸 야탑점은 임대매장으로 이랜드의 인수대상에서 제외되었으며, 채권자인 삼성중공업이 공사대금채권 등을 회수하기 위해 지난 2004년 12월에 경매신청한 후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1년 반이 지난 지금에서야 경매에 부쳐지게 되었다.
최초감정가 577억원4700만원에 부쳐진 첫 경매지만, 국내 까르푸점 중 한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영업이 잘되는 곳으로 그 인수가치를 단순 감정가로는 판단할 성질이 아니었기 때문에 경매신청된 시점부터 중앙의 대형유통업체들의 관심이 실로 지대하였다. 필자도 오래 전부터 이 물건에 대해 관심을 갖고 권리관계, 주변환경, 인수가치 등 물건을 분석하고 있었던 터라 경매 결과가 어떻게 될 지 궁금하여 경매 당일 직접 성남지원으로 향했던 바다.
경매법정에 도착하니 경매정보지를 판매하는 경매업체 종사자들이 제일 먼저 반긴다. 다음으로 경매법정에서 일면식들이 있는 일반물건 투자자들이 보이지만 적어도 오늘은 이들이 관심대상이 아니다. 중간 정도의 빈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주위를 둘러보니 내가 알고 있던 유통업체 관계자들이 보인다. 일부러 그들이 나를 알고 아는 척할 까봐 피했다. 내가 왔다는 것을 알면 다른 입찰자를 데리고 왔을 것으로 오인할 것이고 그렇다고 한다면 그들이 생각했던 예상입찰가를 더 높이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말쑥한 정장차림의 몇몇 부류들이 더 눈에 들어온다. 분명 다른 유통업체 관계자들이다. 서로 눈치작전을 하듯 주변을 살피고, 사뭇 분주하게 왕래하면서 경매법정 분위기나 입찰가 의견을 묻듯 회사에 전화를 해대느라 휴대전화가 귀에서 떠날 줄을 모른다. 규모나 인수가치도 그러려니와 이 야탑벌 점령이 단지 경매낙찰 이상의 의미를 갖는 것은 최근 중앙의 대형유통업체간 출점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분주함 속에 전운마저 감도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다.
입찰이 모두 끝나고 드디어 개찰의 순간, 장내가 쥐 죽은 듯 고요하다. 까르푸에 입찰하였던 관계자들의 침 넘어가는 소리가 꼴깍 꼴깍 들리는 듯 하다. 사건번호가 2004타경OOOO호 물건이라 개찰순서가 곧바로 다가왔다. 집행관이 먼저 까르푸에 입찰한 롯데쇼핑(롯데마트), 삼성테스코(홈플러스), 한국까르푸, 신세계(이마트) 등 4개 업체를 호명하였다. 예상했던 업체들이 입찰하였다. GS유통만 예상 입찰자에서 빠졌다.
다음으로 집행관이 각각의 입찰가격을 불렀다. 한국까르푸 1046억원, 롯데쇼핑 1311억원, 삼성테스코 1088억원, 신세계 930억원! 롯데쇼핑에서 나온 직원들이 환호성을 질렀고, 일부는 낙찰되었음을 보고하러 황급히 경매법정 밖으로 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그러나 다음 순간, 집행관이 입찰가격을 잘못 불렀다고 하면서 한국까르푸의 입찰가격을 1046억원이 아니라 1466억이라고 수정하여 발표하였고 최고가매수인을 한국까르푸로 호창하였다. 롯데쇼핑의 입찰가격보다는 155억원이 많은 금액이다.
롯데쇼핑(롯데마트) 직원들이 난리법석을 떨었다. 어떻게 입찰가격을 잘못 부를 수 있냐고! 집행관 앞에 가서 입찰표까지 확인하고서도 낙방한 것이 믿기지 않는 듯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하더니 차순위매수신고를 하겠다고 다시 집행관 앞으로 나간다. 그만큼 억울하고 중대사였던 모양이다. 최고가매수인인 한국까르푸의 입찰가와 차순위매수신고한 롯데쇼핑의 입찰가를 살펴본 집행관은 차순위매수신고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차순위매수신고의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롯데쇼핑으로서는 이래 저래 낭패가 아닐 수 없었다.
여기까지 지켜보고 경매법정 밖으로 나왔는데, 전부터 알고 지낸 롯데쇼핑 직원 한명이 본사와 연락을 취하고 있었다. 롯데쇼핑이 낙찰 받았다는 소식을 전하는 모양이다. 필자가 다가가서 “좀 아쉽게 됐다”라고 하니까 “무슨 말씀이세요?”라고 한다. 지금까지의 상황을 얘기하니깐 충격이 큰 듯 안색이 변하더니 아무런 말을 못한다. 천당과 지옥을 오간 형국이다.
이렇게 야탑벌 유통대전은 임차인인 한국까르푸가 1466억원을 써내면서 치열하고도 근소한 가격경쟁을 벌일 것으로 기대했던 것과 달리 의외로 싱겁게 끝이 났다. 경매사상 최고낙찰가라는 전대미문의 기록을 남기면서 말이다.
여기서 한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집행관은 왜 롯데쇼핑이 신청한 차순위매수신고를 받아들이지 않았을까? 차순위매수신고란 최고가매수인이 대금지급기한까지 대금을 납부하지 못한 경우에는 자신(차순위)에게 매각을 허가해달라는 취지로 개찰절차에서 최고가매수인(낙찰자) 호창 후 즉시 신고하는 행위이다. 최고가매수인이 대금을 납부하지 못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거나 납부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러나 입찰자중 아무나 차순위매수신고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최고가매수신고액에서 입찰보증금을 뺀 금액을 넘게 입찰가액을 써낸 입찰자만 차순위매수신고 자격이 있다. 예컨대, 위 경매사건의 경우 롯데쇼핑이 차순위매수신고 자격이 있기 위해서는 최고가매수신고인인 한국까르푸의 입찰가액 1466억원에서 입찰보증금 57억7470만원을 뺀 1408억2530만원을 넘게 입찰하였어야 한다. 롯데쇼핑의 입찰가액이 1311억원이었으므로 차순위매수신고의 요건을 갖추지 못하여 집행관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 차순위매수신고의 요건: 차순위매수신고액 > 최고가매수신고액 – 매수신청보증금
"외부 필진의 기고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독자 문의 : thepen@hankyung.com
이날은 야탑동에 소재한 대형할인점 까르푸가 경매에 부쳐지는 날이다. 올초 이랜드가 까르푸를 인수하였지만, 까르푸 야탑점은 임대매장으로 이랜드의 인수대상에서 제외되었으며, 채권자인 삼성중공업이 공사대금채권 등을 회수하기 위해 지난 2004년 12월에 경매신청한 후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1년 반이 지난 지금에서야 경매에 부쳐지게 되었다.
최초감정가 577억원4700만원에 부쳐진 첫 경매지만, 국내 까르푸점 중 한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영업이 잘되는 곳으로 그 인수가치를 단순 감정가로는 판단할 성질이 아니었기 때문에 경매신청된 시점부터 중앙의 대형유통업체들의 관심이 실로 지대하였다. 필자도 오래 전부터 이 물건에 대해 관심을 갖고 권리관계, 주변환경, 인수가치 등 물건을 분석하고 있었던 터라 경매 결과가 어떻게 될 지 궁금하여 경매 당일 직접 성남지원으로 향했던 바다.
경매법정에 도착하니 경매정보지를 판매하는 경매업체 종사자들이 제일 먼저 반긴다. 다음으로 경매법정에서 일면식들이 있는 일반물건 투자자들이 보이지만 적어도 오늘은 이들이 관심대상이 아니다. 중간 정도의 빈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주위를 둘러보니 내가 알고 있던 유통업체 관계자들이 보인다. 일부러 그들이 나를 알고 아는 척할 까봐 피했다. 내가 왔다는 것을 알면 다른 입찰자를 데리고 왔을 것으로 오인할 것이고 그렇다고 한다면 그들이 생각했던 예상입찰가를 더 높이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말쑥한 정장차림의 몇몇 부류들이 더 눈에 들어온다. 분명 다른 유통업체 관계자들이다. 서로 눈치작전을 하듯 주변을 살피고, 사뭇 분주하게 왕래하면서 경매법정 분위기나 입찰가 의견을 묻듯 회사에 전화를 해대느라 휴대전화가 귀에서 떠날 줄을 모른다. 규모나 인수가치도 그러려니와 이 야탑벌 점령이 단지 경매낙찰 이상의 의미를 갖는 것은 최근 중앙의 대형유통업체간 출점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분주함 속에 전운마저 감도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다.
입찰이 모두 끝나고 드디어 개찰의 순간, 장내가 쥐 죽은 듯 고요하다. 까르푸에 입찰하였던 관계자들의 침 넘어가는 소리가 꼴깍 꼴깍 들리는 듯 하다. 사건번호가 2004타경OOOO호 물건이라 개찰순서가 곧바로 다가왔다. 집행관이 먼저 까르푸에 입찰한 롯데쇼핑(롯데마트), 삼성테스코(홈플러스), 한국까르푸, 신세계(이마트) 등 4개 업체를 호명하였다. 예상했던 업체들이 입찰하였다. GS유통만 예상 입찰자에서 빠졌다.
다음으로 집행관이 각각의 입찰가격을 불렀다. 한국까르푸 1046억원, 롯데쇼핑 1311억원, 삼성테스코 1088억원, 신세계 930억원! 롯데쇼핑에서 나온 직원들이 환호성을 질렀고, 일부는 낙찰되었음을 보고하러 황급히 경매법정 밖으로 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그러나 다음 순간, 집행관이 입찰가격을 잘못 불렀다고 하면서 한국까르푸의 입찰가격을 1046억원이 아니라 1466억이라고 수정하여 발표하였고 최고가매수인을 한국까르푸로 호창하였다. 롯데쇼핑의 입찰가격보다는 155억원이 많은 금액이다.
롯데쇼핑(롯데마트) 직원들이 난리법석을 떨었다. 어떻게 입찰가격을 잘못 부를 수 있냐고! 집행관 앞에 가서 입찰표까지 확인하고서도 낙방한 것이 믿기지 않는 듯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하더니 차순위매수신고를 하겠다고 다시 집행관 앞으로 나간다. 그만큼 억울하고 중대사였던 모양이다. 최고가매수인인 한국까르푸의 입찰가와 차순위매수신고한 롯데쇼핑의 입찰가를 살펴본 집행관은 차순위매수신고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차순위매수신고의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롯데쇼핑으로서는 이래 저래 낭패가 아닐 수 없었다.
여기까지 지켜보고 경매법정 밖으로 나왔는데, 전부터 알고 지낸 롯데쇼핑 직원 한명이 본사와 연락을 취하고 있었다. 롯데쇼핑이 낙찰 받았다는 소식을 전하는 모양이다. 필자가 다가가서 “좀 아쉽게 됐다”라고 하니까 “무슨 말씀이세요?”라고 한다. 지금까지의 상황을 얘기하니깐 충격이 큰 듯 안색이 변하더니 아무런 말을 못한다. 천당과 지옥을 오간 형국이다.
이렇게 야탑벌 유통대전은 임차인인 한국까르푸가 1466억원을 써내면서 치열하고도 근소한 가격경쟁을 벌일 것으로 기대했던 것과 달리 의외로 싱겁게 끝이 났다. 경매사상 최고낙찰가라는 전대미문의 기록을 남기면서 말이다.
여기서 한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집행관은 왜 롯데쇼핑이 신청한 차순위매수신고를 받아들이지 않았을까? 차순위매수신고란 최고가매수인이 대금지급기한까지 대금을 납부하지 못한 경우에는 자신(차순위)에게 매각을 허가해달라는 취지로 개찰절차에서 최고가매수인(낙찰자) 호창 후 즉시 신고하는 행위이다. 최고가매수인이 대금을 납부하지 못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거나 납부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러나 입찰자중 아무나 차순위매수신고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최고가매수신고액에서 입찰보증금을 뺀 금액을 넘게 입찰가액을 써낸 입찰자만 차순위매수신고 자격이 있다. 예컨대, 위 경매사건의 경우 롯데쇼핑이 차순위매수신고 자격이 있기 위해서는 최고가매수신고인인 한국까르푸의 입찰가액 1466억원에서 입찰보증금 57억7470만원을 뺀 1408억2530만원을 넘게 입찰하였어야 한다. 롯데쇼핑의 입찰가액이 1311억원이었으므로 차순위매수신고의 요건을 갖추지 못하여 집행관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 차순위매수신고의 요건: 차순위매수신고액 > 최고가매수신고액 – 매수신청보증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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